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하게 백운계에서 다시 서강의 입구에 이르러 잠시 소나무 그늘에 누워서 짓다
만자백운계 부지서강구 소와송음하작(晩自白雲溪 復至西岡口 少臥松陰下作)
이서구(李書九)
家近碧溪頭 日夕溪風急
가근벽계두 일석계풍급
脩林不逢人 水田鷺影立
수림불봉인 수전로영립
時向返照中 獨行靑山外
시향반조중 독행청산외
鳴蟬晩無數 隔樹飛淸籟
명선만무수 격수비청뢰
讀書松根上 卷中松子落
독서송근상 권중송자락
支筇欲歸去 半嶺雲氣作
지공욕귀거 반령운기작 『惕齋集』 卷之一
해석
家近碧溪頭 日夕溪風急 | 집은 푸른 시내 언저리에 가까워 저녁이면 시내의 바람이 거세네. |
脩林不逢人 水田鷺影立 | 숲에선 사람 만나지 못했는데 논엔 해오라기 그림자 서 있구나. |
時向返照中 獨行靑山外 | 때는 석양을 향하는데 홀로 청산 밖을 거니네. |
鳴蟬晩無數 隔樹飛淸籟 | 매미 늦도록 무수히 울어대고 건너편 나무에선 맑은 바람소리 날리네. |
讀書松根上 卷中松子落 | 소나무 뿌리 위에서 독서하니, 책 속에 솔방울 떨어지네. |
支筇欲歸去 半嶺雲氣作 | 지팡이 짚고 길 나서니 반쯤 봉우리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네. 『惕齋集』 卷之一 |
해설
이 시는 이서구가 한때 은거한 곳으로 포천에서 화천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가을인 백운계(白雲溪)에서 저녁에 다시 서강의 입구에 이르러 감시 솔 그늘에서 누웠다가 지은 시이다.
길을 가다가 솔투리가 돋아난 곳에 잠시 앉아 쉬면서 책을 읽고 있으니, 책 속에 솔방을이 떨어진다. 책 읽는데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가 지팡이를 짚고 길을 나서려고 하니,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 산마루에 구름이 일어나고 있다.
후사가(後四家)는 박지원(朴趾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다 같이 문학으로 실학(實學)의 의리를 펼친 공통점이 있기는 하나, 그 문학의 내용 면에서 이서구(李書九)는 나머지 삼가(三家)와 다소 성격이 다르다【李德懋의 시는 회화성(繪畫性)이 짙고, 柳得恭의 시는 소재를 역사 쪽으로 확대했으며, 朴齊家의 시는 사회비판ㆍ자기의 북학사상(北學思想)을 담았으며, 이서구(李書九)의 시는 전통적인 자연시의 정서를 답습】. 신분상으로도 삼가(三家)와는 다른 적출(嫡出)이었음으로 해서 활짝 열린 환로(宦路)라든지, 연행(燕行)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것 등, 삼가(三家)의 문학이 보다 실험적이고 혁신적이었던 것에 비해, 오히려 16세기 사림파(士林派)의 문학에서 즐겨 다루던 강호(江湖)와 그 은거(隱居)의 양상을 보다 많이 띤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서구의 시에서는 생생한 현실의 모습과 그 혁신의 의지로서의 비판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신분상 그렇게 절실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 자신의 시적(詩的) 진실은 오히려 한(閑)이었기 때문이다(유현숙, 「이서구의 시세계」).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309~31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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