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한산성에서 여유를 부리다
9번 버스를 산성역에서 타고 남한산성 종점까지 달렸다. 안전장치 없는 롤러코스트를 타듯 위태롭게 20분 정도를 달리고 달려 도착했다.
▲ 드디어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맛살 하나를 먹어도 행복하던 시절의 이야기
종점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다. 아직 11시밖에 되지 않았다. 바로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기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주위를 돌아다니길 바랐다. 하지만 몇몇의 아이들은 바로 편의점에 들어가서 간식을 사기 시작했고, 몇몇은 파라솔의 그늘 속으로 숨어들었다. 아이들은 그냥 이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점심을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 같았다.
민석이와 현세, 태기, 성민이가 편의점에 들어가 간식거리를 샀다. 이때 성민이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며 8개가 들어 있는 맛살을 산 것이다.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간식을 사는 경우는 봤어도 이렇게 맛살을 간식으로 사는 경우는 처음 봤다. 그러더니 성민이는 정말 맛있다는 듯 하나 하나 뽑아서 먹기 시작하더라.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맛살의 추억’이 떠올랐다.
▲ 내리자마자 간식을 사러 온 아이들. 풍요 속에 살지만, 그래도 빈곤은 있을 것이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은 코아백화점이다. 예전엔 왜 그런 이름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전주의 중심지인 ‘CORE’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땐 형과 함께 걸어서 여기저기 다니곤 했고 그게 세상을 둘러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코아백화점 앞엔 우주선 모양의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그걸 타면 3D 우주체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아하긴 했지만 돈이 비싸서 탈 순 없었다. 아마도 그때도 그걸 보러 갔던 것 같다.
그때 식료품 매장에 내려가 돌아다니며 돈이 없던 때라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형이 맛살을 산 것이다. 왜 맛살이었는지, 왜 그런 돈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껏 맛살을 먹어본 적이 없기에 신기한 음식이라 사게 된 걸 거다. 그걸 드디어 개봉하여 하나씩 입에 물었는데,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맛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그 후론 다시 그걸 사먹을 일은 없었지만, 가난하고 돈 한 푼 없던 시절에 처음으로 맛볼 수 있던 최고의 맛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 한때는 전주 중심지의 백화점으로, 그리고 지금은 세이브존으로. 역사성은 건물의 역사에도 들러붙어 있다.
성민이가 먹는 건 맛만 흉내 낸 맛살은 아니었으니 정말 맛이 있었을 거다. 그때 내가 먹었던 맛살은 게살맛을 낸 가짜 음식에 불과했으니, 그때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는 맛이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객관적인 맛이 아닌, 주관적인 맛에서는 그때 맛봤던 맛이나 지금 성민이가 먹는 맛은 같지 않을까. 넉넉하지 않던 시절엔 천 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가장 맛있었는데, 넉넉해진 후엔 더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 때의 행복과 감흥을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잘 살게 됐고 맘껏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게 꼭 행복만을 줬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로인해 우린 ‘맛살 하나의 행복’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며 성민이가 정말 맛있게 맛살을 먹는 모습을 쳐다봤다.
▲ 성민이가 맛살을 먹으니, 태기도 먹고 싶어 하나를 달라고 말하고 있다.
밀림을 헤치고 국청사로 산책가다
편의점에서 나왔는데 아이들은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스마트폰만 하고 있더라.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던지, 승태쌤은 주차장에 계신 분에게 “절이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어봤고, 얼마 멀지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정보를 듣게 됐다. 그래서 간단하게 산책을 할 겸 우린 마침내 일어서 걷기 시작했다.
이정표엔 ‘국청사 800m’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니 너무도 단순하게 조금만 걸으면 나오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800m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하긴 2013년에 지리산 종주를 할 때 등산로에 표시된 거리와 걷는 시간의 상관관계를 보니, 평지를 걸을 때에 비해 2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예를 들면 평지에서 4㎞는 1시간 거리지만, 등산로에선 2시간 거리니 말이다. 800m면 당연히 평지에선 10~15분 정도의 거리지만, 여긴 경사가 있는 등산로이니만치 20~30분 정도는 잡아야 했던 것이다.
▲ 국청사로 올라가는 길. 정말 밀림여행을 하는 것만 같다.
국청사로 올라가는 길은 녹음이 짙게 우거져서, 꼭 밀림 깊숙한 곳으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금방 나오지 않는 절 때문에 조금씩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녹음 속으로 걸어가는 느낌은 좋았다. 조금 더 참고 걸으니, 그 때서야 절이 보이더라.
바로 그 때 지훈이에게서 “지금 일어났네요. 죄송합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아마 지금 일어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올 마음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지금이라도 오라고 해야 맞다. 늦었을 지라도 끝까지 책임을 지려는 적극적인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봐야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나온다 해도 2~3시나 되어야 도착할 것이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알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지훈이를 볼 때 안타까운 것은 ‘언제까지 피하려 할 것인가? 이렇게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 짙은 푸르름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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