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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과정록 1권 - 46. 아내와의 일화, 그리고 어려운 살림을 책임 진 형수님 본문

문집/과정록

과정록 1권 - 46. 아내와의 일화, 그리고 어려운 살림을 책임 진 형수님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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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아내와의 일화, 그리고 어려운 살림을 책임 진 형수님

 

丁未正月初五日甲戌, 遭先妣淑人全州李氏喪, 遺安處士諱輔天. 先妣與先君同年生, 自幼薰陶遺安公敎訓, 已有女士行, 十六歸先君.

章簡公, 位躋亞卿, 而淸貧如布衣時. 家舍狹窄, 無所容庇, 故少時多在遺安翁.

中年以來, 食貧喫苦, 流離遷徙, 殆不堪其憂, 而未嘗皺眉, 如固窮讀書之君子也. 及先君筮仕未半歲, 而先妣下世焉.

嗚呼慟哉! 先君嘗言: “吾少時, 嘗有用餘錢二千, 念淑人衣具缺用, 齎衣襆以遺之. 淑人言: ‘伯嫂中饋常艱乏, 何乃以此入私室乎?’ 吾時甚慚其言, 至今不能忘也.”

伯母性度賢淑, 養育先君. 先妣友愛篤至. 而久經貧困, 晚來病在痰火, 言語之間, 或有不能忍煩者. 先妣輒溫顏左右, 默以待之, 得降辭色然後, 始歸私次執業.

及伯母卒而無育, 吾先兄年甫十許歲, 當入系適嗣. 伯父閔其幼弱曰: “我主其喪矣. 姑待其成長而立之, 未晚也.” 先妣以爲不可, 遂召先兄, 袒括以立之. 會吊者莫不驚服, 以爲此識禮君子之所難也.

嗚呼! 此皆先妣出天之德, 而未獲遐齡, 可勝慟哉! 育吾兄弟姉妹四人, 未嘗見夭慽, 家間嘗稱至德所報. 芝溪公有兒患, 輒請看護曰: “姉氏福手, 可借而撫摩之.” 若有顯效者屢, 人皆異之.

先君友德配美, 每服其至行. 及失中饋, 未幾而又遭長婦氏之喪, 鼎俎無托. 人或勸之卜姓, 而先君漫語應之而已, 終身未嘗有媵侍焉. 知舊之親熟者, 多以此事稱先君.

 

 

 

 

해석

丁未正月初五日甲戌, 遭先妣淑人全州李氏喪,

정미(1787)년 정월 5일 갑술에 우리 어머니 전주 이씨께서 돌아가셨으니,

 

遺安處士諱輔天.

유안처사 이보천의 따님이시다.

 

先妣與先君同年生, 自幼薰陶遺安公敎訓,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은 해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유안공의 가르침에 무르익어

 

已有女士行, 十六歸先君.

이미 여성 선비의 행실이 있었고 16살에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章簡公, 位躋亞卿[각주:1],

그때에 증조할아버지 장간공께서는 정경 다음 가는 벼슬에 오르셨지만

 

而淸貧如布衣時.

청빈함은 벼슬하지 않을 때와 같았다.

 

家舍狹窄, 無所容庇,

집이 협소하고 누추해 어머님이 용납되고 의탁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故少時多在遺安翁.

젊었을 때에 유안옹 곁에 있을 때가 많았다.

 

中年以來, 食貧喫苦, 流離遷徙,

중년 이래로 집이 가난해 괴로움을 겪어야 했고 유리걸식하며 옮겨 다녀

 

殆不堪其憂, 而未嘗皺眉,

거의 근심을 감내할 수 없을 지경인데도 일찍이 눈썹을 찡그리지 않으셨으니,

 

如固窮讀書之君子也.

마치 본래 곤궁하여 독서만 하는 군자인 듯했다.

 

及先君筮仕未半歲, 而先妣下世焉[각주:2].

선군께서 처음 벼슬 나가 반년도 채 안 됐을 때에 어머니께서 하직하셨다.

 

嗚呼慟哉! 先君嘗言:

아 애통하구나! 선군께선 일찍이 말씀하셨다.

 

吾少時, 嘗有用餘錢二千,

내가 어렸을 적에 일찍이 쓰고 남은 돈 2000냥이 있어

 

念淑人衣具缺用, 齎衣襆以遺之.

아내의 옷이 모두 헤진 데 쓸 걸 생각하며 옷을 가져다주었었지.

 

淑人言: ‘伯嫂中饋常艱乏[각주:3],

그러자 네 어미가 말했단다. ‘형님이 살림을 맡아 항상 가난하고 궁핍한데

 

何乃以此入私室乎?’

어찌하여 이 돈을 저에게 주는 것입니까?’

 

吾時甚慚其言, 至今不能忘也.”

나는 그때에 매우 그 말이 부끄러웠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잊을 수가 없구나.”

 

伯母性度賢淑, 養育先君[각주:4].

큰 어머니는 성품이 현숙하여 시동생인 아버님을 키워주셨다.

 

先妣友愛篤至.

어머니와 우애가 독실하고 지극했다.

 

而久經貧困, 晚來病在痰火,

그러나 오래도록 가난함과 곤궁함을 겪은 탓에 만년 이래로는 가래로 인한 열병이 있었고

 

言語之間, 或有不能忍煩者.

말씀하시는 사이에 간혹 괴로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先妣輒溫顏左右, 默以待之,

어머니는 갑자기 온화한 얼굴로 좌우를 살피며 묵묵히 기다리고서

 

得降辭色然後, 始歸私次執業.

말의 기색이 안정된 뒤에야 비로소 어머니 방으로 돌아와 일을 보셨다.

 

及伯母卒而無育, 吾先兄年甫十許歲,

큰 어머니께서 자식이 없이 돌아가셨는데 우리 큰 형의 나이는 10살 정도였기에

 

當入系適嗣[각주:5].

마땅히 입계하여 양자가 되어야 했다.

 

伯父閔其幼弱曰:

큰 아버님께서는 어리고 유약한 형을 위로하며 말씀하셨다.

 

我主其喪矣.

내가 상례에 상주노릇을 하겠다.

 

姑待其成長而立之, 未晚也.”

짐짓 네가 크기를 기다려 양자로 세우더라도 늦지 않는다.”

 

先妣以爲不可, 遂召先兄,

어머니께서는 옳지 않다고 여기시고 마침내 형을 불러

 

袒括以立之[각주:6].

상복을 입히고 세우셨다.

 

會吊者莫不驚服,

조문하러 모인 사람들이 경복하지 않음이 없었고

 

以爲此識禮君子之所難也.

이것은 예를 아는 군자도 어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嗚呼! 此皆先妣出天之德,

! 이것은 모두 어머니께서 하늘이 낸 덕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而未獲遐齡[각주:7], 可勝慟哉!

보통사람 이상으로 오래 살질 못했으니 애통함을 이길 수 있겠는가.

 

育吾兄弟姉妹四人, 未嘗見夭慽,

우리 형제와 자매 4명을 길렀는데 일찍이 요절하는 근심은 없었으니,

 

家間嘗稱至德所報.

집안에선 일찍이 지극한 덕이 갚아준 것이라 칭송하였다.

 

芝溪公有兒患, 輒請看護曰:

지계공께선 아이가 아프면 문득 간호를 요청하며 말씀하셨다.

 

姉氏福手, 可借而撫摩之.”

누님은 약손이니 빌려서 어루만져 주세요.”

 

若有顯效者屢, 人皆異之.

이렇게 해서 효험이 나타난 게 여러 번이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특이하다고 여겼다.

 

先君友德配美, 每服其至行.

선군께선 어머니와 덕으로 벗하고 아름다움으로 짝해 매번 지극한 행실에 감복하셨다.

 

及失中饋, 未幾而又遭長婦氏之喪[각주:8],

어머니를 잃고서 얼마 되지 않아 또한 큰 며느리 이씨의 상을 당했지만,

 

鼎俎無托.

끼니를 의지할 데가 없었다.

 

人或勸之卜姓, 而先君漫語應之而已,

사람들은 혹 새 장가들라 권했지만 선군께선 헛소리 할뿐,

 

終身未嘗有媵侍焉.

종신토록 일찍이 첩을 두진 않으셨다.

 

知舊之親熟者, 多以此事稱先君.

예전부터 알던 친숙한 사람들은 많이들 이 일로 선군을 칭찬했다.

 

 

인용

목차

伯嫂恭人李氏墓誌銘

 

 

 

  1. 아경(亞卿): 정경(正卿) 다음 벼슬. 즉 육조의 참판(參判), 한성부 좌우판윤(左右判尹) 등을 이르는 말. [본문으로]
  2. 下世: 세상을 버린다는 뜻으로, ‘어른의 죽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 [본문으로]
  3. 中饋: 집안 살림 가운데 특히 음식에 관한 일을 맡아 하는 여자 [본문으로]
  4. 연암에게는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셨고, 이 형님 밑으로 두 분의 누님이 계셨다. 연암은 2남 2녀 중 막내였으며, 형님과는 15살 차이가 나고, 형수님과는 13살 차이가 난다. 형수 이씨가 시집 왔을 때 연암은 3살이었다. [본문으로]
  5. 適嗣(적사) : 즉 적자(嫡子). 정실 소생의 아들. [본문으로]
  6. 단괄(袒括) = 단문(袒免): 시마(緦麻) 이하의 상복에서, 두루마기 등 웃옷의 오른쪽 소매를 벗은 채로, 관을 벗고 머리를 묶거나 사각건(四角巾)을 쓰는 상례. [본문으로]
  7. 遐齡: 보통 사람 이상으로 오래 삶 [본문으로]
  8. 연암의 맏아들 종의(宗儀)의 아내로, 한성판관 이원모(李元模)의 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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