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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205. 엄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05. 엄

건방진방랑자 2020. 4. 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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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엄가만석(嚴家萬石)

집안의 형제들 가운데 고위 관원이 많이 배출된 것을 말한다. () 나라 엄연년(嚴延年)의 형제 다섯 사람이 모두 2천 석()의 고위직을 차지하였으므로, 당시에 그 모친을 만석 엄구(萬石嚴嫗)’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90 엄연년전(嚴延年傳)

 

엄경부(嚴敬夫)

경부는 엄성(嚴惺)의 자이다.

 

엄공계(嚴公界)

개원전신기(開元傳信記)임금이 근정루(勤政樓)에 나와 백성에게 주식(酒食)을 나누어주는데, 인파가 마구 몰려들어 금오(金吾)가 제지시키지 못했다. 임금이 경조윤(京兆尹) 엄안지(嚴安之)를 불러 규약을 세우라고 하자 안지가 수판(手板)으로 땅을 그어 한계를 정해 놓고, 이 한계를 범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것을 엄공계라 칭하며 온종일 아무도 범하는 자가 없었다.” 하였다.

 

엄공료여습지친(儼公聊與習之親)

엄공은 당() 나라 때 고승(高僧)인 유엄선사(惟儼禪師)를 말하고 습지(習之)는 역시 그때 유학자(儒學者)인 이고(李翶)를 말하는데, 이 두 사람 사이는 승()과 속()의 차이가 있었지만 유독 친했다 한다. 이고가 일찍이 낭주 자사(郞州刺史)가 되었을 때 약산(藥山)의 유엄 선사를 찾아가서 도대체 무엇이 도()입니까?” 하고 묻자, 유엄 선사가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두레박에 있소.” 하니, 이고가 게()를 지어 몸의 형체를 학의 형체처럼 단련했어라, 천 그루 소나무 아래 두 함의 경일레. 내 와서 도 물으니 아무런 다른 말 없이,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두레박에 있다고만[鍊得身形似鶴形 千株松下兩函經 我來問道無餘話 雲在靑天水在缾].” 하였다.

 

엄광(嚴光)

후한(後漢) 때의 은사로서, 광무제(光武帝)의 소싯적 친구. 자릉은 그의 자이다. 어릴 때 친구인 광무제가 등극한 뒤에 그를 어렵사리 찾아 벼슬을 제수했으나 그는 이를 사양하고 종신토록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면서 낚시질이나 즐기며 지냈었다.

 

엄광대(嚴光臺)

엄광(嚴光)은 동한(東漢) 사람으로, 자는 자릉(子陵). 젊어서 광무제와 친우였으나 광무가 즉위하자 은거하여 부춘산(富春山)에 돌아가 밭 갈며 낚시질하고 살았다. 그 낚시질하던 대()가 엄광대(嚴光臺)이며 칠리탄(七里灘)에 있다.

 

엄광조뢰(嚴光釣瀨)

후한 때의 은사(隱士)인데, 그는 광무황제(光武皇帝)와 어릴 때의 친구 사이였지만 끝내 벼슬에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하여 낚시질이나 하면서 생애를 마치었다.

 

엄군(嚴君)

부친(父親). 살아 계신 자신의 아버지를 말한다. / 인용: 李少婦詞(최경창)

 

엄군평(嚴君平)

() 나라 때의 은사(隱士)이다. ()에 살던 엄군평은 복서(卜筮)를 업으로 삼아 날마다 성도(成都)의 시장에서 가게를 열고 점을 보되, 하루에 자기 하루 생활비인 백전(百錢)만 벌면 즉시 가게문을 닫고 주렴을 내리고서 생도들에게 노자(老子)를 가르쳤다. 한서(漢書)卷七十二

 

엄동설한(嚴冬雪寒)

눈이 오는 몹시 추운 겨울을 말한다.

 

엄동수(嚴桐叟)

호가 동강(桐江)인 엄성(嚴惺)을 가리킨다.

 

엄릉구적(嚴陵舊迹)

자릉(子陵)은 은사로 유명한 엄광(嚴光)의 자. 한 광무(漢光武)가 세 차례나 초빙했어도 끝내 응하지 않고 동강(桐江)에 숨어 낚시질로 낙을 삼았다. 후한서(後漢書)』 『고사전(高士傳)

 

엄릉수항장(嚴陵收骯髒)

숨어 살리라는 고집을 버리고 왕의 부름에 응한다. 엄릉은 자가 자릉(子陵)인 엄광(嚴光). 한 광무(漢光武)가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던 사이였는데, 광무가 즉위하자 변성명을 하고 숨어 나타나지 않다가 광무가 물색 끝에 찾아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하였으나 받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 밭 갈고 고기 낚으며 여생을 마쳤다. 여기서는 자릉이 광무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한 번 만났던 그 사실을 취하여 원용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卷八十三

 

엄목포작(掩目捕雀)

눈을 가리고 참새를 잡으려 한다. ‘일을 성취하려면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엄무(嚴武)

() 나라 사람. 자는 계응(季鷹). 숙종(肅宗) 때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로서 토번(吐蕃)을 격파한 공으로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승진되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짐.

 

엄문(掩門)

문을 닫아걸다.

 

엄상(嚴霜)

찬 서리.

 

엄서(嚴徐)

한 나라 때 제() 나라 엄안(嚴安)과 조() 나라 서악(徐樂)을 합칭한 말인데, 이들이 함께 상서(上書)하여 세무(世務)를 진술한 결과, 천자가 그들을 불러보고는 이르기를 ()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는가? 어찌 이리 늦게야 만났단 말인가[公等皆安在? 何相見之晩也!].”고 했다 한다. 사기(史記)』 「주부언전(主父偃傳)

 

엄승도현석(釅勝倒玄石)

술맛의 진하기가 현석(玄石)이 마셨던 천일주(千日酒)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다.

 

엄안(嚴安)

() 나라 때 사람으로 임금에게 세무(世務)를 상주하여 갑자기 등용되었었다. 한서(漢書)卷六十四

 

엄안(嚴顔)

후한(後漢) 건안(建安) 19(214)에 장비가 파주(巴州)를 공격하여 파주 태수(巴州太守) 엄안을 사로잡은 뒤, 성난 목소리로 대군이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고 감히 항거하였는가.” 하면서 목을 베려고 하였는데, 엄안이 안색을 변치 않고 우리 파주에는 머리 잘리는 장군은 있을지언정 항복하는 장군은 있지 않다. 목을 치려면 칠 것이지 어째서 성을 내는가.”라고 의연하게 대답을 하자, 장비가 장하게 여겨 풀어 주고 빈객으로 대접했던 고사가 전한다. 삼국지(三國志)36

 

엄억(掩抑)

움츠려 든다는 말이다.

 

엄억백통무(掩抑伯通廡)

후한 때의 은사(隱士) 양홍(梁鴻)이 오()에 가서 부호가인 고백통(皐伯通)의 사랑채를 얻어 살면서 남의 집에 품팔이로 생활을 하였던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남의 협실(夾室)에 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卷八十三

 

엄엄(揜揜)

눈이 가리어져 밖이 보이지 않음

 

엄엄(晻晻)

빛이 점점 약해지는 모양, 어두운 모양

 

엄엄(奄奄)

숨이 곧 끊어질 듯한 모양, 생기가 없는 모양, 어두운 모양

 

엄엄(掩掩)

향기가 짙게 풍기는 모양

 

엄여하일(嚴如夏日)

() 나라 대부 조순(趙盾)이 엄하므로, 사람들이 조순은 여름의 해이다. 여름 해는 두렵다.” 하였다.

 

엄이도령(掩耳盜鈴)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기에게 들리지 않으면 남에게도 들리지 않는 줄 아는 어리석은 행동을 말한다. / 유사어: 엄이도종(掩耳盜鐘).

 

엄인(閹人)

환관(宦官).

 

엄자(崦嵫)

태양이 들어가 쉰다는 전설상의 산 이름이다.

 

엄자릉(嚴子陵)

자릉(子陵)은 동한(東漢)의 고사(高士)였던 엄광(嚴光)의 자()이다. 그는 일찍이 광무황제(光武皇帝)인 유수(劉秀)와 함께 유학(遊學)했었는데, 광무가 황제가 되자 그는 변성명을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광무는 백방으로 찾아서 데려다가 대우를 잘하였으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니, 광무는 웃으면서 미치광이 옛 버릇 그대로구나!” 하였다. 한 번은 궁중에서 함께 잠을 자는데 광무의 배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아침에 태사(太史)어젯밤 천상(天象)을 관찰해보니 객성(客星)이 어좌(御座)를 범했습니다.” 하니 광무는 웃으며 내가 옛 친구 엄자릉과 함께 잤다.” 하였다. 그는 끝내 벼슬을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둔하였다. 후한서(後漢書)卷八十三 엄광전(嚴光傳)

 

엄자산(崦嵫山)

엄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으로, 전설에 의하면 이곳으로 해가 져서 들어간다고 한다. ‘만년(晩年) 또는 노년(老年)의 비유로 쓰인다.

 

엄정(嚴桯)

길을 떠날 차비(差備). 또는 기한이 정하여져 있는 여행길이라는 뜻이다.

 

엄조(嚴助)

한 나라 회계(會稽) 오현(吳縣) 사람이다. 무제(武帝) 때 중대부(中大夫)로 있으면서 항상 대신들과 국정을 논의하였으며, 동방삭(東方朔)ㆍ사마상여(司馬相如)ㆍ오구수왕(吾丘壽王)등과 함께 무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모반사건 때 유안과 사이가 좋았다는 이유로 사형 당했다.

 

엄종(嚴終)

엄안(嚴安)과 종군(從軍)이 한 무제(漢武帝) 때에 문학(文學)으로 뽑혀서 조정에 들어갔다.

 

엄준(嚴遵)

() 나라 때의 은사(隱士). 자는 군평(君平). 그는 일찍부터 벼슬을 포기하고 성도(成都)에 은거하면서 복서(卜筮)를 업으로 삼고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한서(漢書)卷七十二

 

엄중굉변(淹中宏辯)

엄중(淹中)은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에 있던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마을 이름인데, () 나라 초기에는 고당생(高堂生)이 의례(儀禮) 10편에 대한 주석을 내는 등 역대로 문사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곧 세속의 잡다한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중적(淹中籍)

엄중(淹中)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의 마을 이름으로 지금의 산동(山東) 곡부(曲阜)에 있는데, 일례(逸禮) 39편이 그 마을에서 출토되었다. 공자의 유풍이 오랫동안 전승되었던 곳으로, 곧 사서 오경(四書五經)등 유가의 서적을 말한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엄체(掩涕)

눈물을 닦다라는 뜻이다.

 

엄친(嚴親)

살아 계신 자신의 아버지를 말한다.

 

엄탄(嚴灘)

후한(後漢)의 엄광(嚴光)이 은거하며 낚시를 즐기던 물가이다. 엄광은 소싯적에 광무제(光武帝)와 동문수학했던 인연으로 광무제 즉위 후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부름을 받았다가 응하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서 밭 갈고 낚시로 소일하며 여생을 마쳤다. 그의 자()가 자릉(子陵)이므로 엄릉뢰(嚴陵瀨)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113고사전(高士傳)

 

엄협률(嚴恊律)

협률(協律)은 관명(官名)인 협률랑(協律郎)을 말하며, 엄무(嚴武)를 말한다는 설이 있다. / 인용: 與韓荊州書(이백)

 

엄화(罨畫)

본디 화려한 채색 그림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산수의 뛰어난 경치를 이른 말이다. 단연총록(丹鉛總錄)畫家有罨畫 雜彩色畫也라 하였다. 오흥통지(吳興統志)에 의하면 절강성(浙江省) 장흥현(長興縣) 서쪽에는 수목(樹木)이 울창하기로 유명한 엄화계(罨畫溪)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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