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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78. 한시에서 한 글자의 가치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78. 한시에서 한 글자의 가치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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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서 한 글자의 가치

 

 

지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퇴고(推敲)’라는 단어의 뜻은 글을 다 쓰고 난 다음에 검토해보며 고친다는 뜻이다. 글자 하나 바꾼다고 무에 달라질 게 있냐고 할 테지만, 한시의 경우는 매우 한정된 분량(5언 절구는 20자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에 담아야 하니, 한 글자 한 글자에 무척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나도 글을 쓰다 보면 단어 때문에 고민할 때가 많다.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글자가 떠오르지 않아 글쓰기를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땐 그 한 단어에 자꾸 미련이 남아, 알맞은 단어를 골라내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거리게 된다. 거기엔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단어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렇게 헤매게 되는데, 퇴고란 단어의 주인공인 가의(賈誼)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소화시평권상 78의 내용을 보니 무척 흥미진진했다. 더욱이 홍만종은 비슷한 상황을 중국의 사례와 한국의 사례를 동시에 들며 얘기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당나라 임번은 처음에 앞 봉우리에 뜬 달 온 강 비추네[前峯月照一江水]’라고 시를 짓고서 떠났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떤 사람이 앞 봉우리에 뜬 달 강 반절만 비추네[前峯月照半江水]’라고 한 글자를 바꾼 것이다. 만약 임번이 글자를 바꿀 맘이 없었다면 그건 남의 작품에 무례를 범한 것이 될 테지만, 실제로 한참을 가던 임번도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보단 ()’이 훨씬 작품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부리나케 돌아와 자신이 쓴 시를 보니, 이미 누군가 바꿔 놓았고 임번은 감복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더란 얘기다.

 

아마 임번은 그걸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우리도 누군가와 생각이 통해 같이 얘기를 할 때 찌찌뽕을 외치지 않던가. 찌찌뽕에 담긴 웃음의 의미는 타인일 것만 같던 사람이 공감대가 생겼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기쁨의 환호성 아닐까. 물론 손바닥을 때릴 수 있다는 건 덤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선 때 사람인 신광한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청계사에서 묵으며 그 흥취 그대로 급류는 바위 골짝 울리네[急水喧溪石]’라고 지은 것이다. 시를 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유유히 떠나서 무려 절반 정도나 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불현듯 한 글자가 스쳤다. ‘()’이 아닌 ()’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참을 왔다는 자각도 없이 달려가 암()자로 바꿔 놓고 왔다. 아마 그가 다시 돌아가야 할 길은 훨씬 가볍고 경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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