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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을 전공하고서 영화교사가 되다 - 6. 진규와 종연이와 함께 공모사업 신청서를 완성하다 본문

학교/단재학교 이야기

한문을 전공하고서 영화교사가 되다 - 6. 진규와 종연이와 함께 공모사업 신청서를 완성하다

건방진방랑자 2019. 12. 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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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진규와 종연이와 함께 공모사업 신청서를 완성하다

 

 

그날 밤에 여러 생각을 하며 결정을 해야 했다. 우선 토요일마다 시간을 빼야 하는 문제는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면 되기에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큰 문제는 새로운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었다. 이런 고민은 최근엔 해본 적이 없다.

 

 

2012년에 처음으로 영화팀 교사가 되어 전주영화제를 찾아갔다. 그게 벌써 5년이나 흘렀다.  

 

 

 

오랜만에 설렘에 몸서리치던 밤을 맞이하다

 

어느새 단재학교에서 5년이 넘도록 생활하면서 아이들과는 매우 친해져서, 불편하고 어색하여 힘들다는 느낌을 거의 느낄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 그 친함에 사르르 녹아들어, 어색함이 주는 두려움, 낯섦이 주는 심란함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국토종단을 떠나기까지는 어색하다는 게, 낯설다는 게 그렇게 싫었었다. 그러니 늘 친한 사람들과 익숙한 곳에서 계획적으로 행동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다 연거푸 임용에서 떨어지고 더 이상 삶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자, 그때부턴 오히려 어색함, 낯섦을 긍정하게 됐다.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고 낯설기 때문에 친해지고 싶은 그 마음이야말로 모든 관계나 상황을 시작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느꼈다. 그런 힘은 두 번의 도보여행(국토종단사람여행)을 떠나게 했고, 단재학교에 근무하면서 여러 여행(남한강 도보여행, 지리산 종주,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낯섦은 어느 순간에 친숙한 것이 되고, 어색함은 어느 순간에 편한 것이 된다. 그러다 보면 예전의 나처럼 스스로 낯섦을 기피하고, 어색함을 달가워하지 않게 되어 지금은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편안함에 머물려고만 한다. 이날 저녁에 이미 편안함에 쪄들다 못해, 다양한 경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내 모습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도보여행을 하던 그때의 마음을 돌아봐야만 했다. 어색함을 즐겼고, 낯섦을 사랑했던 그때의 뜨거움을 말이다. 아니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그때의 그 뜨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현듯 이건 꼭 해야만 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하기로 맘먹었다.

 

 

결국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해야 했다. 그만큼 편안한 생활에 젖어든 것이다.    

 

 

 

하려고 맘을 먹으니, 일이 풀려간다

 

영화 기획의 기본 컨셉은 20명 정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30주 동안(15차시 2회로 진행하거나, 10차시 3회로 진행하거나)에 영화 만들기다. 처음으로 공모사업 양식을 작성해야 하니, 막막하더라. 그래서 218일 토요일 내내 끙끙대며 쓸 수밖에 없었고, 다양한 공모사업을 해본 승태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위대한 첫 발걸음이 그렇게 시작된 거다.

 

처음엔 7~10명 정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생각이었기에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정아쌤은 “20명 정도의 학생을 대상으로 해야 하며, 강사진도 주강사 한 명과 보조강사 한 명을 더 보충해야 해요라고 알려주더라. 주강사 경우엔 예술 활동을 해온 이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지만, 보조강사는 사진을 찍고 보조해주는 역할을 하면 됐기에 별다른 이력이 없는 사람이어도 괜찮다고 했다.

 

 

진규의 초기작. 제목이 '천사와 악마'였던가. 확실치가 않다. 그러나 매우 맘에 드는 그림이고 [킹스맨]의 발렌타인이 생각난다.  

 

 

그때 단연 처음으로 생각난 사람은 진규다. 고등학교 때 친구이기 이전에 예술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많은 영향을 준 친구이니 말이다. 시각디자인과를 나와 지금도 예술분야의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이력 사항에선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고, 이번 기회를 통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4년 전에 단재학교 아이들과 진규가 함께 하는 미술수업을 개설하려 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좌초됐었는데, 이런 계기로 함께 만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해서 의견을 물어봤고, 다행히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조강사는 어찌 보면 편하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학과 후배인 민희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한 번도 수업을 같이 들어본 적은 없지만 어찌 인연이 되어 스터디도 할 수 있었고, 서울에 와서도 여러 번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보조강사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매주 토요일마다 30주에 걸쳐 한다는 게 부담이라고 하더라.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고 하니 무척 아쉬웠다.

 

그 다음엔 송파구에 살고 있어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종연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전화를 해보니, 올해부턴 고등학교 사서교사로 일하게 되어 토요일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면서, 될 수 있으면 하고 싶다고 알려줬다. 막상 아이들과 만나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보며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기회라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어찌 되었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공모 신청서도 잘 마무리되었고, 강사진도 짜임새 있게 갖춰졌다. 과연 이 공모사업에 당선되어 우리가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수 있을까? 영화를 매개로 20명의 아이들과 모여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너무나 익숙한 삶의 문법과 방향에 젖어들어 흐물흐물 살아가던 나에게 모처럼만에 훈풍이 불고 설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

 

 

 

도보여행을 하던 때의 낯섦에 대한 기대, 어색함에 대한 설렘을 오랜만에 느껴볼 수 있었다.  

 

 

 

인용

목차

1. 한문전공자가 영화 교사될 수 있는 이유

2. 영화란 주제로 아이들과 5년간 뒹굴며 알게 된 것

3. 영화팀의 좌충우돌기: 2012~2014

4. 영화팀의 좌충우돌기: 2015~2016

5. 송파마을예술창작소에서 준 새로운 도전

6. 진규와 종연이와 함께 공모사업 신청서를 완성하다

7. 2017년에 쓰게 될 영화교사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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