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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본문

산문놀이터/묘지명 & 애제류

박지원 -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건방진방랑자 2021. 11. 1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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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가 시집가던 날의 어여쁜 모습이 산천에 그대로 담겨 있네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박지원(朴趾源)

 

 

초상 지르던 날의 풍경

孺人諱某, 潘南朴, 其弟趾源仲美誌之曰: “孺人十六, 德水李宅模伯揆.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夫之先山曰鵶谷’, 將葬于庚坐之兆. 伯揆旣喪其賢室, 貧無以爲生, 挈其穉弱婢指十, 鼎鎗箱簏, 浮江入峽, 與喪俱發. 仲美曉送之斗浦舟中, 慟哭而返.

 

28년 전 일이 스치듯 떠올라

嗟乎! 姊氏新嫁曉粧, 如昨日. 余時方八歲, 嬌臥馬𩥇, 效婿語口吃鄭重. 姊氏羞, 墮梳觸額, 余怒啼, 以墨和粉, 以唾漫鏡. 姊氏出玉鴨金蜂,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28년 전 일이 현재의 풍경과 뒤섞이다

立馬江上, 遙見丹旐翩然, 檣影逶迤, 至岸轉樹隱不可復見. 而江上遙山, 黛綠如鬟, 江光如鏡, 曉月如眉. 泣念墮梳, 獨幼時事歷歷, 又多歡樂, 歲月長, 中間常苦離患憂貧困, 忽忽如夢中. 爲兄弟之日, 又何甚促也?

去者丁寧留後期, 猶令送者淚沾衣. 扁舟從此何時返, 送者徒然岸上歸.”

 

緣情爲至禮, 寫境爲眞文. 文何甞有定法哉? 此篇以古人之文讀之, 則當無異辭, 而以今人之文讀之, 故不能無疑, 願秘之巾衍.

 

 

 

 

 

해석

 

초상 지르던 날의 풍경

 

孺人諱某, 潘南朴, 其弟趾源仲美誌之曰:

유인 휘모씨(): 원래 기피한다는 듯인데, 보통 죽은 이의 이름을 가리길 때 쓰는 말이다. 전근대 동아시아 문화는 남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큰 실례라고 생각했기에 이름라고 했다는 반남 박씨반남(潘南)은 박씨의 한 본관인데, 예전의 반남현(潘南縣), 즉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潘南面)에 해당한다. 반남 박씨는 조선 후기에 유력한 벌열 가문의 하나로 성장하였다로 그 아우 지원 중미가 묘지명묘지명(墓誌銘): 죽은 사람의 이름ㆍ신분ㆍ행적 따위를 기록한 글로, 보통 돌이나 도편(陶片, 도자기 조각)에 새겨 무덤 속에 넣는다. 묘지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엔 죽은 이의 이름과 행적을 산문으로 서술하는바 이를 ()’라 하고, 뒷부분엔 죽은 이에 대한 칭송을 운문으로 붙이는바 이를 ()’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남편의 품계에 따라 아내의 작호(爵號)가 정해졌다. ‘유인(孺人)’은 원래 정9품 및 종9품 문무관 처에 대한 작호인데,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양반의 처에 대해서도 높이는 의미에서 신주(神主)나 명정(銘旌)에 이 말을 사용했다. 연암의 큰누님이 돌아가셨을 당시 그 남편 이택모(李宅模)는 아직 아무 벼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후자의 용례로 쓰였다. / 예전부터 묘지명이나 비문은 유묘지문(諛墓之文), 즉 귀신에게 아첨하는 글이라 하여 포()는 있어도 폄()은 없는, 다시 말해 좋은 말만 잔뜩 늘어놓는 것이 상례이다. 그리고 글의 짜임새 또한 규격화되어 있어, 심지어 한유가 지은 여러 묘지명을 놓고는 사람 이름만 바꿔 넣으면 아무라도 괜찮다는 중인동제지문(衆人同祭之文)’의 비난까지 있어 왔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 태학사, 2000, 321을 다음과 같이 쓴다.

 

孺人十六, 德水李宅模伯揆.

유인은 16살에 덕수 이씨인 택모 백규에게 시집을 갔다.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21남을 두었고 신해년(1791) 91일에 돌아가셨으니 43살이 되었다.

 

夫之先山曰鵶谷’, 將葬于庚坐之兆.

가족의 선산은 아곡(鵶谷)’백아곡(白鵶谷)을 말하는데, 조선시대 지평현(砥平縣)의 한 지명으로,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楊東面)에 해당한다. 일찍이 택당 이식이 이곳에 부친의 장지(葬地)를 마련한 이래 그 후손들의 선영(先塋)이 되었으며, 이식은 여기에 택풍당(澤風堂)이나 집을 짓고 기거한 바 있다에 있으며, 장차 경좌(庚坐)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경방(庚方)을 등진 방향. 또는 그렇게 앉은 자리. 서남쪽을 등진 방향의 남쪽에 장례지낼 것이다.

 

伯揆旣喪其賢室, 貧無以爲生,

백규는 이미 그 어진 아내를 잃었고 가난하여 생을 도모할 수가 없으니,

 

挈其穉弱婢指十, 鼎鎗箱簏,

그 어린 아이들과 허약한 종 한 명을 데리고 솥과 상자를 챙겨

 

浮江入峽, 與喪俱發.

강에 배 띄워 골짜기로 들어갔으니 상여와 함께 출발하였다.

 

仲美曉送之斗浦舟中, 慟哭而返.

나는 새벽에 두포(斗浦)두포(斗浦)는 두모포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의 동호대교 부근에 있던 작은 나루로서, 한강나루의 보조 나루였다. 이 일대 한강을 동호(東湖)라 불렀으며, 강 건너편 돌출 부분에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에서 그들을 보내고 배 안에서 통곡하며 돌아왔다.

 

 

 1956년 두모포 근방. 

 

 

 

 

28년 전 일이 스치듯 떠올라

 

嗟乎! 姊氏新嫁曉粧, 如昨日.

! 누이 시집가려 새벽에 화장할 때가 마치 어제 같다.

 

余時方八歲, 嬌臥馬𩥇,

나는 겨우 8살로 교태부리며 누워서 발 장난 치면서마전(馬𩥇): 말이 땅에 뒹굴며 몸을 비벼대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여기서는 발랑 누워 어리광을 부리며 발버둥을 치는 어린 연암의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개구쟁이 같은 여덟 살 소년 연암의 짖궂은 태도가 이 글자에 잘 집약되어 있다. 그후 28년이 흘러 이 글을 쓸 당시 연암은 서른다섯 살의 장년이었다

 

效婿語口吃鄭重.

신랑의 말을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듯 했었다.

 

姊氏羞, 墮梳觸額,

누이는 부끄러워하며 얼레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맞췄기에

 

余怒啼, 以墨和粉,

나는 성질을 내며 울면서 먹으로 분을 섞고

 

以唾漫鏡.

침을 거울에 뱉어 더럽혔었다.

 

姊氏出玉鴨金蜂,

그러자 누이는 옥으로 된 기러기와 금으로 된 나비 노리개를 꺼내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나에게 주며 울음을 그치게 했으니,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의 일이로구나.

 

 

 얼레빗 사건으로 28년 전의 일이 마치 현재인 양 떠오를 수 있었다. 얼레빗은 28년 전 내가 했던 일을 알고 있다.  

 

 

 

 

28년 전 일이 현재의 풍경과 뒤섞이다

 

立馬江上, 遙見丹旐翩然,

말을 강가에 세워두니 아득히 붉은 명정(銘旌)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 등을 기록하여 상여 앞에 들고 가는 긴 기()를 말한다이 나부끼는 게 보이고

 

檣影逶迤,

돛대 그림자 구불구불 흘러가

 

至岸轉樹隱不可復見.

강굽이에 이르러 나무 그림자에 가려져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銘旌과 상여의 모습(사진 출처 - 백산의 오두막)

 

 

 

而江上遙山, 黛綠如鬟,

이윽고():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사이에는 연속과 단절, 고조와 전환, 인식의 비상과 미학적 고양이 존재한다. 아무 뜻도 갖지 않는 이 한 글자가 이 모든 것을 매개하고, 이 모든 것을 실현시키고 있다. 이 점에서 이 글자는 천금의 값어치를 가지며, 아무런 질량도 없으면서도 굉장한 존재론적 무게를 갖는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암을 읽다, 박희병, 돌베개, 2006, 25~26강가의 먼 산은 검푸른 빛깔이 눈썹먹 같고,

 

江光如鏡, 曉月如眉.

강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눈썹 같기만 하다.

 

泣念墮梳, 獨幼時事歷歷,

울며 얼레빗을 떨어뜨릴 때를 생각하니 유독 어릴 때의 일이 하나하나 기억났고

 

又多歡樂, 歲月長,

또한 즐거움과 기쁜 일이 많아 세월이 더디 갈 것만 같더니,

 

中間常苦離患憂貧困, 忽忽如夢中.

중간부턴 늘 근심과 우환과 빈곤이 있어 아득히 마치 꿈인 것만 같다.

 

爲兄弟之日, 又何甚促也?

형제가 되었던 날(누나가 시집가기 전까지 8년을 말함)은 또한 어찌 그리고 금방이던가연암은 23세 때 모친이 돌아가셨고, 이듬해에 집안의 기둥이었던 조부 박필균이 작고했으며, 31세 때 부친이 돌아가셨다. 부친이 돌아가신 지 4년 만에 다시 큰누님의 죽음을 맞은 것이다. -연암을 읽다, 27.

 

去者丁寧留後期 떠나는 사람(이택모)은 정령 머물며 다시 만날 날 기약하자 해도
猶令送者淚沾衣 오히려 보내는 사람으로 눈물로 옷을 적시게 하네.
扁舟從此何時返 조각배 이로부터 어느 때에나 돌아오려나
送者徒然岸上歸 보내는 이 망연자실하게 언덕에서 돌아오네.

 

 

 

처남 이재성의 이 글에 대한 평

 

緣情爲至禮, 寫境爲眞文.

정을 따르면 지극한 예가 되고, 경치를 묘사하면 참된 글이 된다.

 

文何甞有定法哉?

글이란 게 어찌 일찍이 정해진 법칙이 있겠는가?

 

此篇以古人之文讀之, 則當無異辭,

이 글을 옛 사람의 글로 읽으면 마땅히 다른 말이 없겠지만,

 

而以今人之文讀之, 故不能無疑.

지금 사람의 글고문(古文)’이란 일종의 전통주의로서, 당송팔대가 등 과거에 이미 확립된 문장의 법도를 전범으로 삼는 창작 태도를 가리킨다. '금문'이란, 다른 말로는 시문(時文)’이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반전통주의로서, 고문의 법도에 구애됨이 없이 진솔하고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옮기는 창작 태도를 가리킨다. -연암을 읽다, 30로 읽으면 의심이 없을 수가 없다.

 

願秘之巾衍.

그러니 상자에 넣어 비밀스럽게 간직하길 원한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036

한문공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1. 16살에 시집간 누이가 고생만 하다 43살에 죽다

2. 누이 시집가던 날의 추억과 아련히 겹치는 현재

3. 묘지명의 관습을 깨어 생명력과 감동을 얻다

3-1. 총평

4. 미묘한 감정을 글과 시로 풀어내는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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