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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눈 뜬 장님 - 3. 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두렵게 하네 본문

책/한문(漢文)

눈 뜬 장님 - 3. 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두렵게 하네

건방진방랑자 2020. 3. 2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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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두렵게 하네

 

 

그 위태로움이 이와 같은데도 강물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모두들 요동 평야는 평평하고 광활하기 때문에 물줄기가 성내 울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황하를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요하遼河가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밤중에 건너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낮에는 능히 물을 볼 수 있는 까닭에 눈이 온통 위험한데로만 쏠려서 바야흐로 부들부들 떨려 도리어 그 눈이 있음을 근심해야 할 판인데 어찌 물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이제 내가 한밤중에 강물을 건너매, 눈에 위태로움이 보이지 않자 위태로움이 온통 듣는 데로만 쏠려서 귀가 바야흐로 덜덜 떨려 그 걱정스러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其危如此而不聞河聲. 皆曰遼野平廣故水不怒鳴, 此非知河也. 遼河未嘗不鳴, 特未夜渡爾. 晝能視水故, 目專於危, 方惴揣焉, 反憂其有目, 得安有所聽乎? 今吾夜中渡河, 目不視危, 則危專於聽. 而耳方惴揣焉, 不勝其憂.

이상한 것은 이런 것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미친 물결에 이 몸이 금세 떠내려 갈 것만 같이 빙글빙글 도는데도 정작 강물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결코 요동 평야가 평평하고 드넓어 그런 것이 아니다. 황하의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그 거센 물결에 눈이 온통 팔려서 미처 그 물결이 일으키는 굉음이 귀에 들어올 겨를이 없는 것일 뿐이다. 밤중에 건너면 상황은 완전히 반대로 된다. 낮에 보이던 그 물결의 어지러움은 없고, 한밤중의 황하는 다만 소리로 건너는 사람의 넋을 다 앗아간다. 우르르르 하고 물결이 밀려들면 금세라도 내가 거기에 한데 휩쓸려 떠내려갈 것만 같고, 저리로 밀려가면 휴우 살았구나 싶다. 도대체 물살이 얼마나 큰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기에 두려움은 공포로 변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낮에는 눈에 보이는 격랑 때문에 소리가 들리지 않더니, 밤에는 정작 그 물결은 보이지 않는데 소리가 온갖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이다. 강물에는 귀로 들리는 소리가 있고, 눈으로 보는 물살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내가 놓인 상황에 따라 들리기도 하고 들리지 않기도 한다.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내 눈은 그대로인데 왜 보이고 보이지 않는가? 내 귀는 변함없건만 어째서 들리고 들리지 않는가? 그럴진대 나는 내 눈과 귀를 믿어야 옳을까? 아니면 내 마음을 믿어야 옳을까?

 

 

내가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이 텅 비어 고요한 사람은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고, 눈과 귀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더더욱 병통이 되는 것임을. 이제 내 마부가 말에게 발이 밟혀 뒷 수레에 실리고 보니, 마침내 고삐를 놓고 강물 위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올려 발을 모두니, 한 번 떨어지면 그대로 강물이었다. 강물로 땅을 삼고 강물로 옷을 삼고 강물로 몸을 삼고 강물로 성정을 삼아 마음에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고나자 내 귀 속에 마침내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을 건넜으되 아무 걱정 없는 것이, 마치 앉은 자리 위에서 앉고 눕고 기거하는 것만 같았다.

吾乃今知夫道矣. 冥心者, 耳目不爲之累, 信耳目者, 視聽彌審而彌爲之病焉. 今吾控夫足爲馬所踐則, 載之後車, 遂縱鞚浮河, 攣膝聚足於鞍上, 一墜則河也. 以河爲地, 以河爲衣, 以河爲身, 以河爲性情, 於是心判一墮, 吾耳中遂無河聲. 凡九渡無虞, 如坐臥起居於几席之上.

! 그랬었구나. 꼭 같은 강물 소리도 내 마음의 빛깔에 따라 영 딴판의 소리로 들리는 것이로구나. 본시 내 눈과 내 귀란 것은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로구나. 내 마음이란 것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그러면서 연암은 명심자冥心者신이목자信耳目者를 구분한다. ‘명심冥心이란 속념을 끊어 마음을 고요하게 지니는 것이니, 당나라 수아修雅문송법화경가聞誦法華經歌눈 감고 마음 비워 자세히 들으라(合目冥心子細聽).”의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명심과 한 가지 뜻이다. 그러니 명심자는 속된 생각을 들이지 않고 이목에 현혹되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이에 반해 신이목자는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들은 것만을 신뢰하고, 직접 보고 듣지 못한 것은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다가 결국 그 때문에 진실을 놓치고 마는 사람이다.

 

 

冥心者

信耳目者

속념을 끊어 마음을 고요하게 지니는 것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들은 것만을 신뢰함

이목에 현혹되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지닌 사람

직접 보고 듣지 못한 것은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다가 결국 그 때문에 진실을 놓치고 마는 사람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탈이 되지 않는다. 눈과 귀만을 믿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할수록 더 탈이 된다. 그래서 황하의 소용돌이치는 물결을 보다가 제 몸도 따라 빙글 돌아 물에 떨어지기 일쑤이고, 귀 멍멍한 소리에 기가 질려 어쩔 줄 모르게 된다. 발 다친 마부 때문에 말고삐 잡아줄 말구종꾼도 없이 혼자 말안장 위에 발을 모우고 앉아 흔들흔들 황하를 건넜다. 자칫 기우뚱 하는 날엔 그대로 황하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마음을 고요히 비워 황하와 내가 하나가 되고 보니, 마침내 그 우레와 같이 쿵쾅대던 강물소리는 내 귀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루 밤에 아홉 번을 건너는 속에서, 벌벌 떠는 사람들의 황황한 거동을 바라보며 나는 집안에 거처하듯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편안하게 강물을 건널 수 있었다. 소리를 귀로 들으려 하지 마라. 소리는 귀로 듣지 않는다. 텅 빈 마음으로 들어라. 귀로 듣는 소리는 마음에 공연한 작용을 일으켜 허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마음을 비우면 내 안으로 강물 소리가 차올라서 내가 바로 강물이 된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019

서대문형무소 후기

소화시평 상권85 정리

1. 같은 소리도 마음 따라 달리 들린다

2. 눈에 현혹되지 말라

3. 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두렵게 하네

4. 눈과 귀에 휘둘리지 말라

5. 연못가에 서서도 전혀 위태롭지 않은 장님

6. 장님의 눈이야말로 평등안

7.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도로 눈을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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