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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눈 뜬 장님 - 2. 눈에 현혹되지 말라 본문

책/한문(漢文)

눈 뜬 장님 - 2. 눈에 현혹되지 말라

건방진방랑자 2020. 3. 2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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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에 현혹되지 말라

 

 

이제 나는 한밤중에 한 줄기 황하를 아홉 번 건넜다. 황하는 장성 밖에서 나와 장성을 뚫고서 유하와 조하, 황화와 진천 등 여러 물줄기를 한데 모아, 밀운성 아래를 지나면서는 백하가 된다. 나는 어제 배를 타고서 백하를 건넜는데, 이곳의 하류이다. 내가 아직 요동 땅에 들어서지 않았을 때 바야흐로 한 여름 불볕 속에 길을 가다가 갑자기 큰 강물이 앞에 나오는데, 붉은 파도가 산처럼 일어서며 그 끝간 데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대개 천리밖에 폭우가 내린 때문이었다.

今吾夜中一河九渡. 河出塞外, 穿長城, 會楡河潮河黃花鎭川諸水, 經密雲城下爲白河. 余昨舟渡白河, 乃此下流. 余未入遼時, 方盛夏行烈陽中, 而忽有大河當前, 赤濤山立, 不見涯涘, 蓋千里外暴雨也.

소리는 귀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듣는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다시 논의는 황하로 돌아온다. 이제 나는 한밤중에 황하를 아홉 번이나 건넜다. 장성 밖에서 기세 좋게 장성을 꿰뚫고 나온 강물은 그밖에 여러 물줄기를 한데 모아 밀운성 아래에 이르러 장대한 백하를 이룬다. 그런데 이 강물은 그 규모란 것이 만만치 않아서, 대낮 땡볕 속에 길을 가다가 강물과 만났는데도, 붉은 파도가 산처럼 우뚝 높이 서 있는 것이다. 비도 오지 않는 이 땡볕 속에 웬 물결이냐고 의아해 하노라면, 문득 천리 밖에서 폭우가 내린 탓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천리 밖 폭우가 천리 아래에서 미친 물결을 일으키는 곳이 이곳 황하다. 그 규모는 내 시골집 앞을 흐르던 도랑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도랑물이 불어난 소리를 듣고도 내 마음은 이미 온갖 생각을 자아냈는데, 이제 이 엄청난 황하를 앞에 두고서 나는 또 무슨 생각을 일으킬 것인가?

 

 

물을 건널 때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우러러 하늘을 바라보길래, 혼자 생각에 사람들이 고개를 우러러 하늘에 묵묵히 기도를 드리는가 싶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물을 건너는 사람이 물이 세차게 거슬러 올라가며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제 몸조차 마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하고, 눈은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것만 같아 문득 어찔해지며 빙글 돌아 물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니, 그 머리를 우러름은 하늘에 기도하자는 것이 아니라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다. 또한 어느 겨를에 경각에 달린 목숨을 묵묵히 빌 것이랴.

渡水之際, 人皆仰首視天, 余意諸人者, 仰首黙禱于天. 久乃知渡水者, 視水洄駛洶蕩, 身若逆溯, 目若沿流, 輒致眩轉墮溺. 其仰首者非禱天也, 乃避水不見爾. 亦奚暇黙祈其須臾之命也哉.

강물을 건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아래를 보려들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목숨을 기도하는가 싶지만, 그 거세찬 소용돌이를 보노라면 머리가 온통 빙글빙글 돌고, 그 위에 눈길을 던지면 제 몸마저 그 물살을 따라 떠내려 갈 것만 같아서 순간에 어찔해지며 강물 위로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드는 것은 기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물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보면 안 된다. 보면 탈이 난다. 눈에 현혹되지 말아라. 보이는 것이 실상은 아니다. 앞서는 소리는 마음으로 듣는다고 해 놓고, 여기서는 다시 눈 때문에 마음이 허상을 지어냄을 말하였다. 그렇다면 눈과 귀가 먼저인가? 아니면 마음이 먼저인가? 연암협에서는 마음이 귀로 들려오는 소리를 바꾸어 버렸고, 황하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버렸다. 여기에도 선후가 있는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019

서대문형무소 후기

소화시평 상권85 정리

1. 같은 소리도 마음 따라 달리 들린다

2. 눈에 현혹되지 말라

3. 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두렵게 하네

4. 눈과 귀에 휘둘리지 말라

5. 연못가에 서서도 전혀 위태롭지 않은 장님

6. 장님의 눈이야말로 평등안

7.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도로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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