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사부터 착실히 시의 기본기를 연마해야 하는 이유
엄우(嚴羽)
夫學詩者, 以識爲主.
入門須正, 立志須高, 以漢ㆍ魏ㆍ晉ㆍ盛唐爲師, 不作開元ㆍ天寶以下人物.
若自退屈, 卽有下劣詩魔入其肺腑之間, 由立志之不高也; 行有未至, 可加工力, 路頭一差, 愈騖愈遠, 由入門之不正也.
故曰: “學其上, 僅得其中; 學其中, 斯爲下矣.” 又曰: “見過於師, 僅堪傳授; 見與師齊, 減師半德也.”
工夫須從上做下, 不可從下做上, 先須熟讀楚詞, 朝夕諷詠以爲之本, 及讀古詩十九首ㆍ樂府四篇, 李陵ㆍ蘇武漢魏五言, 皆須熟讀, 卽以李ㆍ杜二集, 枕藉觀之,
如今人之治經, 然後博取盛唐名家, 醞釀胸中, 久之自然悟入. 雖學之不至, 亦不失正路, 此乃是從頂;
上做來, 謂之向上一路, 謂之直截根源, 謂之頓門, 謂之單刀直入也. 『滄浪詩話』
해석
夫學詩者, 以識爲主.
일반적으로 시를 배우는 사람은 앎을 위주로 삼는다.
入門須正, 立志須高,
문에 들어갈 적엔 반드시 바른 것으로 해야 하며 뜻을 세울 적엔 반드시 높은 것으로 해야 하니,
以漢ㆍ魏ㆍ晉ㆍ盛唐爲師, 不作開元ㆍ天寶以下人物.
한ㆍ위ㆍ진ㆍ성당으로 스승을 삼아 성당 이하의 인물을 지어선 안 된다.
若自退屈, 卽有下劣詩魔入其肺腑之間,
만약 스스로 물러나 굽히면 곧 못 되고 졸렬한 시마(詩魔)가 폐부의 사이로 들어와
由立志之不高也;
뜻을 세우더라도 고상하질 않으며
行有未至, 可加工力,
행하여 이르지 않아 공력을 더할 수 있지만
路頭一差, 愈騖愈遠,
길 어귀에서 한 번 어긋나 더욱 달리더라도 더욱 멀어지니
由入門之不正也.
문에 들어가더라도 바르질 않다.
故曰: “學其上, 僅得其中; 學其中, 斯爲下矣.”
그러므로 “좋은 걸 배우면 겨우 중간을 얻게 되지만 중간을 배우면 하급이 된다.”라고 말한 것이다.
又曰: “見過於師, 僅堪傳授;
또한 말하겠다. “식견이 스승을 지나치면 겨우 전수를 감당할 수 있지만
見與師齊, 減師半德也.”
식견이 스승과 같으면 스승의 반절의 덕성조차 덜어버리게 된다.”
工夫須從上做下, 不可從下做上,
공부란 좋은 걸 따라 졸렬한 걸 지을 순 있지만 졸렬한 것을 따라 좋은 걸 지을 순 없으니,
先須熟讀楚詞, 朝夕諷詠以爲之本,
먼저 반드시 초사를 익숙히 읽고 아침저녁으로 읊조림으로 근본을 삼아
及讀古詩十九首ㆍ樂府四篇,
고시 십구수와 악부 사수를 읽으며
李陵ㆍ蘇武漢魏五言, 皆須熟讀,
이릉과 소무의 한위 오언을 모두 반드시 익숙히 읽어야 한다.
卽以李ㆍ杜二集, 枕藉觀之,
곧 이백과 두보 두 문집으로 포개어【枕藉: ① (물건 따위를) 포개어 베다 ② 서로 베개를 삼고 두서없이 누워서 자다 ③ 겹쳐 쓰러지다 ④ 포개어 넘어지다】 그것을 읽어야 한다.
如今人之治經, 然後博取盛唐名家,
예를 들면 지금 사람이 경서를 연구한 후에야 성당의 명문장을 널리 취하고
醞釀胸中, 久之自然悟入.
가슴에서 발효시켜 오래되면 자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雖學之不至, 亦不失正路,
비록 학문이 지극하지 않으나 또한 바른 길을 잃지 않으면
此乃是從頂;
이것이 곧 정수리를 따르는 것이다.
上做來, 謂之向上一路, 謂之直截根源,
최상 것으로 가르쳐 나가는 것을 ‘한 걸음 더 나아간다[向上一路]’라하며 ‘곧바로 근원에 파고드는 것[直截根源]’이라 하며
謂之頓門, 謂之單刀直入也. 『滄浪詩話』
‘갑작스런 깨달음’이라 하며 ‘단도직입’이라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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