6-1. 총평
1
이 글은 1773년(영조 49) 경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암의 나이 37세 때이다. 당시 연암은 과거科擧를 포기한 채 곤궁하게 살면서 문학과 사상을 한층 더 높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었다. 이 글은 이 시기 연암의 감정과 태도를 잘 보여준다.
2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어떤 대목에서는 빙그레 웃게 되고, 어떤 대목에서는 이 글 속 인물들의 처지에 공감되어 슬픈 마음이 되기도 하며, 어떤 대목에서는 그 아름다운 묘사에 마음을 빼앗겨 황홀해지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흐뭇해지기도 하며, 어떤 대목에서는 정신이 각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 글은 파란과 변화가 많아, 배를 타고 장강長江을 따라 내려가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강안江岸의 풍경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감정에 잠기게 되는 것에 견줄 만하다. 이런 다채로운 전개 속에 냉정한 자기 직시와 자기 성찰을 녹여 놓고 있는 이 글은 가히 천의무봉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연암의 글 솜씨와 그 깊은 사유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만하다. 이런 글을 명문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글을 명문이라고 할 것인가?
3
이 글은 그 구성이 절묘하다. 글의 중간 부분에 호백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큰 상징성을 갖는다. 그것은 자기응시의 대상화에 다름 아니다. 달리 말해 호백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호백 이야기는 이 글의 압권을 이룬다고 할 만하다. 그렇긴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글이 끝났다면 이 글은 기껏 신서에 대한 푸념과 한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맨 마지막 단락 때문에 호백 이야기는 또 다른 각도에서 반추될 수 있게 되고, 글 전체가 놀라운 깊이를 확보하게 된다. 바로 이런 구성이 여느 작가와 본질적으로 다른, 연암의 연암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4
이 글에 등장하는, 연암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은 이른바 ‘야성野性’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이 야성과 관련해 이들의 행위와 면모가 거칠고 예법을 벗어난 것이라는 비난도 따를 수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이 야성 때문에 그들은 아직 때 묻지 않고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위선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혹은 역으로, 때 묻지 않고 위선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야성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연암이 특히 좋아하고 그 심리를 잘 이해한 부류의 인간은 바로 이런 야성을 지닌 인간이었다.
5
이 글은 공간 이동이 흥미롭다. 전의감동에서 출발해 운종가로 나와 종각 아래에서 바장이다가 광통교로 가 노닐고, 마침내 수표교에서 그 발걸음이 멈추고 이다. 그 동선動線은 대체로 청계천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광통교와 수표교는 청계천 상에 잇던 다리들이기 때문이다. 이 활발한 공간 이동은 이 작품에 비교적 큰 동감動感을 낳고 있다. 한편 이런 공간 이동이 시간 이동과 밀접히 얽혀 독특한 미감을 빚어낸다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 될 점이다.
취하여 운종교를 거닐던 기록
醉踏雲從橋記
하릴없이 밤거리를 헤매는 연암의 무리들
孟秋十三日夜, 朴聖彥與李聖緯ㆍ弟聖欽ㆍ元若虛ㆍ呂生ㆍ鄭生ㆍ童子見龍, 歷携李懋官至.
時徐參判元德先至在座. 聖彥盤足橫肱坐, 數視夜, 口言辭去. 然故久坐, 左右視莫肯先起者, 元德亦殊無去意, 則聖彥遂引諸君俱去. 久之童子還言 “客已當去, 諸君散步街上, 待子爲酒.” 元德笑曰: “非秦者逐.” 遂起相携, 步出街上.
聖彥罵曰: “月明, 長者臨門, 不置酒爲懽, 獨留貴人語, 奈何令長者久露立?” 余謝不敏, 聖彥囊出五十錢沽酒.
少醉, 因出雲從衢, 步月鍾閣下, 時夜鼓已下三更四點. 月益明, 人影長皆十丈, 自顧凜然可怖.
남 같지 않은, 아니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 호백이
街上群狗亂嘷, 有獒東來, 白色而瘦. 衆環而撫之, 喜搖其尾, 俛首久立.
甞聞獒出蒙古, 大如馬, 桀悍難制. 入中國者, 特其小者, 易馴. 出東方者, 尤其小者, 而比國犬絶大, 見恠不吠, 然一怒則狺狺示威. 俗號‘胡白’, 其絶小者, 俗號‘犮犮’, 種出雲南. 皆嗜胾, 雖甚飢, 不食不潔. 嗾能曉人意, 項繫赫蹄書, 雖遠必傳, 或不逢主人, 必啣主家物而還, 以爲信云. 歲常隨使者至國, 然率多餓死, 常獨行不得意.
懋官醉而字之曰: ‘豪伯’ 須臾失其所在, 懋官悵然東向立, 字呼豪伯, 如知舊者三, 衆皆大笑. 鬨街群狗, 亂走益吠.
과거의 너는 여기에 없고 개구리와 매미와 닭의 소리만 들리네
遂歷叩玄玄, 益飮大醉, 踏雲從橋, 倚闌干語.
曩時上元夜蓮玉舞此橋上, 飮茗白石家. 惠風戱曳鵝頸數匝, 分付如僕隷狀, 以爲笑樂. 今已六年, 惠風南遊錦江, 蓮玉西出關西, 俱能無恙否?
又至水標橋, 列坐橋上, 月方西隨正紅. 星光益搖搖圓大, 當面欲滴. 露重衣笠盡濕, 白雲東起橫曳, 冉冉北去, 城東蒼翠益重. 蛙聲如明府昏聵, 亂民聚訟; 蟬聲如黌堂嚴課, 及日講誦; 鷄聲如一士矯矯, 以諍論爲己任. -『燕巖集』 卷之十
▲ 전문
▲ 이 날 연암은 친구들과 이 루트를 따라 밤새 움직였다. (사진 출처 - [연암을 읽다])
인용
지도 / 목차 / 작가 / 비슷한 것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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