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첨(李詹, 1345 충목왕1~1405 태종, 자 中叔, 호 雙梅堂)은 「저생전(楮生傳)」의 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재능을 발휘한 것은 시(詩)이다. 「용심(慵甚)」(七絶), 「등주(登州)」(五律), 「자적(自適)」(五絶), 「야과한벽루문탄금(夜過寒碧樓聞彈琴)」(七絶), 「주행지동양역(舟行至潼陽驛」(五律) 등이 각종 시선집(詩選集)에서 두루 뽑아준 대표작이다.
대체로 한원(閑遠)한 서정이 전편(全篇)에 펼쳐져 있어 동적(動的)인 미감(美感)은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용심(慵甚)」도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다.
平生志願已蹉𧿶 | 평생 뜻하던 일 이미 다 틀렸는데 |
爭奈慵踈十倍多 | 게으름은 더 많아지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
午寢覺來花影轉 | 낮잠에서 깨어나니 꽃 그림자도 옮겨가 |
暫携稚子看新荷 | 잠깐 어린아이 데리고 새 연꽃을 쳐다보네. 『東文選』 卷之二十二 |
작자의 한취(閑趣)를 음미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시편이다. 바깥짝(제3ㆍ4구)의 연결이 좋아 오후 한때 한가로움의 정조(情調)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정이오(鄭以吾, 1354 공민왕3~1434 세종16, 자 粹可, 호 郊隱)는 많은 것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죽장사(竹長寺)」(七絶), 「차운기정백용(次韻奇鄭伯容)」(七絶)이 특히 가작(佳作)으로 알려져 왔으며 「신도설야(新都雪夜)」(七律)도 그 구법(句法)이 평담(平淡)하여 기림을 받은 작품이다.
「차운기정백용(次韻奇鄭伯容)」은 다음과 같다.
二月將闌三月來 | 이월이 다가고 삼월이 오니 |
一年春事夢中回 | 일년의 봄빛이 꿈속에 돌아드네. |
千金尙未買佳節 | 천금으로도 오히려 좋은 시절 살 수 없는데 |
酒熟誰家花正開 | 누구 집에 술이 익어 꽃이 저리 피었나? |
정감의 유로(流露)가 전혀 절제됨이 없다. 당시(唐詩)가 어떠한 것인가를 확인하는 데 매우 적절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 시(詩)를 가리켜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 19번에서 국초(國初)의 절구(絶句) 중에서 마땅히 으뜸이 되어야 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주숙수가(酒熟誰家)’는 ‘수가주숙(誰家酒熟)’의 도치된 모습이다. ‘가(家)’ 평성(平聲)이기 때문이다. 문집(文集) 『교은집(郊隱集)』에는 제목이 「차증린졸정백형(次贈隣倅鄭百亨)」으로 되어 있다.
유방선(柳方善, 1388 우왕14~1443 세종25, 자 子繼, 호 泰齋)은 유주부(柳主簿)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주부(主簿)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권근(權近)ㆍ변계량(卞季良) 등에게 배워 일찍이 문명(文名)이 있었으나 오랜 유배생활로 현실에 뜻을 잃고 끝내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의 시(詩) 가운데는 「우제(偶題)」(五絶), 「서회(書懷)」(七絶), 「설후(雪後)」(七絶), 「효우승사(曉遇僧舍)」(五律) 등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작품은 모두 불우했던 그의 인간 경애(境涯)를 확인케 한다.
「효우승사(曉遇僧舍)」는 다음과 같다.
東嶺上初暾 尋僧扣竹門 | 동령(東嶺)에 해 돋을 때 중을 찾아 죽문(竹門)을 두드리네. |
宿雲留塔頂 積雪擁籬根 | 자던 구름 탑 위에 머물고 쌓인 눈은 울타리 밑을 에워쌓네. |
小徑連深洞 踈鍾徹遠村 | 작은 길은 골짜기에 이어져 있고 성긴 종소리 마을까지 울린다. |
蕭然吟未已 淸興到黃昬 | 쓸쓸히 아직도 읊조림을 끝내지 못했는데 맑은 흥은 어느새 황혼에 이르렀네. |
「서회(書懷)」는 다음과 같다.
門巷年來草不除 | 문 앞 골목 몇 년동안 풀을 베지 않았더니 |
片雲孤木似僧居 | 조각구름 외로운 나무 중의 집과 같구나. |
多生結習消磨盡 | 평생에 맺힌 버릇 이제 다 없어지고 |
只有胸中萬卷書 | 다만 가슴 속에 만권 책이 있을 뿐이네. |
한궁(寒窮)과 시름이 온통 이들 시편(詩篇)에 어우러져 있으나 시는 스스로 좋기만 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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