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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78. 한 글자를 바꾸니 생긴 일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78. 한 글자를 바꾸니 생긴 일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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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를 바꾸니 생긴 일

 

 

소화시평권상 78에서 한 글자를 바꿨을 뿐인데 내용의 깊이가 달라지는 걸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겨우 한 글자에 무에 그리 심상이 달라지겠냐고 영화 신세계에서의 이정재 말투처럼 거 번, 광한형 이거 한 글자 가지고 너무 장난이 심한 거 아뇨?”라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엔 단순히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바뀐 글자를 놓고 시를 보니, 거기다가 교수님의 설명까지 들으니 한 글자로 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시의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한 글자가 바뀜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같다. 노골적으로 보여주려 하기보다 살짝 가려서 보일 듯 말 듯, 줄 듯 말 듯,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이걸 은현(隱現)의 미학이라 표현했다.

 

前峯月照一江水 前峯月照半江水
앞 봉우리에 뜬 달 온 강물을 비추니 앞 봉우리에 뜬 달 강 반절만 비추니

 

우선 임번이 지은 시에서 한 글자가 바뀜으로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자. 바꾸기 전엔 어떤 상상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다. 훤한 달빛에 온 강이 환하게 드러났으니 여기엔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글자 하나를 바꾸면 수많은 상상이 가능해진다. ‘왜 달은 반절만 비추는 걸까? 반달인 건가? 아니면 구름에 반절이 가려졌나? 그것도 아니면 달이 막 뜨던 시기라 앞산에 반절 정도가 가려진 것인가?’ 등등의 상상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에서 ()’으로 한 글자가 바뀜으로 가능한 상상력의 세계다.

 

 

 

 

 

急水喧溪石 暗水喧溪石
급류는 바위 골짝을 울리는데 숨은 물 바위 골짝을 울리는데

 

신광한의 시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자가 있는 이상 여기엔 급류가 흐른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청각으로 그 현상을 드러냈으니, 굳이 시각까지 같은 것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시란 제한된 글자에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를 이미 썼다면 ()’자는 불필요한, 중복된 글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반절 정도나 가고 있던 신광한은 머릿속으로 위의 시를 그리며 ()’이 참으로 걸렸을 것이다. 머릿속으론 내가 왜 글자를 낭비했던가?’하는 생각도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결국 한 글자가 스쳤고 그걸로 바꿨다. ‘()’으로 바뀌는 순간 물의 선명한 이미지는 사라진다. 즉 그전까지만 해도 시각적으로 환하게 보이던 물이 사라져 버린 것에 진배없다.

 

예전에 도보여행을 하며 통일전망대에 가기 전 대진항 근처 교회에서 잘 때 검은 바다의 무서움을 몸소 체험했던 경험이 있다. 교회는 좀 높은 곳에 있어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그런데 밤이 되어 온 세상에 새카매졌는데 저 멀리선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때 여행기엔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본 바다는 까만 어둠이었고 파도소리만 들려왔다. 꼭 새까만 어둠이 나를 덮쳐올 것처럼 두려움이 엄습해 오더라.”라고 적었다.

 

신광한이 암수(暗水)로 바꾸는 순간 물은 눈에서 사라져 버렸고 세찬 물줄기의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러니 무섭게도 더 세차게도 느껴지게 된 것이다. 물을 사라지게 함으로 사람의 모든 감각을 청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한 글자 바꾼 것 치고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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