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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 2018년 닫는 글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 2018년 닫는 글

건방진방랑자 2021. 9. 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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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용을 들었더니 생긴 일

 

 

최근에 후배는 시기가 도래한다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아직 시기가 도래하지 않아서 그런 거지.”라고 말하거나, 자신이 최근에 문장을 보는 실력, 방법 등을 예전과 다르게 적용하게 되면서 자신에게 맞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곧잘 말한다.

 

 

 

9년 만에 중용을 볼 시간이 도래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언제라 말할 순 없지만, 그리고 설혹 그러한 변화가 나타났을 때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급작스런 순간들이 있다. 그런 변화에 누구나 의미를 부여하고 싶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살다 보니’, ‘무언가 고민하다 보니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그 변화에 전과 후가 명확히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며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날카롭게 분석하려 한다.

 

65(), 그 날은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그 날도 쾌청했고 마음엔 한껏 여유가 깃들어 행복이 마구 마구 샘솟고 있었다. 순대국밥을 먹고 오전에 작업한 걸 한바탕 올리고 한숨 잔 후 임고반으로 올라가려 할 때 2009년에 열심히 작업하여 책으로 만들어놓은 중용의 길, 나의 길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렵디 어려운 중용을 이 책을 통해 그나마 가까이 할 수 있었고 작예악(作禮樂)’ , 문화 창조자인 성인이 되기 위한 애씀과 성실함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그건 한 줄기 빛처럼 나를 감싸 안았고 아메바 같이 하잘 것 없는 나도 이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해줬다. 아마 이 순간 이 책이 다시 눈에 뜨인 까닭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불안, 두려움 등이 미묘하게 섞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임고반 자리엔 건빵재가 문을 열었고 이곳에서 그간 하고 싶었던 작업들을 맘껏 하고 있다.  

 

 

 

9년 만에 다시 접한 도올의 중용책과 블로그의 콜라보

 

불현듯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단재학교에 다니는 게 어느덧 6년 차가 되면서 심드렁해졌다. 무지 편한 곳이고 나에게 시키는 것도 없었지만 일상의 반복, 무료함, 타성에 젖어들었고 심지어 여행조차도 귀찮다고 인식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그냥 하루 종일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학교 나오는 것도 귀찮다 귀찮아.’라고 할 정도였는데, 막상 이 상황에 놓이고 보니 공부라는 불안감, 임용이라는 두려움, 결국 날 믿지 못하는 불신이 가득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더라. 그런 좋음과 싫음, 희망과 절망, 행복과 불행, 가능성과 막막함 사이에서 헤매다가 다시 2009년 당시에 저 중용을 읽으며 맛봤던 희망을 맛보고자 집어 들고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그땐 정말 몰랐다. 그 작은 몸부림이 낳게 될 파장을 말이다. 올라와서 읽다 보니 정말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쳤다. 어쨌든 중용도 공부할 생각이었으니, 이 책도 정리해서 블로그에 업로드를 하고 그 덕에 중용 원문도 함께 공부하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우리 한시를 읽다를 정리하여 블로그에 업로드하고 김형술 교수와 수업한 소화시평을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그로 인해 자연스레 생각의 변화가 수반되었다. 그건 블로그에 올릴 땐 그래도 의미 있고 누군가의 자료가 아닌 나만의 자료여야 한다는 생각의 틀이 있었던 것이다. , 좀 더 단순히 말하면 나만의 자료만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여전히 나에 대해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바라는 모양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두 작업을 하면서 블로그는 하나의 매체일 뿐이며 지금의 나에겐 하나의 공부장일 뿐이라고 정리하게 됐다. , 이상적인 것만을 심혈을 기울여 담아야 하는 게 아닌, 지금의 별 볼일 없더라도 지금의 내 모습, 초라할지라도 날 것 그대로를 담자고 말이다. 완벽한 이상으로서의 내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긍정할 수 있다면, 있는 나로서의 나를 담아내는 데에 주저할 이유가 없겠다 싶었다.

 

이런 생각의 변화로 블로그엔 지금의 어설픈 해석들도 곧잘 담기 시작했고 십팔사략도 그렇게 어영부영 끝을 내긴 했다. 이로써 또 하나의 과정을 통과한 것이다.

 

 

 

[우리 한시를 읽다]를 공부하고 정리하며 진행하고 있다.  

 

 

 

2. 중용을 석 달 만에 마치며 알게 된 것

 

 

이쯤에서 잠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무언가 끝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다. 최근에서 더 크게 느끼게 됐는데, 그건 단순히 하던 일을 마무리 지었다는 정도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후배 민희가 보내준 희망 한 아름이란 선물이다. 기존의 번역서가 있지만 좀 더 깔끔하게 다듬어져서 보기 편하다. 

 

 

 

끝내보았을 때 알게 되는 두 가지

 

이걸 잘 몰랐을 때는 논어맹자를 어쨌든 다 해석하고 나면 할 게 없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만 했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

 

그건 어쨌든 한문공부를 일정수준까지는 공부했다는 말이고, 그럼에도 합격하지 못하는 건 내가 자질이 없거나 임용은 글러 먹었거나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급기야 그러니 사서(四書)를 이렇게 빨리 끝냈으면 안 됐는데하는 생각에 이르며 공부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이것이야말로 비합리적인 신념의 끝판왕 격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명확히 알게 됐다. 무얼 끝냈다는 의미를 이제야 제대로 음미하게 됐기 때문이다.

 

첫째, 끝냈다고 하더라도 끝낸 건 아니다. 그건 기반을 만든 정도에 불과할 뿐, 내가 완벽하게 알게 됐다는 걸 의미하지 않으니 말이다. 더욱이 한 번 했다는 자기 위안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안 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럴 땐 차라리 한 번 보긴 했는데, 여전히 몰라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봤지만 모른다’, 그러니 다시 보고 다시 파고들려는 우직함과 멍청함이 필요하다. 바로 이와 같은 깨달음을 주는 글들엔 김득신독수기(讀數記)정약용과 황상의 대화인 임술기(壬戌記), 그리고 중용20장의 남은 한 번에 잘하더라도 나는 백 번이라도 해보며 남은 열 번에 잘하더라도 나는 천 번이라도 해보련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공자의 증자에 대한 평가들이 있다. 이 글의 내용을 안다 모른다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멍청스럽게 알려고 노력했고, 얼마나 모르는 듯 배우려 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횟수를 내가 조금이라도 알게 되는 그 순간까지 밀어붙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마치는 순간 끝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길이 생기고 다른 방법이 강구되며 여태껏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 열린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이야말로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끝내면서 어느 부분이든 생각이 바뀐 곳이 있으니, 그건 다른 방향의 변화를 유도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 중용을 블로그에 업로드하겠다고 맘을 먹고 나선 책으로 있는 파일, 예를 들면 시네필 다이어리, 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시미학산책과 같은 책들도 올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아예 카테고리도 만들게 됐다.

 

그러니 끝남의 의미를 이쯤에서 새롭게 정의할 수 있겠다. ‘무턱대고 큰 꿈을 꾸기보다 하나하나 있는 것들을 끝내가기 위해 목표치를 최저로 잡고 해나가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또는 끝냄이란 결과를 통해 예전엔 전혀 생각도 못해본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실행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끝남의 진정한 의미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물은 건너봐야만 알고, 하고 싶은 건 생각만 하지 말고 해봐야만 그 의미를 알며, 한계치를 정하기보다 맘껏 부딪혀 봐야만 무언가가 열린다.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이야말로 외투를 벗으려 할 때 상처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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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 “, 저 같은 아이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정약용: “너 같은 아이가 누구냐?”

황상: “첫째는 머리가 둔한 것이고 둘째는 막힌 것이며 셋째는 미련한 것입니다.”

정약용: “공부는 너 같은 아이라야 할 수 있다. 너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너라야 할 수 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은 자신의 머리만 믿고 소홀하게 공부한다. 막힘없이 글 잘 쓰는 이는 자신의 재주에 마음이 들뜨기 쉽다. 배우고 바로 깨닫는 사람은 공부를 대충 하니, 그 깨달음이 오래가지 못한다.” 

 

 

 

두 번의 멈칫했던 순간들과 변()

 

그렇게 여러 생각들이 정리되며 65일부터 내가 썼던 서문부터 시작하여 올리기 시작했다. 그게 어제부로 끝난 것이니, 석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보면 된다. 체감 상으론 한 달 정도가 걸린 거라 느껴졌는데 무려 석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데도 올린 시기들을 보다보니 뜸해진 순간들이 보인다. 10을 끝낸 날이 626일인데, 11717일에나 시작하고 있고, 18731일에 끝냈는데, 19823일에나 시작하고 있다.

 

 

일시 정리 내용 내용
6.5 ~ 6.26 서문 ~ 중용10 21일 동안 꾸준히 올림.
7.17 ~ 7.31 중용11~ 중용18 초반의 열정이 사라지며 21일 동안 올리지 못함.
14일간 꾸준히 올림.
8.23 ~ 9.10 중용19~ 마무리 20장이 양이 많기에 부담이 되어 20일 동안 올리지 못함.

 

 

처음 멈칫했던 순간에도 무언가를 계속했으니 어떤 이유인지 지금에 와서 농땡이를 피웠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생각으론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65일의 각오가 한 풀 꺾이기에 최적화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초반엔 확실히 흥미롭기 때문에 막 달려들어 하게 되고, 그게 어느 일정 수준까지는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곧 시들시들해져 버린다(바로 이 마음은 딴 것보다 카자흐스탄 여행기에서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 여행기는 지금 와서 다시 올리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인데도 처음엔 하루에 하나씩 올리자라고 생각하며 달려들었지만 곧 생각이 흐려져 지금은 올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하는 상황이 됐다). 거기다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늘어나면 더욱 정신을 못 차리고 올리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초반에 무려 21일이나 버텼다는 건 나름 선방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사실이 보여주는 건 무얼 하나 꾸준히 한다는 게 결코 쉽지 만은 않다는 얘기다.

 

그러고 나서 14일 간 또 일정을 진행하다가 18장까지 하고 멈칫했다. 그러고 또 20일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이다. 이때는 그래도 최근의 일이라 왜 그랬는지 명확히 기억난다. 중용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장은 바로 20이다. 많은 정도가 약간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많다. 그건 마치 자전거를 이제 처음 배운 사람에게 서울까지 라이딩을 가자고 하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 이유들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무작정 시간이 흐른 것이고, ‘헉 하는 심정을 넘어 레알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다 양혜왕7을 했을 때처럼 나누어서 부담을 최소화하고 해보자고 방법을 바꿨다. 해야 할 게 많을수록 잘게 나누어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로 분량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안도감을 갖고 조금씩이라도 성취해가니 말이다. 그래서 내용에 따라 나눠보니 크게 5개 정도는 나눠질 것 같았다.

 

 

 

두 번의 멈칫으로 알게 된 것

 

그렇게 한 고비를 넘고 나니 완전히 수월해졌다. 아래의 표는 두 번의 멈칫이 어떤 차이점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표다.

 

 

장수 기간 성백효 번역본 페이지 소요시간
1~18 65~731 82~ 141 한 달 26
19~33 823~99 142~ 196 17

 

 

위의 표를 보면 더욱 분명해지지만 난관에 부딪치면 한없이 늘어지지만 한 번 돌파구를 마련하면 진도는 쭉쭉 빠지게 된다. 특히 심적으로 저것은 벽이라고 느낀 거라면 더욱 그렇다는 점이다. 넘기 전까진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는 성벽, 철옹성처럼 느껴지지만 넘고 나면 순식간에 그들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그러니 위기는 곧 기회라고, 넘어진 그 상황이 곧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순간이라고 한 말이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고전서]와 [한어대사전] 등 공부를 위한 도구들이 엄청나게 발달되어 있다. 거기에 한국고전번역원의 글들까지. 참 좋다.  

 

 

 

3. 닫는 건 열기 위해서다

 

 

3월부터 제대로 공부를 시작한 이후 십팔사략713일에 마무리 지은 경험 이후로 두 번째로 맛보는 뿌듯함이다.

 

 

 

성실함이 아로새긴 발자취

 

그러나 십팔사략은 한 권을 제대로 한 게 아니라 한문 임용생에게 그나마 의미가 있는 한나라까지의 역사만을 다루고 멈췄기에 제대로 끝낸 건 아니라는 찝찝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엔 오롯이 마쳤다는 점에서 다르다. 중용원문, 중용한글역주, 도올선생의 중용강의까지 세 권을 함께 공부하며 나름대로 집대성해보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참고할 서적이 두 권으로 늘어나면서 하나도 제대로 못 봤다는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기반을 마련한 것이니 다음에 볼 땐 훨씬 수월할 거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지금은 완벽(完璧)이 아닌 미비(未備)함으로, 하지만 그런 미비함이 쌓이고 쌓이면 그 또한 저력이 된다는 것을 믿고 나가보련다. 중용의 결말을 도올쌤은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 했듯,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경험해 볼 것이다.

 

 

15년 만에 나온 [중용한글역주]를 통해 중용의 저자를 자사로 확정지었다. 그간 간백자료들이 출토되며 여러 정보가 수정되었다.  

 

  

 

중용의 저자가 바뀌다

 

그와 더불어 최근에 유튜브에 업로드된 김용옥 쌤의 영상을 켜놓고 보고 있다. 이미 그의 책에서도 울려 퍼졌던 진심이 영상에선 더욱 더 처절한 외침으로 울려 퍼진다. 그 영상은 2011년에 원강대에서 했던 중용 강의를 담은 내용인데 그렇지 않아도 나도 어제까지 그의 책을 통해 중용을 읽었던 터라 꼭 지금 그 자리에 내가 가서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 물씬 들었고 그가 하는 얘기들이 이미 책에 모두 쓰여 있기 때문에 무엇을 말하는지도 명확하게 이해됐다.

 

그 얘기 중에 귀에 콕 박히는 듯 들리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건 90년도에 강의내용을 녹취한 기록물인, 그래서 이번에 함께 업로드 작업을 했던 글과 2011년에 발간된 중용한글역주사이엔 괴리가 있다. 이 두 책의 가장 큰 괴리는 저자 판정에 있다. 이미 뭇 서적들에선 중용의 저자는 자사라고 밝히고 있지만 90년도 당시엔 그걸 비판하셨다. 비판의 논조는 그렇게 이른 시기에 이런 정합성(整合性), 체계성을 자랑하는 논문 형식의 이런 글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도의 얘기를 할 수 있으려면 음양론(陰陽論)에 기초한 천지론(天地論)이 발달되어 완숙한 이해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며 지인용(智仁勇)이니 삼달덕(三達德)이니, 구경(九經)이니 하는 개념에 익숙하고 그에 따라 말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며 그걸 포괄하는 성()에 대한 논의가 갖춰져야 하니 말이다. 그러니 도올선생의 중용강의때엔 이런 식의 논의가 등장하려면 진나라 이후라고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사는 결코 저자가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임고반에서 내려다 보는 청명한 가을하늘 좋다. 

 

 

청룡열차를 탄 아찔함이 느껴지는 학문

 

나 또한 그 책을 읽었을 땐 너무도 지당한 말씀이라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2011년에 발간된 중용한글역주를 보고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그간의 논리를 일순간에 뒤엎고 자사의 저작설을 굳혔으니 말이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공자세가오행(五行)과 같은 책들, 그동안 위서(僞書)로 간주되어 온 책들과 비교하며 입증하였다.

책에선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강의를 들어보니 도올쌤이 느꼈던 혼돈, 충격이 확실히 느껴지더라.

 

 

무덤에서 자료가 나온 거란 말입니다. 이 자료의 문제가 BC350년 이전으로 다 올라가야 하는 거예요. 그 전에 한대(漢代) 이후의 문헌이라고 여러 서적을 참고해가며 몇 백 년에 걸쳐서 정교하게 구라를 쫙 펴놨는데 개봉하는 동시에 다 거짓말이 된 거야. 그래서 지금 난리가 난 거야. (중략)

완전히 중국은 개벽이야. BC350년 이전으로 올라가는 문헌들의 수준이 놀랍게 개념적이고 철학적이란 말이야. (중략)

요즘은 우리 중국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청룡열차를 탄 것 같애. 정신이 없어요. 너무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처럼 어지러워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모르니까. 관심도 없어. 이게 한심한 일이라 이거야. 어느 대학이든 나처럼 청룡열차를 탄 것 같다고 해까닥하는 사람들이 없어.

이게 내 자랑이 아니라 이게 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예요. 일본학자들은 죽간 자료에 대한 연구에 수백 명이 참가하고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엔 한 사람도 없어요. 중용의 근본이 되는 자사의 자료가, 동시에 중용과 똑같은 논의가 되는 자료가, 중용만큼 방대한 자료들이 그냥 나온단 얘기야. 그러니까 중용이 자사의 작이라는 게 입증이 되는 거지.

 

 

도올선생님의 말씀이 하나하나 새겨지듯 들린다.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도 느껴진다 .  

 

 

 

제대로 인문학적 토대에서 공부하자

 

도올쌤은 청룡열차를 탄 것 같애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듯이 자신이 여태껏 목소리 높여 주장해왔던 것들이 쌩거짓말이 되고 그런 비판의식조차 없던 사람들은 아무런 내상(內傷)도 입지 않고 당당하게 있으니 말이다. 자신은 그런 아찔함을 느꼈고 중국학자들도 모두 말로는 할 수 없는 혼돈에 휩싸여 있었는데 우리나라 학계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그 안타까움이 진실한 것이었기에 절절하게 가슴을 울렸다

 

여기에 덧붙여 학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줬다.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다.

 

 

중용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이 나왔어요. 그러니 옛날처럼 앉아서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아쿠라 쿠라라고 하면 안 되지. 그것 다 비교해보면서 연구해야 하니까 새로운 관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중략) 한학을 하면 맨날 뭐 어디 산 속에 틀어박혀서 주역을 연구했다고 그러고. 이런 미친 놈들만이 한학자라고 하고 나서니 말야. 이게 진짜 한심한 나라란 말이야.

학문이란 게 그렇게 한학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런 식으로 오해를 하지 말란 말야. 여러분들이 앞으로 공부를 하더래도 제대로 인문학에 토양을 가지고 인류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논리학적으로 치밀하게 분석을 해서 하나를 알아도 정확하게 알아야 된단 말야. 그러니 무슨 한학을 한다, 저 사람 한문을 잘 한다 이런 말 절대로 믿지 마세요. 그런 한문은 이제 소용이 없어. 완전히 새로운 자료를 포괄해서 새롭게 안 보면 이게 택도 없어.

 

 

우리에게 주어진 사서는 결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판본문제, 역사흐름의 문제, 그리고 조선조에 받아들여지며 교조화된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런데 그런 흐름들을 거두절미하고 하늘에서 주어진 책인 양 외우고 읽고 있으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서 도올 선생님은 비판의식, 흐름을 제대로 인지한 상태로 성실하게, 그러면서 새로 나온 자료들을 성실하게 공부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러니 2018년 닫는 글은 책 편집을 마쳤기에 이 글을 끝내는 의미로 닫는 글임과 동시에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을 위한 여는 글이기도 하다. 2009년의 닫는 글개밥바라기별의 저자 글을 인용하여 답답함을 토로했다면, 이번 닫는 글은 활기찬 미래를 향한 희망을 얘기하며 마친다.

 

 

2018910

임고반 501B 55번 자리에서

건빵

 

  도책장에 있는 [중용의 길, 나의 길]이 보인다. 이 책을 열심히 편집하여 드디어 마무리 지었다.  

 

 

인용

지도 / 임용 공고문 / 18년 글 

목차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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