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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문(大學問) - 5. 본말(本末)과 종시(終始)는 하나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대학문(大學問) - 5. 본말(本末)과 종시(終始)는 하나다

건방진방랑자 2020. 3. 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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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본말(本末)과 종시(終始)는 하나다

 

전덕홍(錢德洪)

 

 

: “物有本末, 先儒以明德爲本, 新民爲末, 兩物而內外相對也; 事有終始, 先儒以知止爲始, 能得爲終, 一事而首尾相因也. 如子之說, 以新民爲親民, 則本末之說亦有所未然歟?”

: “終始之說, 大略是矣. 卽以新民爲親民, 而曰明德爲本, 親民爲末, 其說亦未嘗不可, 但不當分本末爲兩物耳.

夫木之幹, 謂之本; 木之梢, 謂之末, 惟其一物也, 是以謂之本末. 若曰兩物, 則旣爲兩物矣, 又何可以言本末乎? 新民之意, 旣與親民不同, 則明德之功, 自與新民爲二. 若知明明德以親其民, 而親民以明其明德, 則明德親民焉可析而爲兩乎?

先儒之說, 是蓋不知明德親民之本爲一事, 而認以爲兩事. 是以雖知本末之當爲一, 而亦不得不非爲兩物也.”

 

 

 

 

해석

: “物有本末,

여쭈었다. “‘사물에는 본말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先儒以明德爲本, 新民爲末,

선배 유학자인 주희는 명덕(明德)’을 근본으로 삼고 신민(新民)’을 말단으로 삼아

 

兩物而內外相對也;

두 물건으로 내외를 서로 대조하였다.

 

事有終始,

일엔 시종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先儒以知止爲始, 能得爲終,

선배 유학자인 주희는 지지(知止)’를 처음으로 삼고 능득(能得)’을 끝으로 삼아明德新民, 兩物而內外相對, 故曰本末; 知止能得, 一事而首尾相因, 故曰終始. -大學或問

 

一事而首尾相因也.

하나의 사태로 수미가 서로 연결된다고 하였다.

 

如子之說, 以新民爲親民,

선생의 말이 신민(新民)’친민(親民)’으로 삼는다면

 

則本末之說亦有所未然歟?”

본말의 설명이 또한 그렇지 않은 게 있습니까?”

 

: “終始之說, 大略是矣.

말씀하셨다. “‘종시(終始)’에 관한 말이 대략적으론 옳다.

 

卽以新民爲親民, 而曰明德爲本, 親民爲末,

이미 신민(新民)’친민(親民)’으로 삼아 명덕(明德)’이 근본이 되고 친민(親民)’이 말단이 되니,

 

其說亦未嘗不可,

그 말은 또한 일찍이 불가한 건 아니지만

 

但不當分本末爲兩物耳.

다만 본과 말을 나누어 두 가지 사물로 삼는 것이 부당할 뿐이다.

 

夫木之幹, 謂之本;

일반적으로 나무의 뿌리를 근본이라 말하고

 

木之梢, 謂之末,

나무의 끝을 끝이라 말하지만,

 

惟其一物也, 是以謂之本末.

오직 하나의 물건으로 이것을 본말(本末)’이라 말하는 것이다.

 

若曰兩物, 則旣爲兩物矣,

만약 두 가지 사물이라 말한다면 이미 두 가지 사물이 되니

 

又何可以言本末乎?

또한 어찌 본말(本末)’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新民之意, 旣與親民不同,

신민(新民)’의 뜻이 이미 친민(親民)’과 같지 않다면

 

則明德之功, 自與新民爲二.

명덕(明德)’의 공은 절로 신민(新民)’과 둘로 나누어지게 된다.

 

若知明明德以親其民, 而親民以明其明德,

만약 명명덕(明明德)’으로 친기민(親其民)’하고 백성을 친하게 여김으로 밝은 덕을 밝힘을 안다면

 

則明德親民焉可析而爲兩乎?

명덕(明德)’친민(親民)’은 쪼개어 둘이 될 수 있겠는가.

 

先儒之說, 是蓋不知明德親民之本爲一事,

선배 유학자 주희의 설은 대체로 명덕(明德)’친민(親民)’의 근본이 하나의 사태가 됨을 알지 못하고

 

而認以爲兩事.

오인하여 두 가지 사태라 여겼다.

 

是以雖知本末之當爲一,

이런 이유로 비록 본말(本末)이 마땅히 하나가 됨을 알고서

 

而亦不得不非爲兩物也.”

또한 두 가지 사물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인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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