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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총론 - 4. 그 현실주의적 성과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이조시대 서사시, 총론 - 4. 그 현실주의적 성과

건방진방랑자 2021. 8. 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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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 현실주의적 성과

 

 

서사한시는 조선왕조 사회의 체제적 모순이 심화ㆍ확대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삶의 갈등, 고난에 대결하여 떠오른 얼굴들을 운문적 형상으로 각인한 것이다. 이 자체가 현실주의의 발전으로 산생된 것이거니와 내용 형식의 특징 또한 현실주의적이다.

 

목도이문(目睹耳聞)’의 경험은 서사한시의 창작근거가 되었다. 그에 의해 서술방식이나 서사구조의 형태가 결정되었음을 위에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작중에서 시인이 서술자의 역할을 (시의 문맥에 출현했건 내재해 있건) 담당하는 점을 특히 주목한 바 있다. 시인은 서사시적 상황속으로 몸소 들어간다. 말하자면 현장 체험이다. 거기서 시인은 유민들의 애처로운 호소를 듣기도 하며, 변방 고을에서 벌어진 아전붙이들의 횡포를 보기도 한다. 이 곧 서사시 특유의 현실성ㆍ민중성을 획득한 계기다.

 

그런데 시인=서술주체의 구도에서 시인과 작중 주인공 사이에는 간격이 없지 않다. 시인은 작중 주인공과 놓여진 처지가 아무래도 다르다. 농민의 사정을 이해하려는 진심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이 바로 농민의 위치, ‘과 동등한 신분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작중 주인공=서술 주체의 고백적 서술 방식 역시 농민이 주인공인 경우라도 실은 시인의 대리 진술이다. 요컨대, 서사한시는 의 현실에 즉해서 을 대변하면서도 과의 불가피한 거리로 인해 그 특유의 내용 형식이 고안된 셈이다. 이는 서사한시의 성과이자 한계다.

 

神言此事非我職 영검이 말씀하되 이 일은 내 소관 아니로다.
汝雖百拜請無益 네가 백번 절하고 빌어도 나는 아무 소용없으니
往訴岸上吟詩人 차라리 저 언덕 위에 시인에게나 호소해보라.
採入風謠獻京國 시 한 수 지어 풍요에 들어가면 나라님께 바쳐질 수 있으리!”

 

이건창의 작품 숙광성진 기선중새신어(宿廣城津 記船中賽神語)의 끝맺음 부분이다. 영검은, 사공이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해달라는 소망이야 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가혹한 착취로 아무리 풍어가 든대도 못 살겠으니 부디부디 관의 비리와 불법을 먼저 바로잡아 줍시라는 사공의 기원은 신도 어쩔 도리가 없다. 거기에는 전지전능의 신통력도 통하지 않는다. ‘시인에게나 호소해보라는 것이다. 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시인에게도 돌아간다. 다름 아니고 시를 읊으면 그 시편이 풍요로 엮어져서 정부 당국에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시의 미자(美刺)’ 기능을 상정한 것이다.

 

물론 위의 시적 결구에 내포된 의미는 부정부패의 망국적 사태를 개탄한 나머지 나온 역설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서사시를 쓰게 되는 시인의 임무에 대한 각성을 읽을 수 있다. 이학규 또한 기경기사(己庚紀事를 쓰면서 돌아보건대 나는 죄를 짓고 유배된 몸이라 …… 찬 바람에 쓰르라미ㆍ귀뚜라미와 더불어 풀숲 사이에서 슬피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자못 비장한 말을 덧붙인 바 있다. 답답하고 애달픈 정경을 목도하고 시인의 임무를 포기할 수 없어 시편을 창작해보지만, 그것은 중앙 정부에 보고될 통로가 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수작일 뿐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단계의 시인으로 변신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직은 고전적 시의식을 회복하고 거기에 충실하려는 자세 그것이다. 이건창의 경우 조선왕조의 임종이 눈앞에 박두한 시대였지만, 이 시인은 역시 구체제의 틀속에서 망국적 사태를 해결할 방도를 모색한 셈이다.

 

 

서사한시는 이조시대의 한문학 일반이 그렇듯 사대부 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여항시인의 작품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이 역시 사대부 시인의 작품 내용과 성격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본원적 임무를 자각하고 사회현실을 비판적 안목으로 대함으로써 서사한시는 씌어지고 있었다. 그 작품 세계는 시인의 각성된 의식에 의해 포착되고 세련된 필치에 의해 구조된 것이다. 이는 같은 서사장르로서 야담(野談), 즉 한문 단편의 경우와 흥미로운 대조를 보이는 점이다.

 

1819세기 야담의 기록이 폭넓게 이루어졌던바, 그 속에서 높은 예술성을 성취한 한문단편이 형성되었다. 야담과 서사한시는 견문의 작품화라는 측면에서 서로 근친성이 있다. 다만 야담은 근원 사실이 구연(口演)의 중간 경로를 거쳐서 창작된 것이다. 구연의 단계는 구두 창작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야담의 성립에서 필수적 과정이다. 반면에 서사한시는 구연의 단계를 필수로 하지 않는다. 시인이 근원 사실에 바로 접촉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것이었다(야담과 같은 창작 경로를 거친 서사한시 작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홍신유의 몇 편의 작품은 아주 흥미로운 사례다. 서사한시로서는 희소한 예외적인 것이다). 그에 따라 창작의식이나 작자의 구실 또한 서로 차이점을 보인다. 야담은 자각적 창작의식의 소산이라기보다 다분히 들은 바 이야기를 기록화한 형태다. 작가라기보다 기록자라는 표현이 거기에 적합할 듯싶다. 그럼에도 높은 예술성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었던가. 이 문제에 대해 기왕에 내가 언급한 바 있으므로 인용해본다.

 

 

한문단편은 형성 경로에서 일차적으로 구두 창작을 거쳤다는 데 특수성이 있다. 구두 창작의 주체, 이야기꾼은 생활현실인 여항 시정의 부류들이며, 그 창작 과정이 문자 창작과 달리 현장적ㆍ집단적이다. 이야기꾼의 묘()물태인정(物態人情)에 곡진섬실(曲盡纖悉)’함에 있다고 하였던바, 이야기를 할 때 아무쪼록 듣는 사람들에게 여실한 감을 주어야만 하였다. ‘여실한 감은 궁극적으로 생활 체험과 합치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즉 현실을 호흡하는 많은 사람들의 감각으로 시대의 객관적 진실이 이야기의 진실로 담겨질 수 있었다. 이야기의 진실은 바로 역사적 진실이었던 것이다. 한문단편이 달성한 현실성은 그것을 발생시킨 시대(18세기~19세기 초반) 자체의 활발성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며, 한문단편의 성공은 현실주의의 역사적 승리로 규정지을 수 있다.

-청구야담(靑邱野談) 해제(解題)

 

 

이와 달리 서사한시는 어디까지나 자각적ㆍ의식적인 현실 반영이므로, 시인의 의식과 역량은 작품성과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사한시의 세계는 서사적 상황의 발전의 신국면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는 예민하지 못했다. 이조 후기의 사회에 있어서 체제 모순이 심화하고 그 가운 데서 발생한 역동적ㆍ진취적 움직임들은, 서사한시의 형식에 담겨지기보다는 야담, 한문단편에 다채롭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서사한시의 현실주의적 성과는 한문단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인의 자각적 의식이 오히려 현실을 직접 호흡하는 서민대중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조시대 서사시는 사회모순의 핵심을 파고들어 거기서 고뇌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진면목을 뚜렷하게 그려냈다. 그 시인들은 주체적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자신의 계급적 속성을 넘어서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할 수 있었다. 우리의 근대로 진입하기 이전의 문학사에서 그것이 이룩한 현실주의적 성취는 풍부하고 값진 것이다.

 

 

 

 

인용

목차 / 논문

1.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

2.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

3. 서사시의 표현형식

4. 그 현실주의적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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