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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 3. 묘지명의 관습을 깨어 생명력과 감동을 얻다 본문

책/한문(漢文)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 3. 묘지명의 관습을 깨어 생명력과 감동을 얻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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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묘지명의 관습을 깨어 생명력과 감동을 얻다

 

 

필자는 이 글을 강독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자위가 촉촉해 짐을 느끼곤 한다. 지난 번 강의에서는 연신 눈물을 훔치다 못해 흐느끼는 한 학생 때문에 강의실 전체가 우울해지고 말았다.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감상문을 요구하였다. 다음은 그 중의 몇 대목을 추린 것이다.

 

오히려 절제된 문장에 누이를 잃은 슬픔이 절절히 배어있는 듯하다. 몇 백년을 뛰어넘어 글로써 지금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가히 대단한 문장가라 아니할 수 없다.”

 

무능한 매형에 대한 원망, 어린 조카들에 대한 연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이제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음을 깨닫는 아쉬움, 이런 감정들이 너무도 진하게 문장 전체에 녹아들어 있어 누님을 애도하는 박지원의 마음을 더욱 절절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내 눈 앞에 글의 내용이 영화처럼 지나가는 것도 같았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한참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르는 것처럼, 글이 끝났는데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별은 슬프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다.”

 

처음에는 묘지명이라는 제목이 으시시하고 메말라 보이는 인상을 풍겨, 그냥 수업의 일부로써 읽지 않으면 안되는 글이라는 선입견을 이 글은 무참히도 박살내 버렸다. 아름다운 글은 정직한 글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더니, 역시 우리나라 글이 우리 정서에 잘 맞는 것 같다.”

 

떠나는 이의 뒷기약을 믿을 수 없는 보내는 이의 하릴없는 마음, 돌아볼수록 새록새록 다가드는 옛 기억의 처량함을 등 뒤로 업고, 말 머리를 돌려 언덕으로 올라서는 연암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또 어떤 학생은 김지하 시인의 시 호랑이 장가가는 날누님/누님/누님/부름은 마음속에서만 울다 그치고/ 빗방울은 얼굴 위에 눈물로 그저 흐르고를 적었고, 다음과 같은 글로 필자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죽은 누이에 대한 너무나 애절하고 정이 넘치는 글이다. 사실, 하마터면 울어버릴 뻔 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큰 누나가 시집을 갔다. 그 동안 내 연필을 깎아주던 누나가 시집간다 하니 걱정이 되어 어느 날, “누나! 누나가 시집 가면 내 연필은?” 며칠 뒤 매형 될 분이 연필깎기를 사다주었다. 그때만 해도 그런 것은 가진 아이가 극히 드물었다. 결국 누나와 연필깎기를 맞바꾸게 된 셈이다. 그런 뒤 나는 예쁘게 깎여 나오는 연필깎기가 좋다는 생각보다는 연필 깎는 누나의 손이 보고 싶어 누나집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이제 누나도 40살이 넘었다. 건강하시길 빈다.

 

 

예전부터 묘지명이나 비문은 유묘지문諛墓之文, 즉 귀신에게 아첨하는 글이라 하여 포는 있어도 폄은 없는, 다시 말해 좋은 말만 잔뜩 늘어놓는 것이 상례이다. 그리고 글의 짜임새 또한 규격화 되어 있어, 심지어 한유韓愈가 지은 여러 묘지명을 놓고는 사람 이름만 바꿔 넣으면 아무라도 괜찮다는 동인중제지문衆人同祭之文의 비난까지 있어 왔다. 그런데 연암의 위 묘지명은 그 구상이나 내용이 파격적이다. 오늘날도 누님의 묘지명에다 동생이 자형의 궁상과 거울에 침 뱉으며 장난치던 내용을 써서 새긴다고 한다면 모두 펄펄 뛸 것이다. 실제 연암의 글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금서로 낙인 찍혀 드러내 놓고 읽혀지지 못했다. 하물며 연암의 손자로, 초기 개화파의 선구였던 박규수조차도 그가 평양감사로 있을 때 연암집을 간행하자는 동생의 말에 공연히 문제 일으킬 것 없다고 묵살했을 정도였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16살에 시집간 누이가 고생만 하다 43살에 죽다

2. 누이 시집가던 날의 추억과 아련히 겹치는 현재

3. 묘지명의 관습을 깨어 생명력과 감동을 얻다

3-1. 총평

4. 미묘한 감정을 글과 시로 풀어내는 마술사

5. 시간에 따라 변하는 내 모습과 같은 연암의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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