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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석 - 문금월십오일 국가이정창군립왕위 전왕부자 이위신돈자손 폐위서인(聞今月十五日 國家以定昌君立王位 前王父子 以爲辛旽子孫 廢爲庶人) 본문

한시놀이터/삼국&고려

원천석 - 문금월십오일 국가이정창군립왕위 전왕부자 이위신돈자손 폐위서인(聞今月十五日 國家以定昌君立王位 前王父子 以爲辛旽子孫 廢爲庶人)

건방진방랑자 2021. 4. 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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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일에 국가에서 정창군을 왕위에 세우고 전왕의 부자를 신돈의 자손이라 하여 서인으로 폐위한 것을 듣고서

문금월십오일 국가이정창군립왕위 전왕부자 이위신돈자손 폐위서인(聞今月十五日 國家以定昌君立王位 前王父子 以爲辛旽子孫 廢爲庶人)

 

원천석(元天錫)

 

 

前王父子各分離 萬里東西天一涯

可使一身爲庶類 正名千古不遷移

 

祖王信誓應乎天 餘澤流傳數百年

分揀假眞何不早 彼蒼之鑑照明然 耘谷行錄卷之四

 

 

 

 

해석

前王父子各分離
전왕부자각분리
전 왕조의 부자가 각각 떨어지니
萬里東西天一涯
만리동서천일애
만 리 동쪽과 서쪽으로 하늘의 한 끝이라네.
可使一身爲庶類
가사일신위서류
가령 한 몸을 평민으로 만들 수 있다해도
正名千古不遷移
정명천고불천이
정명은 천고토록 옮기지 못하리.

 

 

해설

이 시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389915일에 국가에서 정창군(恭讓王)을 왕위에 세우고 전왕(前王) 부자(夫子)인 우왕과 창왕을 신돈(辛旽)의 자식이라고 하여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은, 이른바 폐가입진(廢假立眞)’에 대해 쓴 시이다.

 

우왕과 창왕이 각각 강릉과 강화로 유배되어 동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두 사람을 서인(庶人)으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정명(正名)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이러한 표현 속에서 운곡(耘谷)은 우왕과 창왕의 혈통이 신()씨가 아니라 왕()씨임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석

祖王信誓應乎天
조왕신서응호천
선조 왕건의 신의로운 맹세에 하늘이 감응하여
餘澤流傳數百年
여택류전수백년
남은 은택이 수백년에 흘러 전해졌네.
分揀假眞何不早
분간가진하부조
참과 거짓을 어찌 일찍이 분간치 않는가?
彼蒼之鑑照明然
피창지감조명연
저 푸른 하늘이 거울이 밝게 비춰주는 것을. 耘谷行錄卷之四

 

 

해설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맹세가 하늘에 감응하여 수백 년 동안 사직(社稷)이 이어 왔는데, 만약 우왕과 창왕이 신돈의 자식이라면 처음에 그 진위를 가려 등극을 막아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뒤늦게 따져 한 나라의 임금을 쫓아내고 있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저 푸른 하늘이 환하게 내려다보고 있다고 한 것은 함부로 천명(天命)을 거스르는 당시 위정자(爲政者)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비판한 것이다.

 

상촌잡록(象村雜錄)에 원천석(元天錫)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의 어조는 비록 질박하여 말이 안 되는 곳이 많지만 사실을 바르게 쓰고 숨기지 않았으니, 정인지(鄭麟趾)고려사(高麗史)에 비교하면 일성(日星)과 무지개처럼 현격하게 달라서 읽으면 눈물이 몇 줄이 흘러내린다. 대개 고려가 망한 것은 무진년 폐주(廢主)로 말미암은 것이다. 목은(牧隱) 같은 이들이 그래도 일맥을 유지하여 공의(公議)가 아주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정도전ㆍ윤소종의 무리들이 왕씨(王氏)가 아니라고 하는 자는 충신이 되고, 왕씨라고 말하는 자는 역적이 된다는 말을 만들어서 조정에서 떠들어 인심을 현혹시켜 드디어 선비들을 죽이고 사람들의 입을 막아 겨우 5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그러니 그 시대에 태어나서 정직하게 자기의 주장을 세운 자는 그 생활의 괴로움이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인심을 다 현혹시키지는 못하고 사람의 입을 다 막지는 못해서 시골구석에도 이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바르게 쓰는 동호(董狐) 같은 직필(直筆)이 있었으니, 어찌 돌이 누르면 죽순이 비스듬히 나온다는 것이 아니리오[詩語雖質朴多不成語 而事則直書無隱 比之麟趾之麗史 不啻日星螮蝀之相懸 讀之淚數行下 大抵麗之亡 由於戊辰之廢主 廢主之後 如牧隱儕流尙存 一脈公議未泯 故其時道傳 紹宗等輩倡爲非王氏者爲忠 謂王氏者爲逆之論 簧鼓朝廷 眩惑人心 遂得以魚肉士流 箝制口舌 僅五年而國亡矣 生乎其時而正直自樹者 其爲生辛苦顚沛當如何也 然而人心未盡眩 人口未盡箝 草野之間 有此董狐之筆 豈非石壓筍斜出者耶].”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 387~389

 

 

인용

문학통사

청창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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