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으로 사람을 보는 안목을 드러냈던 빈소선생
빈소선생전(顰笑先生傳)
이익(李瀷)
顰笑先生者, 李完平相公之故人. 相公佐我仁祖大王, 致撥亂之治, 其要不外於臧否賢愚. 吾知必有所賴於人而得者, 而不露其迹.
當時有眉叟許先生, 終始門館, 有以知其實. 其言曰: “相公所與言議, 只有姜承旨緖及趙引儀忠男二人, 姜託於狂, 趙託於瘖, 皆詭與世違者也. 先生口默而心明, 其於評騭, 賢者以笑, 否則以顰, 後皆驗, 相公之所取蓋爲此也. 然則一顰一笑之間, 而相公陶鑄進退之權盡矣, 旣無其迹, 何從以指摘其人? 故遂稱曰: ‘顰笑先生’”云
嗚呼! 先生其果瘖而已哉? 先生卽靜菴文正公兄弟之後孫, 嘗往謁陶山李子, 請爲文正行狀, 而李子又作詩答其勤來之意, 詩在『退溪集』中可考.
余悲夫古今逸羣邁迹之士, 藏名草莽, 湮滅無稱者亦多, 故書此以附『東方一士傳』後. 『星湖先生全集』 卷之六十八
해석
顰笑先生者, 李完平相公之故人.
빈소선생(顰笑先生)이란 사람은 상공 이완평【이완평(李完平): 조선 중기의 명상(名相)으로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진 이원익(李元翼)을 가리킨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이다.】의 친구이다.
상공(相公)은 우리의 인조대왕을 보좌하여 어지러움을 뿌리 뽑는 다스림을 극진히 하였으니 그 요체는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를 포폄(褒貶)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吾知必有所賴於人而得者, 而不露其迹.
나는 반드시 타인에게 의지하여 얻은 것이지만 그 자취를 드러내진 않았음을 알았다.
當時有眉叟許先生, 終始門館, 有以知其實.
당시에 미수 허목(許穆) 선생【허목(許穆)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 찬성 허자(許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별제 허강(許橿)이고, 아버지는 현감 허교(許喬)이며, 어머니는 정랑 임제(林悌)의 딸이다. 부인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이다.】이 식객이 기거하는 곳에 종일토록 있었기에 그 실체를 알고 있었다.
其言曰: “相公所與言議, 只有姜承旨緖及趙引儀忠男二人, 姜託於狂, 趙託於瘖, 皆詭與世違者也.
허목(許穆)이 말했다. “상공이 함께 말하거나 의논한 사람은 다만 승지(承旨) 강서(姜緖)【강서(姜緖) :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원경(遠卿), 호는 난곡(蘭谷). 대표관직 승지(承旨). 강영숙(姜永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인(舍人) 강온(姜溫)이고, 아버지는 우의정 강사상(姜士尙)이며, 어머니는 임간(任幹)의 딸이다. 선조 당시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여 서로 밀치고 끌어당기고 하였는데, 공은 문을 닫고 종적을 감추어 교유(交遊)를 즐기지 않고, 오직 서사(書史)에서 즐거움을 찾으면서 때론 거문고를 타거나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취하면 노래를 불러 흥을 돋았다. 말년에 더욱 세상에 뜻이 없어 옷을 풀어헤치고 술자리에 빠지다시피 하니, 사람들은 괴이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공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와 인의(引儀) 조충남(趙忠男)【조충남(趙忠男) : 생졸년 미상. 본관은 한양(漢陽). 조선 시대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隱居)한 기인(奇人)이다. 스스로 몸을 깨끗이 하려 은거했기에 세상에 아는 사람이 적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를 이인(異人)이라고 했다. 벙어리인 채하며 선악‧사정‧득실을 모두 찡그리거나 웃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가 찡그린 사람은 후에 모두 패(敗)했고 그가 웃은 사람은 후에 모두 영예(令譽)롭게 되었다. 일찍이 인의(引義)를 한 적이 있으나 곧 벼슬을 버렸다고 한다.】이란 사내 두 명이었는데, 강서는 미치광인 척했고 조충남은 벙어리인 척했으니, 모두 거짓으로 세상에 어긋난 이들이었지.
先生口默而心明, 其於評騭, 賢者以笑, 否則以顰, 後皆驗, 相公之所取蓋爲此也.
조충남 선생의 입은 과묵했지만 마음은 현명하여 평가함에 어진 이라면 웃고 그렇지 않은 이라면 찡그려 훗날에 모두 증험되었으니 상공이 취한 게 대체로 이렇게 한 것이라네.
然則一顰一笑之間, 而相公陶鑄進退之權盡矣, 旣無其迹, 何從以指摘其人?
그러니 한 번 찡그리고 웃는 사이에 상공은 인재【도주(陶鑄): 도주의 도(陶)는 범토(笵土)를 이름이요, 주(鑄)는 주금(鑄金)을 이름이니, 다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인재를 만들어내는 뜻으로 쓰여졌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요순(堯舜)을 도주(陶鑄)한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질그릇 만드는 사람이 손으로 만져서 질그릇의 형상을 만들 듯이, 무쇠 그릇 만드는 사람이 무쇠를 녹여 부어서 무쇠 그릇을 만들 듯, 그 사람을 교양하여 사람이 되게 하였다는 말이다.】의 진퇴를 결정하는 저울질이 다하였던 것인데, 이미 그 자취가 없으니 어디에서 그 사람을 평가하겠는가?
故遂稱曰: ‘顰笑先生’”云
그러므로 마침내 ‘빈소선생(顰笑先生)’이라 부르게 됐지”
嗚呼! 先生其果瘖而已哉?
아! 선생은 과연 벙어리였을 뿐인가?
先生卽靜菴文正公兄弟之後孫, 嘗往謁陶山李子, 請爲文正行狀, 而李子又作詩答其勤來之意, 詩在『退溪集』中可考.
선생은 곧 정암 문정공 조광조(趙光祖)【조광조(趙光祖) :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菴).】 형제의 후손으로 일찍이 도산 이황(李滉)을 찾아가 뵙고 문정공의 행장을 지어주길 청했는데 이황 선생은 또한 시를 지어 찾아온 뜻을 보답하여 시는 『퇴계집』 속에 있으니 고증할 수 있다.
余悲夫古今逸羣邁迹之士, 藏名草莽, 湮滅無稱者亦多, 故書此以附『東方一士傳』後. 『星湖先生全集』 卷之六十八
나는 고금의 무리에서 빼어나고 학문에 힘쓰는 선비가 이름을 감추고 초야에 살다가 사라져 일컬어지지 않는 사람이 또한 많은 걸 슬퍼했기 때문에 이 글을 써서 『동방일사전』【동방일사전(東方一士傳) : 조선 후기에 이익(李瀷)이 지은 전(傳). 이 작품은 학문과 경륜을 가진 선비가 자기의 뜻을 세상에 펴지 못하고, 산림에 묻혀 지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글은 매우 짧으나 그 속에 담겨 있는 뜻은 천고의 뜻있는 선비들의 불우함과 슬픔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하겠다.】 뒤에 첨부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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