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금): 구좌읍 ⇒ 제주시 38.5Km
▲ 구좌읍 ⇒ 제주시 38.5Km
마지막 날이 밝았다. 여기서부터 제주시까지 거리는 40Km정도 된다. 천천히 달려도 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마지막 날엔 어떤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 현무암이 깔린 바다의 풍경. 현무암 곳곳엔 생명들이 살고 있다.
제주도로 하이킹을 떠나려는 그대에게
요새 지하철 광고판엔 사대강 광고가 흘러나온다. 사대강을 처음 계획할 때의 목적은 홍수방지, 수자원확보, 수질향상 등이었는데, 그것으로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그런 기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인지), 자전거를 타고 어느 강이든 갈 수 있다는 식의 홍보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이런 광고를 보면서 사대강에 대해 찬사를 보낼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인공길을 만들어 놓고, 복원 운운하는 처사가 우습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홍보 전략이다.
▲ 사대강 홍보영상. 모든 홍보영상이 그렇듯 파라다이스를 보여주는 듯하다.
제주도와 하등 관계없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대강이 자전거 타기에 좋다는 홍보 속엔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을만한 하이킹에 대한 낭만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고 휙 하니 스쳐 지나는 풍경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느끼고,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고 싶은 낭만 말이다. 그건 도시의 인공미를 벗어나 자연 속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 사대강 홍보는 그걸 역이용하는 것이기에 문제긴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홍보에 혹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 하이킹 족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강에 쏟아부은 하해와 같은 높은 분의 은총
어쨌든 그런 낭만적인 생각만으로 제주도를 하이킹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가지 전제조건을 달고 싶다. 자전거에 몸이 익지 않은 상태에서 하이킹을 하겠다는 건, 뒷산 오른 경험으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뭐든 단계가 필요하고, 차근차근 성취해 나가려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무턱대로 달려들었다가는 처참하게 넉다운되기 일수다. 그러니 떠나기 전에 기초체력을 충분히 길러야 한다.
제주도의 길은 평탄하지 않다. 경사가 심한 길도 많으며, 자전거도로가 없는 곳도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오늘 갔던 북촌삼거리~신촌리까지의 길은 2차선일 뿐만 아니라,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양옆 샛길이 파헤쳐져 있어 위험하게 자동차길로 달려야만 했다. 일주도로 확장공사는 2014년에나 끝난다니까 앞으로 3년 동안은 위험천만한 하이킹을 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이니 제주도로 하이킹을 떠나려는 사람들이여, 무작정 떠나지 말고 자전거에 몸이 익도록, 그리고 자동차길에 대한 두려움이 없도록 제대로 기본기를 닦은 후에 가자.
▲ 날씨가 너무도좋다.
바다색은 심층의 반영일 뿐
해안도로로 가다보니, 제주도의 바다색이 검푸르게 보이기도 하고 새파랗게 보이기도 하더라. 그 순간엔 원래 바다색이 다른가 보다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 알려주더라. 바다는 고유의 색이 있는 게 아니라 밑에 깔린 돌의 색을 반영할 뿐이라고. 그래서 푸르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바다가 깊다는 걸 뜻한단다. 검푸르게 보이는 것은 바닥에 현무암이 있기 때문이며, 하얗게 보이는 것은 모래의 색 때문이란다.
▲ 제주의 바다색이 정말 황홀하다.
제주도 풍력발전단지를 지나다
첫 날 타발로 하이킹에서 설명을 들을 때, 오늘 지날 곳에 풍차 비슷한 것들이 많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오히려 도보 여행할 때 산 중턱에 딸랑 하나 서 있던 풍력발전기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 거대한 몸체를 처음 봤을 뿐더러, 하나만 서있으니까 그 포스가 남달랐던 것이다. 그에 비해 제주도엔 그런 풍력발전기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보니, 친숙하게만 느껴질 뿐 무언가 거대하고 위압적인 느낌은 없더라.
▲ 왼쪽은 사람여행 중 영양에서 본 풍력발전기의 모습, 오른쪽은 제주에서 마주한 발전기의 모습이다.
제주시 칼국수, 명동손칼국수
오전 내내 달려 제주시에 도착했다. 칼국수가 먹고 싶어 삼양동에서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보니 다들 제주시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제주시 근처에서 물어보니, ‘명동칼국수’가 잘한다고 알려주더라. 이름만 듣곤 체인점 칼국수집인 줄만 알고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큰길가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사람을 더 붙잡고 위치를 물어봤는데, 얼마나 유명한 칼국수집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치를 알고 있더라. 하지만 그 설명을 듣고도 찾아가는데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골목에 있었기 때문이며, 가게의 크기도 작았기 때문이다.
도착했을 땐, 가게 안에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있었다. 그리고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과연 이집 칼국수엔 어떤 비결이 있기에, 이렇게도 사람이 넘쳐 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일었다. 난 무난하게 손칼국수를 시키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
10여분을 기다리고서야 들어갔다. 한 그릇을 받고 맛을 본다. 사람들이 줄서 있고 가게 안은 왁자지껄하니, 왠지 느긋하게 먹을 수는 없더라. 무언가에 쫓기며 먹어야만 한다는 것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맛은 괜찮았다. 국물은 깔끔하고, 면발은 손으로 직접 만들어선지 쫄깃쫄깃했으며 양은 배부르게 느껴질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다. 가게가 비좁아 불편한데도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드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 사람이 많이 있었다. 유명한 집 답다고 할까.
칼국수를 먹고 타발로 하이킹에 자전거를 반납했더니, 완주증을 주시더라. 그리고 사진도 찍어 홈페이지에 올리시겠다고 하신다. 나는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다고 말씀드렸다. 주인 아저씨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글쎄 고향이 전북 고창이란다. 이런 곳에서 같은 동향의 사람을 만났다는 게 왠지 더 반갑게 느껴지더라. 역시 이래서 지연은 없앨 수 없는 건가 보다.
이로써 4일간 총 195Km를 달려 하이킹을 마쳤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뚝딱 흘러버린 느낌이다. 다음엔 중문단지와 우도를 꼭 가봐야겠다. 제주도여 다시 보자!
▲ 이로써 3박 4일의 재밌던 하이킹을 마쳤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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