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남한산 계곡으로 가는 길
아주 배부르게 밥을 먹고 계곡으로 가기 위해 산성로터리로 이동했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나 싶게 종점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나들이를 온 사람들까지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 버스를 타러 종점에 왔다. 덥지만 사람들은 어디를 가려는지 많다.
남한산 계곡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초이쌤이 계곡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며 “걸어서 가면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기사님에게 계곡이 좋은 곳에 내려 달라고 하면 거기서 내려주거든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당연히 오늘 경로는 초이쌤이 잘 알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버스를 탈 준비를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1시간 정도면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가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몽실몽실 피어나고 있었다. 단재 아이들은 극도로 싫어할 테지만 만약 내가 계획을 짰다면, 당연히 걸어서 가는 방향으로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해 나의 판단은 잘못된 거였다. 아무래도 초행길이고 거리 감각도 없다 보니, ‘1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에만 꽂혀서 그렇게 생각한 것인데, 실제론 그것보다 훨씬 멀었기 때문이다. 산성로터리에서부터 우리가 내리기로 한 오전리 마을회관까지의 거리는 6.1㎞나 된다. 걷는 시간상으론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인 셈이다. 물론 나 혼자 걷는다면 그 정도는 걸을 만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걸어야 하고 아이들 중에는 걷는 걸 엄청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보니 그건 애초부터 원성이 자자한 계획일 수밖에 없었다.
▲ 결코 걸어서 가기에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불현듯 작년에 떠났던 변산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도 펜션에서 격포해수욕장이나, 채석강에 가기 위해서는 2~3㎞를 걸어 다녔어야 했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님에도 여학생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재잘재잘 참새가 끊임없이 소리를 내듯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토로했으니 말이다. 그땐 그래도 2박3일 일정의 여행이니 조금이나마 감내하려 했지만, 지금처럼 애초에 ‘계곡에서 쉬자’라는 컨셉으로 떠난 여행에서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얼마 걷지 않아 드러눕는 사태까지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 폭풍해일주의보까지 발령된 그 날, 우린 우의를 입고 격포를 누볐다.
더욱이 애초부터 걷는 게 불가능했던 이유는 거리 외에도 도로 사정 때문이기도 했다. 계곡으로 가는 길 자체가 자동차만을 위해 만들어진 길이다 보니, 사람이 걸을 수 있는 통행로는 거의 없었다. 이 길을 걸어서 가려면 ‘목숨을 내놓고’ 가야 할 정도로 걷는 게 무척이나 사나웠고, 차는 수시로 오다보니 사고가 날 확률이 너무도 높았다. 만약 정말로 걸었다면 이건 흡사 ‘사람여행’ 때 당진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인도 없는 차도를 걸을 땐 마이클잭슨의 춤과 같이 몸만 30도 가량 차의 반대방향으로 기울며 다니는 신공을 발휘했어야 하니 말이다. 이래저래 버스를 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 인도가 없어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똘끼를 종점에 가득 채우다
계곡에 가기 위해서는 15-1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 버스는 10~20분 정도의 시간으로 배차되어 있는 9번 버스와는 달리, 45~80분 정도로 배차되어 있더라. 그래서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15-1번의 배차시간은 매우 길기 때문에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아이들은 정류장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바빴는데, 에너지가 흘러넘치다 못해 뿜어져 나오는 태기와 성민이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계곡에서 피서를 하자’는 컨셉에 맞게 돗자리를 세 개나 준비했는데, 바로 그걸 들고 게임을 한 것이다.
첫 번째는 참참참을 해서 걸릴 경우 돗자리로 뺨을 때리는 게임이었다. 솔직히 이런 게임을 할 땐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되지만, 어느 누가 열을 올리며 세개 때리면 그때부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곤 한다. 게임을 하다가 처음엔 태기가 걸려서 성민이가 때릴 땐 장난처럼 살짝 때렸다. 이때만 해도 이 게임엔 ‘살아 있는 우정이 감도는’ 밋밋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기어코 성민이가 걸렸고 태기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스메싱을 날리며 ‘우정파괴’의 살벌한 게임을 방불케 했다. 물론 돗자리이니 엄청 아프진 않겠지만,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맞는 느낌은 흡사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오금이 저려왔을 것이다. 그때부터 처절한 복수혈전은 시작되었고 드디어 성민이가 때릴 순간이 왔다. 이때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강스매싱을 날려 복수극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오기가 생긴 태기가 다시 한 번 결투를 신청했지만, 이번에도 불행하게 성민이가 이겨서 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 때 태기는 “이제 게임 그만 하자”며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 한바탕 복수혈전으로. 그래도 함께 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다.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게임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고, 연이어 두 번째 게임으로 접어들었다. 두 번째 게임은 ‘돗자리 난투극’이라 표현하면 맞을 것이다. 중세시대의 기사들에겐, 막부시대의 사무라이에겐 칼이 있어서 합을 겨루며 실력을 따졌다면, 요즘 시대의 학생들에겐 돗자리 한 자루로 자웅을 겨루는 것이다. 둘은 아주 재미나게 돗자리를 서로 부딪치며 놀고 있지만, 곁에서 보는 우리들은 “저런 저런 저건 어린아이들도 요즘은 하지 않는 장난인데”하며 안타까워했고, 반면에 모처럼 보는 진기한 장면에 넋을 빼놓기도 했다. 무료할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이 태기와 성민이로 인해 밝아졌고 유쾌해졌다. 그 덕에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 난투극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유쾌해지는 놀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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