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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3. 기속시인의 낭만(김려)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3. 기속시인의 낭만(김려)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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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려(金鑢, 1766 영조 42~1822 순조 22, 士精, 藫庭)는 소위 강이천사건(姜彛天事件)’에 연루되어 정조로부터 패관소품(稗官小品)에 힘쓰는 자라 지탄받고 유배됨으로써 유명해진 문인이다. 이 사건의 확대로 김려(金鑢)10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옥사와 유배생활을 통해 김려(金鑢)는 새롭게 역사와 문학을 바라보게 된다. 김려(金鑢)가 만년에 편집한 방대한 분량의 야사총서 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는 당론에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작업이었다.

 

한편 김려(金鑢)는 자신을 비롯한 주위 문우들의 시문을 수집하여 담정총서(藫庭叢書)를 편집하였는데, 특히 이옥(李鈺)의 전()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수집, 정리하였으며 그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김려(金鑢)는 또 세상에 처신하는 인간의 여러가지 모습을 다룬 8편의 전을 모아 단량패사(丹良稗史)를 남기고 있다. 이러한 산문에서의 성과와 아울러 김려(金鑢)는 한시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이룩하였다. 담정의 황성리곡(黃城俚曲), 상원리곡(上元俚曲), 사유악부(思牖樂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등의 작품은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성행한 악부체, 고시체의 수준 높은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기속악부(紀俗樂府)의 성격을 띠고 있는 사유악부(思牖樂府)의 창작배경은 담정(藫庭)32세의 나이로 강이천(姜彛天)의 유언비어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의 부녕(富寧)으로 유배된 일이다. 담정(藫庭)은 이어 신유사옥에 다시 연루되어 진해로 이배(移配)되었는데, 이때 부령의 백성들 및 당시 자기주변에 있었던 다정한 사람들을 잊지 못한 그리움으로 사유악부(思牖樂府)를 짓게 된다. 사유악부(思牖樂府)는 부령에서의 생활 및 그곳의 인물, 풍토를 내용으로 한 총 290편의 불제언(不齊言) 단형체로 되어 있다.

 

問汝何所思 무얼 생각하나?
所思北海湄 저 북쪽 바닷가.
苦雨長夏漲溪漩 긴 여름 장마비에 개울이 넘쳐
五日不覿蓮姬面 닷새나 연희 얼굴 보지 못했네.
今宵雨歇月在沙 오늘밤 비 개고 모래톱에 달이 뜨니
水邊楊柳漾綠紗 물가의 푸르른 버들 비단처럼 살랑이네.
竹筇麻鞋出溪上 지팡이 짚고 짚신 신고 개울가로 나가는 건
信步擬往蓮姬家 발 따라 연희집에 가려해서지.
忽見沙際無限樹 그 때 보았지, 모래 기슭 우거진 숲에
樹梢微動人影度 나뭇가지 흔들리며 사람 그림자 스치는 것.
短傘布裙提葫蘆 작은 우산에 치마 끌며 술병 들고서
蓮姬已踏橋西路 연희는 벌써 다리 건너 이쪽으로 오고 있네.

 

위 작품은 사유악부97수로, 연희라는 미천한 기생출신의 여인에 대한 담정(藫庭)의 진실한 사랑을 담고 있다. 연희는 담정(藫庭)이 부령에 유배되어 있을 때 내왕하며 말벗이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해 길쌈을 하는 등 지성으로 담정(藫庭)을 위해 준 여자였다. 이로써 보면 사유악부도처에 연희와 관련된 회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사유악부(思牖樂府)의 또다른 면모로, 숱한 민중적 인물에 대한 형상화 및 부패한 관리에 대한 비판을 들 수 있다. 담정(藫庭)이 목도한 북방민중의 고난을 그린 또 한 작품을 보기로 한다.

 

問汝何所思 무얼 생각하나?
所思北海湄 저 북쪽 바닷가.
嶺北鐵塩勝土塩 영북(嶺北)의 철염(鐵鹽)은 토염(土鹽)보다 나아
味甘色白柔且纖 맛이 좋고 색은 희며 부드럽다..
塩賤三斗米一斗 소금값 헐할 때는 소금 서말에 쌀 한 말
塩貴與米只相耦 소금이 귀할 때는 쌀값과 거의 같네.
而來塩價忽刁蹬 요즈음 소금값이 갑자기 뛰어올라
塩一米五猶無有 쌀 닷말 주어도 소금 한말 어렵네.
北關父老長太息 북방의 부로(父老)들 한숨을 내쉬면서
對飯嘔衉何由食 밥상 대하면 구역질하니 어떻게 밥 먹을꼬?
喫淡六朔不見塩 여섯달이나 맨음식으로 소금 구경 못한 것은
今年儘蒙廵相力 올해에 내려온 관찰사 탓이라네.

 

위 작품은 사유악부(思牖樂府)133수이다. 담정(藫庭)은 주()를 달아 관찰사 이병정이 염리(鹽利)를 지나치게 탐해 염호(鹽戶)를 닥달했고 염호들은 이를 견디지 못해 모두 달아남으로써 소금값이 폭등했음을 밝히고 있다. 탐욕스런 관리의 수탈이 백성들의 밥상에까지 괴로움을 끼치고 있음을 고발한 것이다.

 

담정(藫庭)사유악부(思牖樂府)가 부령에서의 유배체험을 토대로 당대의 사회 문제들을 인식, 형상화한 연작형의 장시(長詩)라면,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은 비록 미완성이기는 하나 주제와 사건을 통일적으로 결합시킨 장편 서사시라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되는 작품이다. 무관 장파총(張把摠)이 백정의 딸로 태어난 방주(蚌珠)를 며느리로 맞이하기 위해 혼인을 청하는 내용이다.

 

백정의 생활실태, 서울의 남산에서 나무를 해다 구리개서 파는 이야기,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는 노동현장, 전복채취하는 어민들이 관의 탐학에 고통당하는 실상 등 당시의 생활 현실을 고발한 내용이 매우 사실적이다. 비록 사건의 서두 부분에서 끝나버리고 말아 그 전모를 볼 수는 없으나, 조선후기에 이룩된 장편 서사시의 정점을 가늠케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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