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이 돌아가신 형님을 그리며
연암억선형(燕岩憶先兄)
박지원(朴趾源)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燕巖集』 卷之四
해석
我兄顔髮曾誰似 아형안발증수사 | 우리 형의 모습이 일찍이 누구와 비슷한가 |
每憶先君看我兄 매억선군간아형 | 매번 아버지 생각날 땐 우리 형 보았지. |
今日思兄何處見 금일사형하처견 | 오늘 형님 생각나는데 어느 곳에서 볼 수 있나 |
自將巾袂映溪行 자장건몌영계행 | 스스로 옷매무새 고쳐 시냇가로 가서 비춰보네. 『燕巖集』 卷之四 |
해설
이 시는 홍국영(洪國榮)의 핍박을 견딜 수 없어 개성 외곽에 있는 연암에 숨어 살 때 선형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과정록(過庭錄)』 권(卷) 1에 의하면, 정조 11년(1787) 연암의 형 박희원(朴喜源)이 향년 58세로 별세하여 연암협(燕巖峽)의 집 뒤에 있던 부인 이씨 묘에 합장하였는데, 이덕무는 이 시를 읽고 감동하여 극찬한 바 있다.
이덕무(李德懋)는 『청비록(淸脾錄)』에서, “연암(燕巖)은 고문사(古文詞)에 있어서 재사(才思)가 넘치고 고금에도 통달하였다. 당시 지은 평원(平遠)한 산수(山水)에 깊은 감회를 소산(疏散)시키는 듯한 그의 시는 대미(大米, 송나라 米芾을 가리킨다)의 수준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고, 마음이 내킬 때 쓴 그의 행서(行書)와 해서(楷書)는 뛰어난 자태가 넘치며, 너무도 기묘하여 어떤 물건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일찍이 읊은 시에, ‘푸른 물 맑은 모래 외로운 섬에, 교청처럼 맑은 신세 티끌 한 점 없다네.’ 하였다. 이것으로써도 그의 시 품격이 오묘한 지경에 도달한 것임을 알 수 있으나 다만 긍신(矜愼)하여 잘 내놓지 않으므로, 마치 하청(河淸)에 비유된 포용도(包龍圖)의 웃음【포용도(包龍圖)는 곧 송(宋)나라 때 용도각대제(龍圖閣待制)를 지낸 포증(包拯)을 가리키는데, 성품이 워낙 강직하여 그가 조정에서 벼슬하는 동안에는 귀척(貴戚)이나 환관(宦官)들도 감히 발호하지 못하고 그를 무서워하였으며, 그가 하도 근엄(謹嚴)하여 웃는 일이 없으므로, 심지어는 사람들이 일컫기를 ‘그가 웃으면 황하수(黃河水)가 맑아질 것이다.’고까지 하였다. 당시 포대제(包待制) 또는 염라포로(閻羅包老) 등으로 불렸다】과 같아서 많이 얻어 볼 수 없으니, 동인(同人)들이 못내 아쉬워한다. 일찍이 나에게 오언(五言)으로 된 고시(古詩論)을 기증하였는데, 폭넓은 문장력이 볼만하였다[燕巖古文詞 才思溢發 橫絶古今 時作平遠山水 踈散幽迥 優入大米之室 其行書小楷 得意時作 逸態橫生 奇奇恠恠 不可方物 甞有詩曰 水碧沙明島嶼孤 鵁鶄身世一塵無 亦知其詩品入妙 但矜愼不出 如包龍啚之笑比河淸 不得多見 同人慨恨 甞贈我五言古詩 論文章 頗宏肆可觀].”라 말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281~28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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