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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눈 뜬 장님 - 1. 같은 소리도 마음 따라 달리 들린다 본문

책/한문(漢文)

눈 뜬 장님 - 1. 같은 소리도 마음 따라 달리 들린다

건방진방랑자 2020. 3. 2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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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소리도 마음 따라 달리 들린다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나와 바위에 부딪치며 사납게 흘러간다.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결, 구슬피 원망하는 듯한 여울은 내달리고 부딪치고 뒤엎어지며 울부짖고 으르렁대고 소리 지르니, 언제나 만리장성마저 꺾어 무너뜨릴 기세가 있다. 만대의 전차와 만 마리의 기병, 만대의 대포와 만개의 북으로도 그 무너질 듯 압도하는 소리를 비유하기엔 충분치 않다. 모래 위에는 큰 바위가 우뚝하니 저만치 떨어져 서 있고, 강가 제방엔 버드나무가 어두컴컴 흐릿하여 마치도 물 밑에 있던 물귀신들이 앞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놀래킬 것만 같고, 양옆에서는 교룡과 이무기가 확 붙들어 나꿔 채려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곳이 옛 싸움터인지라 황하가 이렇듯이 운다고 말하기도 하나,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강물소리는 어떻게 듣는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河出兩山間, 觸石鬪狼, 其驚濤駭浪憤瀾怒波哀湍怨瀨, 犇衝卷倒, 嘶哮號喊, 常有摧破長城之勢. 戰車萬乘, 戰騎萬隊, 戰砲萬架, 戰鼓萬坐, 未足諭其崩塌潰壓之聲. 沙上巨石屹然離立, 河堤柳樹, 窅冥鴻濛, 如水祗河神爭出驕人, 而左右蛟螭試其挐攫也. 或曰此古戰場故河鳴然也, 此非爲其然也. 河聲在聽之如何爾.

일야구도하기열하일기』 「산장잡기가운데 실려 있다. 북경에 도착한 사신 일행에게 황제는 만리장성 밖 열하의 피서산장으로 날짜를 정해 대어 오라는 명을 내린다. 이에 큰 비에 물이 불어난 황하를 밤낮 없이 빠른 길을 찾아 재촉하다 보니, 그야말로 하루 밤에 이리저리 강물을 아홉 번씩이나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글은 그러니까 그때의 소감을 적은 글이다.

놀란 듯 성난 듯 원망하는 듯 파도와 물결은 온통 내달리고 부딪치면서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우뚝 선 만리장성조차도 그 도도한 기세엔 맥없이 무너지고 말 지경이다. 만대의 전차와 만 마리의 기병, 만대의 대포와 만개의 북이 일시에 내달리고 일시에 포성을 내지르고 둥둥 울린다 해도 이 소리보다는 못할 것이다. 그 뿐인가? 강 가 모래 위에는 큰 바위가 저만치 떨어져 시커멓게 우뚝 서 있고, 강가 버드나무는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 강물 속 물귀신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배 위에 탄 사람을 놀래킬 것만 같다. 뱃전을 할금대는 미친 물결은 마치 교룡과 이무기가 사람을 나꿔채 가려고 이따금씩 손톱을 곧추세워 할켜대는 것만 같다. 황하는 왜 이렇게 우는가? 옛 싸움터인지라 이곳에서 죽은 원혼들이 워낙에 많아 그렇게 우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소리는 어떻게 듣느냐에 달린 것일 뿐이다. 처음 느닷없이 황하의 미친 물결과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을 묘사하고 나서, 아직 그 광경에 눈이 팔려 있는 사이 어느새 연암은 본론으로 들어선다. ‘소리는 듣기 여하에 달려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내 집은 산 속에 있는데,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다. 매년 여름에 소낙비가 한 차례 지나가면 시내물이 사납게 불어 항상 수레와 말이 내달리고 대포와 북소리가 들려와 마침내 귀가 멍멍할 지경이 되었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 비슷한 것에 견주어 이를 듣곤 하였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는 퉁소소리는 맑은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소리는 성난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개구리 떼가 앞 다투어 우는 소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고, 일만 개의 축이 차례로 울리는 소리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천둥이 날리우고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는 놀란 마음으로 들은 까닭이요,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는 운치 있는 마음으로 들은 때문이다. 거문고의 높은 음과 낮은 음이 어우러지는 소리는 슬픈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문풍지가 바람에 우는 소리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듣는 소리가 모두 다 바름을 얻지 못한 것은 단지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를 펼쳐놓고서 귀가 소리를 만들기 때문일 뿐이다.

余家山中, 門前有大溪, 每夏月急雨一過, 溪水暴漲, 常聞車騎砲鼓之聲, 遂爲耳崇焉. 余嘗閉戶而臥, 比類而聽之. 深松發籟此聽雅也, 裂山崩崖此聽奮也, 群蛙爭吹此聽驕也, 萬筑迭響此聽怒也, 飛霆急雷此聽驚也, 茶沸文武此聽趣也, 琴諧宮羽此聽哀也, 紙牕風鳴此聽疑也. 皆聽不得其正, 特胸中所意設而耳爲之聲焉爾.

두 번째 단락에서는 다시 부러 딴전을 부리며 글의 호흡을 고른다. 황해도 골짜기의 연암협에 있는 내 집 앞에도 큰 시내가 하나 있다. 여름철 소낙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사납게 불어 수레소리 말소리, 대포소리 북소리가 뒤섞인 듯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문을 닫고 가만히 그 소리를 들어보면, 소리는 그때마다 다른 모양새로 내게 들려오는 것이다. 어떤 때는 강물소리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가는 송뢰성松籟聲으로 들릴 때가 있다. 그것은 그때 내 마음이 그렇듯이 맑았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답답하고 성난 일이 있을 때 그 소리는 문득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소리로 들렸다. 어떤 때는 한밤중에 개구리떼가 와글대듯 들리기도 했는데, 내 마음에 교만한 기운이 있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때로 물소리가 마치 일만 개의 타악기가 동시에 둥둥 울리듯 들릴 때도 있었다. 그 때 나는 마음속에 터질 듯한 분노를 지니고 있었다.

소낙비에 불어난 강물소리는 사실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문 닫고 들어앉은 내게는 그 소리가 그때마다 다르게 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소리는 귀로 들은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은 소리일 뿐이다. 내 눈으로 직접 강물을 바라보지 않고, 단지 귀로만 들으니 마음이란 놈이 튀어나와 자꾸만 제 가늠으로 헛생각을 지어내어 허상을 꾸며내는 것이다. ‘소리는 귀로 듣지 않는다. 마음으로 듣는다.’ 같은 소리도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그럴진대 마음의 소리는 허상일 뿐인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019

서대문형무소 후기

소화시평 상권85 정리

1. 같은 소리도 마음 따라 달리 들린다

2. 눈에 현혹되지 말라

3. 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두렵게 하네

4. 눈과 귀에 휘둘리지 말라

5. 연못가에 서서도 전혀 위태롭지 않은 장님

6. 장님의 눈이야말로 평등안

7.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도로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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