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청소년 대안교육, 새로운 전환의 모색 - 1.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오늘에 이르기까지(김경옥) 본문

연재/배움과 삶

청소년 대안교육, 새로운 전환의 모색 - 1.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오늘에 이르기까지(김경옥)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8:50
728x90
반응형

1.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오늘에 이르기까지(김경옥)

 

 

강의를 듣기 전 느낌

 

이렇게 많은 패널들이 어떻게 말할까? 우치다 강연 때와 같이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상황에서 그냥 한 마디씩 말만 하다가 말았던 그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말은 하지만 충분히 말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며 수박 겉핥기 같은 말만 하다 보니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하던 그 때의 강연처럼 말이다. 오늘은 과연 어떨까?

 

 

  오랜만에 대안교육판에 오래도록 함께 하신 분들의 고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왔다.

 

 

 

대안교육의 시작

 

이제 내가 전설을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데에 여러 감정이 든다. 여기엔 나를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과연 이들에게 전해야할 전설은 뭘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민들레에선 2008년에 대안교육 10주년 행사를 했고, 누군가는 2006년에, 누군가는 2009년에 하기도 했다. 그만큼 각자가 생각하는 시작은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곧 누군가 한 번에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어떤 어둠의 끝에 미약한 흐름에 의해 시작된 것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보통 1990년대 말에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고 보면 맞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대안교육 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구천년이 지나가며 새천년이 오고 있던 시점이기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바람들이 얼키고 설켜 그리된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지금 시대의 흐름이 어떤지 돌아보며 들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

1990년대 말은 교육이 제일 황폐한 시기였다. 그때 자살하는 아이들이 많이 나오며, ‘교육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공동의 이해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의 학교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전장을 던지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엔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곳을 학교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던 시기였다. 그래서 명칭을 정할 때 우린 대안교육이란 말을 만든 것이다.

 

 

첫 발제를 하고 계시는 김경옥쌤.

 

 

 

대안교육의 의미

 

대안교육이 시작되었다고 그때까지 있던 교육의 문제들이 해결되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래도 일정 부분에선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대안교육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세 가지 부분에선 동의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1. 교과서로의 교육은 그만하자.

2. 경쟁교육은 그만하자.

3. 더불어 사는 교육을 하자.

 

 

역시 이곳도 먹을 것 풍년이다. 잔뜩 챙겨왔다. 금강산만 식후경이 아니라, 좋은 말도 식후경이다.

 

 

 

도시형 대안학교의 등장

 

그땐 시골에 대안학교들이 있었는데, 시골에서 하려니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다. 우선 초기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과 완벽한 교사진을 꾸린 후에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대도시에도 새로운 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걸 충족해줄 수 있는 기반은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 때 대도시에서 씨앗들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변산공동체 학교도 전원에 위치한 학교다.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첫째, 하자 작업장 학교이다.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는 의견에 따라 전문작업장을 만들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 것이다. 바로 작업장에서 죽치고 눌러 앉아, 학교에는 가지 않는 아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포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배움터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둘째, 민들레 출판사다. 이곳은 출판사로 문을 연 곳이고 그러다 보니 그런 내용들에 감화받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이들 또한 시간이 점차 지나며 죽치게 되면서, 내부적인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민들레 사랑방을 만들게 되었고, 그건 결국 공간 민들레가 되었다.

이 두 곳은 그래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곳이다. 그땐 아이들이 학교에선 희망이 없어라는 생각으로 학교를 뛰쳐나와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며 부딪히는 경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셋째, 도시 속 작은 학교인데, 이 학교가 바로 그런 학교다. 자발적으로 찾아오지 못하는 학교 밖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그 아이들을 모아 1999년에 학교의 문을 열었다.

 

 

민들레 읽기 모임에 참여하면 이렇게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다. 2011년엔 꽤 나갔었었지^^;;

 

 

 

도시형 대안학교 지원 센터의 등장과 변화

 

이런 식으로 대안 학교들이 문을 열었지만, 그렇다고 공공기관이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점차 학교를 이탈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학교 밖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공감대와 학교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면서 서울시도 이거 학교에 무슨 문제가 있긴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급기야 대안교육센터를 만들게 된 것이다.

 

 

대안교육센터이던 시절엔 그래도 대안학교를 육성하는데 중점을 뒀다.

 

 

이 곳은 어찌 보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나가는 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진짜 교육을 고민하는 곳을 많이 만들어 지원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관을 양성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한 고민들을 함께 하고 비젼을 공유하기도 했다.

 

 

명칭이 바뀌며, 성격도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2013년에 학교밖 청소년 지원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건 센터의 성격도 어느 정도 바뀌었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 당시 자발적으로 학교를 나오는 아이들은 줄어들었고, 대체적으로 무기력하고 하고 싶은 게 없지만, 학교에서 견디는 건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센터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기관들을 양성하는 것보다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해주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센터와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분명한 어조로 흐름을 한 번에 꿰어주신 경옥쌤.

 

 

인용

목차

강의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