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한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나온 신광한이 지은 금강산 시는 『우리 한시를 읽다』의 12번 챕터에서 읽었었다. 거기엔 금강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금강산을 면모를 엿보는데 매우 긴요했다.
최근에 남북엔 화해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더욱 평양의 냉면이랄지, 평양의 부벽루랄지, 금강산, 백두산 같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면 으레 남아 있는 명승지에 대한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갈 수 없다 치더라도 머지않아 나의 두 발로 밟아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어리기 때문이다. 그런 정감을 키워주는 데에 선조들이 써 놓은 한시가 아주 긴요하게 작용한다.
위의 시는 두 편 모두 하나의 주제를 얘기하고 있다. 삶에 치여 맘속으로 그토록 그리던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一萬峯巒又二千 | 일만 봉우리에 또 이천 봉우리. |
海雲開盡玉嬋姸 | 바다구름 개자 옥 같은 봉우리들 선연해. |
少因多病今傷老 | 어려선 병이 많았고 지금은 늙음을 슬퍼하니 |
孤負名山此百年 | 쓸쓸히 명산을 저버린 나의 삶 백년. |
신광한의 시를 읽어보면 1구와 2구를 통해 금강산에 직접 가서 운무가 서서히 걷히며 봉우리들이 옥처럼 환하게 드러나는 광경을 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3구와 4구를 읽어보면 ‘과연 신광한은 금강산에 갔던 걸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젊었을 땐 병이 많았고 나이 들어선 노쇠하여 산에 가보지 못했다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구와 2구는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지금도 회자하며 부르는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라는 노래와 같이 그저 관념화된, 그래서 직접 가서 보지 않아도 그릴 수 있는 금강산의 모습을 그렸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가보지 않고 관념으로 노래했던 성석린의 시나 권근의 시는 금강산을 잘 묘사한 시로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신광한도 이처럼 가보지 않고 1~2구를 구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3~4구에서 풀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굳이 종질 신잠에게 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건 모든 나이든 사람이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그 한 마디 말을 위해서다. “나는 못 해봤으니 너는 다 해봐”,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금강산에 가보지 못했으니, 영동으로 부임하는 너는 금강산에 가서 맘껏 구경하고 와.”라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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