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게을러져
용심(慵甚)
이첨(李詹)
平生志願已蹉𧿶 爭奈慵踈十倍多
午寢覺來花影轉 暫携稚子看新荷 『東文選』 卷之二十二
해석
平生志願已蹉𧿶 평생지원이차이 | 평생 뜻으로 원하는 것이 이미 어긋나서 |
爭奈慵踈十倍多 쟁내용소십배다 | 게으르고 어설픔이 열 배나 많은 걸 어찌 하랴[爭奈]? |
午寢覺來花影轉 오침각래화영전 | 낮잠 깨고 나니 꽃 그림자 옮겨 와서 |
暫携稚子看新荷 잠휴치자간신하 | 잠시 어린 아들 데리고 새 연꽃 본다네. 『東文選』 卷之二十二 |
해설
인간이란 어른이 되어서도 마냥 무지개를 쫓는 어린이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러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침내 비틀거리는 발길로 실의(失意)의 언덕에 와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인제 여일(餘日)이 얼마 남지 않은 노경에 이르렀음을 자각함에서다.
만사휴재(萬事休哉)! 팽팽히 버텨오던 긴장이 실실이 풀려 버리고 나면, 남은 건 피로요, 느는 건 권태다. 꿈을 좇다 놓친 허망감과, 노쇠에서 녹아내리는 무력감은 ‘십배다(十倍多)’의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깨어나 보니 꽃그늘은 해시계처럼 위치를 옮겨갔고, 사람은 볕에 노출된 채 자고 있었던’, 그 잠들기까지의 경위를 역으로 추적해 보라, 그런 경황에도 꽃이야 싫지 않아, 꽃나무 아래 앉았다가 부지중 스르르 자세가 무너지는 길로 비몽사몽 자기를 잃어 간 도입(導入)의 경위가, 그 생략된 공백 속에 녹화되어 있음을 보지 않는가? 또 거기에는 얼마나 곤하게 잤는가 하는 시간의 길이며 깊이마저 자동적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본다.
한편, 이 ‘꽃과 노인’의 역설적이고도 희화적(戱畫的)인 대조는, 다음 구의 내용들과 호응하여, 또한 인생을 생각케 함이 있으니, 보라. 어린 녀석 손을 이끌고, 갓 피어난 연꽃을 구경하면서, 연못 둘레를 거닐고 있는, 크고 작은 두 영상을! 늙은이와 어린이, 시들어가는 연꽃과 새로 피어나는 연꽃, 그것은 ‘꽃과 노인’, 또는 ‘옮아가 버린 꽃그늘’과도 호응하여, 교체될 세대의 길목에서, 잠시 서로 손을 잡다 갈라설 숙명을 예시하고 있는 듯도 하지 않는가?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년, 161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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