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홍대용과의 우정
癸卯哭洪湛軒. 先君中年交遊益鮮, 惟湛軒公終始無替, 有物外許心之契.
嘗於燕峽, 答湛軒書曰: “平生交遊, 不爲不廣, 挈德量地, 皆許以友. 然其所與者, 不無馳名涉世之嫌, 所見者, 惟名勢利而已. 今僕自逃於蓬藋之間, 山高水深, 安用名爲?
古人所謂: ‘動輒得謗, 名亦隨之’者, 殆亦虛語. 纔得寸名, 已招尺謗, 好名者老當自知. 每中夜自檢, 齒出酸㳄, 名實之際, 自削之不暇, 况復近之耶?
勢與利, 亦嘗涉此塗. 盖人皆思取諸人而有諸己, 未嘗見損諸己而益於人. 名兮本虛, 人不費價, 或易以相與, 至於實利實勢, 豈肯推以與人? 徒自近油, 點衣而已.
旣去此三友, 始乃明目求見, 所謂友者, 盖無一人焉. 俛仰今古, 安得不鬱鬱於心耶?
入山以來, 亦絕此念. 每念德操趣黍, 佳趣悠然, 沮ㆍ溺耦耕, 眞樂依依, 登山臨水, 未嘗不髣髴懷想也. 念兄於友朋一事, 知有血性, 故今因一段幽鬱, 聊以奉質耳.”
湛軒在榮川, 爲送犁牛二頭ㆍ農器五事ㆍ絲欄空卷二十★弓+二ㆍ錢二百緡曰: “山中不可不買田爲耕, 且宜著書傳後也.” 其患難窮苦, 相與如此.
及湛軒歿, 先君爲檢其殯斂. 自爲書訃, 告吳ㆍ杭諸人, 皆湛軒天涯知己也.
湛軒平日持論, 以喪禮飯含爲不必行, 且囑先君檢其終事. 及是時, 告其孤子薳, 薳亦聞遺旨, 遂贈之而不含, 從其志也.
先君誄之曰: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해석
癸卯哭洪湛軒.
계묘(1783)년에 홍담헌을 곡했다.
先君中年交遊益鮮, 惟湛軒公終始無替,
선군께선 중년에 교유가 더욱 드물어졌지만 오직 담헌공과만은 시종 바뀌질 않았으니
有物外許心之契.
물질적 욕망 외의 마음을 허락한 사귐이 있었던 것이다.
嘗於燕峽, 答湛軒書曰:
일찍이 연암협에서 담헌에게 답장을 쓰셨다.
“平生交遊, 不爲不廣,
“평생 교유함이 넓지 않음이 없어서
挈德量地, 皆許以友.
덕을 재고 처지를 헤아려 모두 벗으로 허여했습니다.
然其所與者, 不無馳名涉世之嫌,
그러나 허여한 것이 명예에 달리고 세상을 살아가려한 혐의가 없지 않았으며
所見者, 惟名勢利而已.
본 것이 오직 명예와 권세와 이익일 뿐이었습니다.
今僕自逃於蓬藋之間,
이제 저는 스스로 산골짝으로 도망쳐
山高水深, 安用名爲?
산은 높고 물은 깊으니 어디서 명성을 쓰겠습니까?
古人所謂: ‘動輒得謗, 名亦隨之’者,
옛 사람이 말했던 ‘움직일 때면 비방이 있었지만 명예 또한 따른다’라는 것은
殆亦虛語.
거의 또한 헛소리인 듯합니다.
纔得寸名, 已招尺謗,
겨우 한 치의 명예만 얻었지만 이미 한 척의 비방을 초래했으니
好名者老當自知.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늙어서야 마땅히 스스로 알 것입니다.
每中夜自檢, 齒出酸㳄,
매번 한밤중에 스스로 점검해보면 이에서 신물이 나니,
名實之際, 自削之不暇,
명예과 실제의 사이에 스스로 덜어내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况復近之耶?
하물며 다시 명예를 가까이 하겠습니까?
勢與利, 亦嘗涉此塗.
권세와 이익은 또한 일찍이 이 길에 들어선 적이 있습니다.
盖人皆思取諸人而有諸己,
대체로 사람은 모두 남에게서 취해 자기의 소유로 삼을 걸 생각하지
未嘗見損諸己而益於人.
자기에게 덜어서 남에게 더해주려 하는 건 보지 못했습니다.
名兮本虛, 人不費價,
명예란 본래 헛된 것으로 사람이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니
或易以相與, 至於實利實勢,
간혹 쉽게 서로 주기도 하나 실제로 이익이 되고 실제로 권세가 있는 것에 이르러선
豈肯推以與人?
어찌 기꺼이 밀어 남에게 주겠습니까?
徒自近油, 點衣而已.
다만 스스로 기름을 가까이 하면 옷만을 적실 뿐입니다.
旣去此三友, 始乃明目求見,
이미 이 명예, 권세, 이익의 세 벗을 버리니 비로소 곧바로 눈이 밝아져 벗을 찾아보니
所謂友者, 盖無一人焉.
말했던 벗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俛仰今古, 安得不鬱鬱於心耶?
예와 지금을 굽어보고 우러러 보니 어찌 마음에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入山以來, 亦絕此念.
연암협에 들어간 이래로 또한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每念德操趣黍,
매번 덕조 사마휘가 방덕공龐德公의 아내에게 기장밥을 짓게 한 일을 생각하니
佳趣悠然,
아름다운 정취가 그윽하고
沮ㆍ溺耦耕, 眞樂依依,
장저와 걸익이 함께 밭을 가니 진실한 즐거움이 넘실거립니다.
登山臨水, 未嘗不髣髴懷想也.
산에 오르거나 물에 임할 때면 일찍이 방불하여 회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念兄於友朋一事, 知有血性,
생각건대 형의 벗에 대한 한 가지 일에 앎이 피 끓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故今因一段幽鬱, 聊以奉質耳.”
이제 일단의 우울한 마음으로 인하여 하릴없이 받들어 질문할 뿐입니다.”
湛軒在榮川,
담헌이 영천군수로 있을 적에
爲送犁牛二頭ㆍ農器五事ㆍ
선군에게 얼룩소 두 마리와 농사기구 다섯 개와
絲欄空卷二十★弓+二ㆍ錢二百緡曰:
줄 쳐진 빈 책 2권과 돈 200냥을 보내면서 말했다.
“山中不可不買田爲耕,
“산 속에서 밭을 사서 밭 갈지 않을 수 없겠고
且宜著書傳後也.”
또한 마땅히 책을 써서 후세에 전해야 할 겁니다.”
其患難窮苦, 相與如此.
환란과 곤궁하고 괴롭지만 서로 함께함이 이와 같다.
及湛軒歿, 先君爲檢其殯斂.
담헌이 돌아가시자 선군께선 장례일을 점검하셨다.
自爲書訃, 告吳ㆍ杭諸人,
스스로 부고를 편지로 써서 소주와 항주의 여러 사람에게 알렸으니
皆湛軒天涯知己也.
모두 담헌의 하늘가 친구들이다.
담헌공의 평소 지론은 상례에 반함을 반드시 행할 건 없다고 했고
且囑先君檢其終事.
또 선군께 장례일의 시종을 점검하길 위촉하셨다.
이때가 되어 아들인 원에게 알리니
薳亦聞遺旨, 遂贈之而不含,
원은 또한 유지를 듣고 마침내 무덤에 묻기만 하고 반함하진 않았으니
從其志也.
그 뜻을 따른 것이다.
先君誄之曰: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선군이 그에게 조문을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
서로 서쪽 호수에서 만나리니 그대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줄 안다네. |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
입속에 구슬을 머금지 않은 건 부질없이 보리 읊조린 유학자 슬퍼해서지. |
인용
- 반함飯含: 옛날에 염습殮襲(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할 때 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이나 쌀을 물리는 일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쓴 『과정록』에 이런 말이 보인다. “담헌공(홍대용)은 평소 주장하기를, 장례 때 반함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으며, 또한 아버지(연암)에게 자신의 장례를 돌봐 달라고 당부하셨다. 급기야 공께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이 사실을 그 아들 원薳에게 일러 주었다. 원 또한 부친의 유지遺旨를 들은 터라, 부친이 쓰시던 물건들을 무덤에 묻었을 뿐 반함하지는 않았으니 그 뜻에 따른 것이다.” 연암 역시 담헌이 한 것처럼 자신의 장례 때 반함을 하지 말라는 말을 죽기 전에 자식에게 남겼다. [본문으로]
- 고자孤子: 아버지를 잃은 자식을 이르는 말이다. 어머니를 잃은 자식은 ‘애자哀子’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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