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지에 투항 말고, 미지에 투신하라
요즘 천착하고 있는 주제가 ‘사후적 지성事後的 知性’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곧 지금까진 매우 ‘사전적事前的 지성’으로 살아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 작년에 아이들과 일주일 동안 함께 떠난 자전거 여행은 일반적으로 '미친 짓'이다. 하지만 해보기 전엔 모르는 것도 있다.
사전적 지성으로 배워왔다
‘사전적 지성’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계획을 하고, 그 계획대로 실천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계획을 하고 실천해야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도 그와 같은 방식만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그건 무언가를 하기 전부터 ‘이걸 하고 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는 상황’을 말한다. 하기도 전에 이걸 하고 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리고 그게 나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알 때에만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밑바닥엔 ‘등가교환의 환상’이 자리하고 있다.
▲ 우린 등가교환의 세계에 살고 있다. 돈을 주면 그 자리에서 상품으로 교환 받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배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학교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 “배워봤자 도움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지 않을 게요”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는 과목 중엔 국영수사과와 같은 주지교과主知敎科(이 단어 자체가 매우 폭력적임)는 없고, 기타와 요리, 목공, 아카펠라와 같은 특수 과목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지교과의 경우 이미 우리 사회에선 유용성이나 가치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걸 공부하면 대학에 갈 때 도움이 된다’, ‘남들 앞에서 무시당하지 않는다’와 같은 합의가 이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과목은 이미 사전적으로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히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 올해 2월엔 학교 환경 개선으로 벽지 도배를 했었다. '벽지 도배도 교육이 된다'라고 말한다면, 과하다고 하려나?
그렇다면 이제부턴 사후적 지성으로 배우라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은 과목의 경우, ‘배워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왜 배워야 하는지?’, 심지어는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기에 아예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치를 모르니까 배우지 않겠다’라는 말은 어딘가 매우 어색하다. 애초에 배움이란 존재의 역량을 키우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며, 관계의 망을 확장하는 것이기에, 배우기 전에 배운 후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모르는 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 전주 한옥마을의 전경. 배우고 나면 조감적 시좌로 이륙하여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걸 보고, 들리지 않던 걸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이나 조선시대나 배움의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정약용은 『다섯 가지 배움에 대하여五學論』란 글에서 “가까이는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바로잡는 것은 생각지 않고, 멀리는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것은 구하지 않는다. 오직 널리 듣고 잘 기억하는 것과 글 잘 짓고 말 잘하는 것을 자랑하며 세상을 고루하다고 깔볼 뿐이다(邇之不慮乎治心而繕性, 遠之不求乎輔世而長民. 唯自眩其博聞強記宏詞豪辨, 以眇一世之陋而已.).”라고 비좁아질 대로 비좁아진 배움만이 판치는 세태를 일갈한 것이다.
이처럼 배움은 ‘사전적 지성’으로는 결코 알 수 없고, 배울 수도 없으며 오로지 ‘사후적 지성’으로만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학자가 바로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노력이라는 것을 일종의 상거래쯤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 같은 시스템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력하게 만드는 이상, 노력한 이후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사전에 보여 달라. 그러면 노력하는 데 훨씬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원래 ‘인센티브’라는 것은 수업과는 무관한, 본질적으로 ‘반수업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왜 반수업적인가 하면, 인센티브incentive(동기, 장려금, 보상, 격려 등을 의미)의 가치는 노력하기 전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 효과적인 것은, 노력하기 이전에 ‘돈의 가치’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수업이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수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수업하기 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우치다 타츠루 저, 샘터, 2015, 19쪽
사전적 지성만을 부추겨 배움의 장으로 끌어들일 경우 할 수 있는 말은 “이걸 배우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 “10분만 더 참고 공부하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와 같은 말이다. 지금 당장 그 말을 들어도 바로 미래상을 그릴 수 있고, 그게 어떤 말인지 6살 아이도 뻔히 알만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건 현재의 욕망을 극대화시켜, 존재의 역량을 낮추고, 인식의 지평을 좁히며, 관계의 망을 축소시키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사후적 지성’으로 널리 바라볼 수 있고, 알지 못하는 것에 몸을 맡겨 노닐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건 당장의 이득을 쫓아가는 게 아닌, 지금 당장은 납득도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끌리기에 해보려는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려면 기지旣知(이미 알고 있는 것)에 투항해선 안 되고, 미지未知(아직 모르지만 끌리는 것)에 투신해야만 한다.
▲ 올해 청계천에서 열린 대안교육 한마당에선 미지에 투신하는 많고 많은 청소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용
2. 모르기에 갈 뿐
8. 단재학교 영화팀 5번째 작품, ‘DREAM’ 제작기
10. 돈 돈 돈, 그것이 문제로다
11. 돈 앞에서도 배려심을 발휘한 단재학교의 대중지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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