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양지(良知)와 실천
전덕홍(錢德洪)
今欲別善惡以誠其意, 惟在致其良知之所知焉爾.
何則? 意念之發, 吾心之良知旣知其爲善矣. 使其不能誠有以好之, 而復背而去之, 則是以善爲惡, 而自昧其知善之良知矣; 意念之所發, 吾之良知旣知其爲不善矣. 使其不能誠有以惡之, 而復蹈而爲之, 則是以惡爲善, 而自昧其知惡之良知矣. 若是, 則雖曰知之, 猶不知也, 意其可得而誠乎?
今於良知之善惡者, 無不誠好而誠惡之, 則不自欺其良知而意可誠也已. 然欲致其良知, 亦豈影響恍惚而懸空無實之謂乎? 是必實有其事矣. 故致知必在於格物.
物者, 事也, 凡意之所發必有其事, 意所在之事謂之物. 格者, 正也, 正其不正以歸於正之謂也. 正其不正者, 去惡之謂也, 歸於正者, 爲善之謂也, 夫是之謂格. 『書』言‘格於上下’, ‘格于文祖’, ‘格其非心’, 格物之格實兼其義也.
良知所知之善, 雖誠欲好之矣, 苟不卽其意之所在之物而實有以爲之, 則是物有未格, 而好之之意猶爲未誠也; 良知所知之惡, 雖誠欲惡之矣, 苟不卽其意之所在之物而實有以去之, 則是物有未格, 而惡之之意猶爲未誠也.
해석
今欲別善惡以誠其意,
지금 선악을 분별하여 그 뜻을 성실히 하려 한다면
惟在致其良知之所知焉爾.
오직 양지(良知)가 아는 것을 극진히 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
何則? 意念之發, 吾心之良知旣知其爲善矣.
왜인가? 생각이 나오면 내 마음의 양지(良知)는 그 선하다는 걸 안다.
使其不能誠有以好之, 而復背而去之,
가령 진실로 좋아할 수가 없어 다시 배반하고 떠나야 한다면
則是以善爲惡, 而自昧其知善之良知矣;
이것은 선을 악으로 삼아 스스로 선을 아는 양지(良知)를 어둡게 만드는 것이다.
意念之所發, 吾之良知旣知其爲不善矣.
생각이 나오면 나의 양지(良知)가 이미 불선하다는 걸 안다.
使其不能誠有以惡之, 而復蹈而爲之,
가령 진실로 싫어할 수 없어 다시 실천하며 행동한다면
則是以惡爲善, 而自昧其知惡之良知矣.
이것은 악을 선으로 삼아 스스로 악을 아는 양지(良知)를 어둡게 만드는 것이다.
若是, 則雖曰知之,
이와 같다면 비록 ‘그걸 안다’고 말할지라도
猶不知也, 意其可得而誠乎?
알지 못함과 같으니 뜻이 성실해줄 수 있겠는가.
今於良知之善惡者, 無不誠好而誠惡之,
이제 양지(良知)가 선악에 대해서 진실로 좋아하고 진실로 미워하지 않음이 없다면
則不自欺其良知而意可誠也已.
스스로 양지(良知)를 속이지 않아 뜻이 성실해질 뿐이다.
然欲致其良知,
그러나 양지(良知)를 지극히 하고자 한다는 것이
亦豈影響恍惚而懸空無實之謂乎?
또한 어찌 그림자나 메아리 같이 황홀하고 공중에 매달 듯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是必實有其事矣.
이것은 반드시 실제로 그 일이 있는 것이다.
故致知必在於格物.
그러므로 앎을 지극히 한다는 것은 반드시 ‘격물(格物)’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物者, 事也, 凡意之所發必有其事,
물(物)이란 사건이니 대체로 뜻이 나타나면 반드시 사건이 있고
意所在之事謂之物.
뜻이 그곳에 있는 사건을 물(物)이라 말한다.
格者, 正也, 正其不正以歸於正之謂也.
격(格)은 바르다는 뜻이니 바르지 않은 걸 바르게 함으로 바름으로 되돌리는 걸 말한다.
正其不正者, 去惡之謂也,
바르지 않은 걸 바르게 한다는 건 악을 제거하는 걸 말하고,
歸於正者, 爲善之謂也, 夫是之謂格.
바름으로 되돌린다는 건 선을 행함을 말하니, 이것을 ‘격(格)’이라 말한다.
『書』言‘格於上下’, ‘格于文祖’,
『서경』 「요전(堯典)」에 ‘상하에 이르렀다’나 「순전(舜典)」에 ‘문조의 사당에 이르렀다’나
‘格其非心’, 格物之格實兼其義也.
「경명(冏命)」에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다’는 ‘격물(格物)’의 격(格)과 실제로 ‘이르다’, ‘바르게 한다’를 겸하고 있다.
良知所知之善, 雖誠欲好之矣,
양지(良知)가 아는 선을 비록 진실로 그걸 좋아한다 해도
苟不卽其意之所在之物而實有以爲之,
진실로 그 뜻이 있는 곳의 사물에 나아가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則是物有未格, 而好之之意猶爲未誠也;
이것은 물(物)이 격(格)이 되지 않은 것이고 좋아하는 뜻이 아직 성실하진 않은 것이다.
良知所知之惡, 雖誠欲惡之矣,
양지(良知)가 아는 악을 비록 진실로 그걸 미워한다 해도
苟不卽其意之所在之物而實有以去之,
진실로 그 뜻이 있는 곳의 사물에 나아가 실제로 그것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則是物有未格, 而惡之之意猶爲未誠也.
이것은 물(物)이 격(格)되지 않은 것이고 미워하는 뜻이 아직 성실하진 않은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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