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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필 - 술회이절 상지지당(述懷二絶 上止止堂)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김굉필 - 술회이절 상지지당(述懷二絶 上止止堂)

건방진방랑자 2021. 4. 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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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회를 지지당에 올라 풀어내다

술회이절 상지지당(述懷二絶 上止止堂)

 

김굉필(金宏弼)

 

 

日邊揮翰玉堂春 靄靄靑雲鬧後塵

嶺外枕書茅屋夜 娟娟孤月屬斯人

 

 

 

 

해석

日邊揮翰玉堂春
일변휘한옥당춘
임금 곁에서 붓 휘두르던 홍문관옥당(玉堂):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으로 옥서(玉署영각(瀛閣)으로도 불림.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의 관리와, 국가문서의 처리,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아다의 봄
靄靄靑雲鬧後塵
애애청운료후진
자욱하게 낀 푸른 구름에 후진이 시끄럽네.
嶺外枕書茅屋夜
령외침서모옥야
고개 바깥에 책을 벤 초가집의 밤
娟娟孤月屬斯人
연연고월속사인
곱디 고운 외론 달이 이 사람에 속하네.

 

 

해설

이 시는 지지당에 올라 소회를 읊은 시로, 중앙관료로서의 삶과 지방 처사로서의 삶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서울에서 벼슬할 때, 임금 곁에서 학문으로 보좌하던 영화로운 시절에는 후진들이 구름처럼 따랐다. 하지만 벼슬을 그만두고 영남으로 내려와 작은 서재를 열고 책을 베고 누운 밤, 곱디고우면서 외로운 저 달은 내 차지이다.

 

해동역사에 김굉필에 대한 간략한 생평(生平)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이며, 호는 한훤당(寒暄堂)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일찍이 점필재를 따라 소학을 배웠는데 평생을 소학으로써 몸을 단속하였다. 성리학에 정통하여 사문(斯文)을 일으키고 후생을 가르쳐 인도하는 일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갑인년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고, 다시 형조 좌랑으로 발탁되었다.

연산조에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나자 점필재의 문인이라 하여 희천(熙川)에 유배되고, 다시 순천(順天)으로 옮겼으며, 갑자년에 죄를 더하였다. 중종 초에 도승지를 설하고, 13년에 특별히 우의정을 더 추증(追贈)하였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선생이 희천에 귀양 갔을 때 조광조(趙光祖)가 따라가서 노닐면서 학문하는 큰 법칙을 배웠다. 오래 있다 돌아올 때 멀리 갈 때까지 바라보면서 말하기를, ‘우리 도가 동쪽으로 간다.’ 하였다[瑞興人, 字大猷, 號寒暄堂. 中生員試, 嘗從佔界齋受業, 授以小學, 平生以小學律己. 精於性理之學, 以興起斯文訓迪後生爲己任. 甲寅以遺逸薦授參奉, 擢拜刑曹佐郞. 燕山戊午史禍起, 以佔畢門徒配煕川, 又移順天, 甲子加罪. 中廟初例贈都承旨, 十三年特加贈右議政, 謚文敬. 先生謫煕川, 趙靜庵從往之遊, 得聞爲學大方. 久而歸, 目送之曰: ‘吾道東矣.’].”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54~155

 

 

인용

목차

문학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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