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남한산성의 계곡에서 열정을 불사르다
버스를 타고 ‘오전리 마을회관’에서 내려서 근처에 계신 분에게 “계곡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승태쌤이 물어보니, 1㎞를 걸어가야 한다고 하더라.
▲ 인디아나존스처럼, 도보여행하는 사람처럼 걷기.
남한산에서 뜻하지 않게 인디아나존스를 연출하다
그래서 우린 그때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이곳에서 걷는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인도도 거의 없을뿐더러, 차들도 꽤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군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걷기 시작한다. 수풀을 헤치고 차를 피하며 비포장도로로 걷는 그 모습은 흡사 오지를 탐험하던 ‘인디아나존스’ 같은 느낌이었다. 비문명 세계를 탐험하던 인디아나존스와 비문명과 문명의 경계를 걷는 우리의 모습이 같을 순 없겠지만, 이런 식의 트래킹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니 말이다. 2014년에 영화팀만 떠났던 도보여행의 확장판 같은 느낌도 들어서인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 길에 사람이 걷도록 인도만 확장된다면 언제든 다시 걸으며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산 계곡에서 노닐다
1.4㎞를 걸으니, 매점 같은 게 하나 보이고 조금 더 걸으니 계곡 쪽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거기서 내려가니 꽤 괜찮은 그늘이 있더라. 그래서 우린 그곳에 돗자리를 펴고 한껏 여유를 누릴 채비를 했다.
▲ 걸은 보람이 있다. 좋은 자리에서 우리는 쉴 수 있었다.
규빈이는 거침없이 물에 들어가 고기와 다슬기를 잡기 시작했고, 민석이와 현세, 지민이도 쭈뼛쭈뼛 물 근처로 다가갔다. 신발을 신고 왔기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듯하더니, 급기야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고 들어간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몸을 사리기 시작하면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행복들, 그리고 감정들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아예 몸을 던진 사람은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고 맛볼 수 있다. 나의 경우엔 이런 경험을 중학교 2학년 때 할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왔을 때 폭우가 내렸다. 돌풍이 불고 한꺼번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다 보니 무릎까지 물이 찰 정도였다. 당연히 우산을 펴고 가지만 폭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우산이 뒤집힐 듯 세찬 바람이 불어옴에도 우산은 절대 놓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덜 젖기 위한 고군분투라 할만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연 이렇게 우산으로 막고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우산을 접어버렸다. 젖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아예 쫄딱 맞고 비를 즐겨보자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순간엔 묘한 해방감이 감돌며 비에 온몸이 젖는 만큼 시원하다는 생각과 함께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아마도 이런 것 때문에 이병률씨는 『끌림』이란 책에서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라고 말한 걸 거다.
▲ 열정은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이 순간 물놀이를 하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은 그처럼 완전히 젖어서 재밌게 놀고 싶은 마음과 젖지 않도록 발버둥치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발만 담그고 장난처럼 물장풍을 조금씩 날리며 젖지 않도록 노력한 걸 테다. 하지만 민석이와 규빈이는 그게 어느 정도 무너질 기색이 보였다. 물장난이 과격해지는가 싶더니, 기어코 인정사정없이 물을 끼얹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젖었지만, 그래서 툴툴 댔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낸 아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옷이 젖었기에 집에 가는 내내 꿉꿉했다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마도 두 사람에겐 그 순간의 그렇게 뜨거운 열정은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진한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진한 추억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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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도 긴장을 풀 수 없던 남한산 트래킹
배차 시간이 길기에 우린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다가 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하필 그때 규빈이와 지민이는 화장실에 간다며 부리나케 달리는 것이다. 버스는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왔기에 우린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놓치면 80분 정도를 다시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버스가 가까이 왔을 때 우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통사정을 했고, 다행히 아이들도 거의 그 시간에 맞춰 버스에 왔기에 난처한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 열정 가득하던 그 순간의 스케치.
보통 트래킹을 가면 3시 30분엔 끝났는데, 이번 같은 경우엔 꽤 멀리 가기도 했고 버스배차 시간도 길어서 끝나는 시간이 많이 늦춰졌다. 하지만 이렇게 야외활동을 나와 신나게 놀고 갈 수 있었기에 후회는 전혀 없다. 이제 다시 트래킹이 시작된 이상 다음 트래킹도 이번처럼 재밌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다음에 계곡을 가게 되면 모든 아이들이 물에 들어가 신나게 놀 수 있기를 바란다.
▲ 함께 했기에 즐겁던 그 날이 이렇게 끝났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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