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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예술, 서구를 만들다 - 2. 호모루덴스를 지향하는 예술을 위해 본문

연재/작품을 감상하다

예술, 서구를 만들다 - 2. 호모루덴스를 지향하는 예술을 위해

건방진방랑자 2019. 12. 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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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모루덴스를 지향하는 예술을 위해

 

위에 보이는 것은 라오콘 군상이다. 라오콘은 트로이 신관이다. 그렇기에 천주교에서 보면 이교도의 사제일 뿐이다.

 

 

 

 

 

이교도 사제의 동상이 바티칸에 있는 이유?

 

그런데 이 군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바티칸 박물관에 있다. 이단이라 할 수 있는 조형물이 정통을 자부하는 종교기관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거다.

이것이야말로 형용모순이지 않나? 좀 더 쉽게 말하면 교회 강단 앞에 불상이 올려 있는 거와 같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그것이야말로 해석의 자유가 낳은 정치적 역학 관계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라오콘은 신들이 합의를 하여 트로이를 없애려 하는 것에 온 몸으로 맞서 거부하다가 저와 같은 고난을 당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인간 정신의 우월함이 종교적 전통과 만나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교도 사제라는 관념은 지워버려도 된다. 바티칸에서 취한 것은 라오콘의 밝게 빛나는 헬레니즘적인 인문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품조차 인간은 선택적인 해석만을 덧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여기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절대적인 해석 따윈 없다

 

이 책은 예술품이 지닌 미적 속성을 밝히는 책이 아니다. 그 예술을 둘러싼 당대 지배세력의 해석이 어떠한지 살피며 예술이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책이다. 예술은 이미 고정된 해석 자체가 없다는 것이며, 단순히 정해진 어떤 진리일 수 없다는 것이다. ‘라생문이란 영화에서 그랬듯이 그걸 분석하는 사람들의 자기 관점이나 자기 합리화가 들어 있다는 거다. 바로 그 속내들이 주술이 넘쳐흐르던 중세를 지나 인문정신이 광채를 발하는 서구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지금껏 우리가 동양보다 우월한 서양이라 말할 때의 그 서양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따라가고자 했던 서양은 정말 낙원과 같은 세상이었던가? 그건 서양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동양인들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애초에 진보라는 말이 어색했듯이 좀 더 발전했다던 서양은 좀 더 타락한 그 무엇일 수밖에 없으니까.

 

 

 

예술을 통해 호모루덴스를 되찾아라

 

그래서 저자는 예술은 잘 , 자신의 본분에 가장 충실할 수 있다. 놀아야 하는 까닭은, 개념이 문명인의 정신과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저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416p)”라는 말로 결론 내렸다. 예술이 그와 같은 하수인의 노릇에서 탈피하여 놀이로 다시 태어날 때 예술의 본래 의미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예술이 인간을 자연과 분리시키고 인식과 몸을 분리시켰을 때, 그 안에서 인간은 고립감을 느끼며 울부짖어야 했다. 바로 그와 같은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고립감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니까. 어떤 획일적인 해석들을 지양하고 그 안에서 밝게 뛰어놀 수 있을 때 예술의 본래 의미가 살아난다.

 

 

놀이와 유머, 웃음이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덕목들은 사실 근대 인간들에게 가장 결여된 것이고, 근대의 도덕이 가장 경멸했던 것이다.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문학과 경계, 이진경, 2002

 

 

예술을 통해 우린 근대 인간이 잃어버렸던 놀이와 유머, 그리고 웃음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린 누군가의 의지가 깊이 개입된 진보라는 논리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어렵지만 여러 예술품이 더욱 가까워지던 책

 

솔직히 이 책은 좀 어려웠고 그 내용이 쉽게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근대화를 비판한다는 것이며, 계몽의 도구로 쓰인 예술품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예술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며 끝을 맺고 있다.

내 예술적인 지식이 미미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좀 말을 어렵고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와 같은 비전문가를 위해서라도 다음에는 좀 더 편안한 어투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쓴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소득도 없지 않았다. 여러 도판의 그림들도 많이 접해볼 수 있었고, ‘오디세우스라오콘 군상등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던 여러 작품들과 그리스 신화까지 통째로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인용

목차

1. 선택적인 기억과 왜곡된 진보

2. 호모루덴스를 지향하는 예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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