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배움의 조건이 발현된 건축물
배움이 일어나는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의 감정을 맘껏 개방할 수 있는 여건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잣대가 아닌 다른 잣대를 받아들일 수 있고, 겹겹이 쌓아놓은 외피를 벗어버릴 수 있다. 두 번째 조건은 ‘저 교사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교사가 있어야 한다. 오해가 스승을 만들고, 그런 스승은 언젠가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첫 번째 조건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환경을 중시한다면, 지금부터 알아볼 세 번째 조건은 몸을 다치지 않게 하는 외부 환경을 중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우치다쌤은 무도와 배움을 하나로 엮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도와 배움은 여러 부분에서 겹친다.
배움의 조건: 3. 위험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청결한 환경
두 사람이 합기도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때 서로에게 최대한 주파소를 맞추고 촉감을 민감하게 하고 아주 미묘한 근육의 변화까지도 느낄 수 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무도적인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 미묘한 촉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는 깨끗한 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개풍관’이야말로 일본에서 가장 자극이 적은 청결한 도장이라고 자부한다. 여긴 금속과 플라스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연물을 그대로 사용하여 후각과 촉감을 민감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환경이기에 감수성을 높여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껍데기를 벗고 한결 편하게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학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촉감을 민감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최적의 교육환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근대에 등장한 학교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규격화되었다. 배움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교육체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학교가 배움과는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 모교인 전주신흥학교. 근대학교는 배움을 고려하기보다 얼마나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교육할 수 있냐를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건물에 구현된 배움이 정신
이런 식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누군가는 ‘그건 배움과 상관없는 얘기다’고 생각할 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전에 고베여학원대학神戸女学院大学에서 새로운 건물을 만들 때, 위원회가 열렸고 설계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건물의 소리는 어떻습니까?”, “방음은 잘 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교실에서 말을 하면 뒷사람에게도 잘 들릴 정도로 울림이 있는가?’라는 의도로 물은 것인데, 그 사람은 ‘외부의 잡음이 완벽히 차단되는가?’라는 의도로 이해하고 대답을 해주더라.
▲ 현대 건축물에선 볼 수 없는 고풍스러움과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이 학교엔 100년 전에 미국 건축가인 윌리엄 메럴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es(1880~1964)가 지은 건물이 있다. 건물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목소리가 울려서 작은 목소리로 강의를 해도 전부 알아들을 수 있고 목소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말을 해도 목소리가 부드럽게 전달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 건축가는 배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할지라도, 배움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선교사로 도일하여 많은 유서깊은 건축물을 남긴 윌리엄과 그의 아내 마키코의 모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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