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통해야만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런 까닭에 늙은 신하가 어린 임금께 고하는 것과 고아와 과부의 사모함을 알지 못하는 자와는 더불어 소리를 논할 수가 없다. 글을 짓더라도 『시경』의 생각이 없으면 더불어 국풍國風의 빛깔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이 이별해보지 못하고, 그림에 먼 뜻이 없다면 더불어 문장의 정경情境을 논할 수가 없다. 벌레의 더듬이와 꽃술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모두 문심文心이 없는 것이다. 솥과 그릇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하는 자는 비록 한 글자도 모른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故不識老臣之告幼主, 孤子寡婦之思慕者, 不可與論聲矣. 文而無詩思, 不可與知乎國風之色矣. 人無別離, 畵無遠意, 不可與論乎文章之情境矣. 不屑於蟲鬚花蘂者, 都無文心矣. 不味乎器用之象者, 雖謂之不識一字可也. |
『주역周易』「계사繫辭」하下는 그래서 “역궁즉변易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가구通則可久”라고 적고 있다. 역易은 궁하면 변화해야 하고, 변화해야 서로 통하게 된다. 통하게 되어야만 비로소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변화를 잊고 사물을 외면한 채 이미 낡은 기호, 죽은 사상事象에만 집착한다.
벌레의 더듬이나 꽃술이나 돌이끼, 새깃은 이제 그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기용器用의 형상은 그들에게 어떤 느낌도 줄 수가 없다. 문심을 잃은 까닭이다. 그들이 지은 글을 보고는 귀신은 더 이상 울음 울지 않는다. 하늘은 곡식비를 내리지도 않는다.
고대에는 우주가 하나의 형태와 중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주의 운동은 순환적 리듬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고, 그 리듬의 형상은 여러 세기 동안 도시와 법과 예술작품의 원형이 되었다. 정치적 질서와 시적 질서, 공적인 축제와 사적인 제의祭儀 -그리고 나아가 우주적 법칙에 대한 불화의 위반에 이르기까지-등은 우주적 리듬의 표현들이었다. 그 뒤 세계의 형상이 확장되었다. 공간은 무한하고 사방으로 뚫려 있다. 플라톤적인 해(年)는 끝없고 직선적인 연속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항성들은 더 이상 우주적 조화의 이미지가 되지 못했다. 세계의 중심과 신은 쫓겨나고, 관념과 본질들은 사라져갔다. 우리는 홀로 남게 되었다. 우주의 형상이 바뀌고,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개념도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세계였고, 인간은 인간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총체였다. 이제 공간은 팽창하여 분열되고, 시간은 불연속적인 것이 되었다. 세계, 전체는 조각 조각 파편화되었다. 인간은 분산되고, 그 역시 분산되어 떠도는 공간 속에서 미아가 되었다.
- 『활과 리라』, 김홍근·김은중 편역, 솔출판사, 338쪽
옥따비오 빠스는 공간은 팽창하여 분열하고, 시간은 불연속적인 것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세계는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인간은 분산되고, 떠도는 공간 속에서 길 잃은 미아가 되고 말았다고 썼다.
이처럼 조각조각 파편화된 세계 속에서 문학을 한다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 옛날 포희씨가 했던 것은 ‘앙관부찰仰觀俯察’ 즉 우러러 하늘을 살펴보고, 굽어 땅을 관찰했을 뿐이다. 창힐씨가 했던 것은 ‘곡정진형曲情盡形’ 곧 정을 곡진히 하고 형상을 그대로 재현해 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제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남들이 이미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 남들이 본대로만 바라볼 따름이다. 세계와 앙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사람들은 잃고 말았다. 중심 없는 세계에서 쓸쓸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고, 해체주의를 말하며, 패러디의 시학을 외쳐대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 퍼진다.
▲ 전문
인용
3. 글로 드러나는 情과 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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