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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조시대 서사시, 총론 - 1.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이조시대 서사시, 총론 - 1.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

건방진방랑자 2021. 8. 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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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론: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임형택

 

 

1.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

 

 

나는 성간(成侃, 1427~1456)김시습(金時習, 1435~1493)에서 이건창(李建昌, 1852~1898)황현(黃玹, 1855~1910)까지 장시 104/122()이 총설은 1992년 초판에 붙인 전체의 해설 논문을 전재한 것이다. 작품이 증보되긴 했으나 내용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총설을 다시 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다만 작품의 변수가 총 104편에서 122편으로, 또한 각 부별로도 증가되었기 때문에 수치의 변화를 표시하였다를 뽑아 책을 엮는다. 한시로서 서사성이 담긴 작품을 채취한 것이다. 책 이름을 이조시대 서사시라 한다.

 

우리의 문학사에서 서사한시는, 현실주의의 발전으로 형성된 동시에 현실주의를 풍부하게 한 것이다. 여기 작품들은 우리의 서사문학의 귀중한 성과로, 현실주의 문학의 역사적 근원으로 생각된다.

 

지금 이조시대 서사시로 묶어지는 가운데 많은 작품은 처음 발굴 소개되고 있거니와, 비로소 하나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만큼 그에 대한 의논이 없을 수 없다. 본격적 연구나 이론의 정립은 후일의 과제로 남겨두지만 우선 시론적 견해를 붙이기로 한다.

 

서사시라는 용어는 더러 씌어지고 강조되기도 하였으나 공식적으로 합의된 바 없다. 고사시(故事詩)ㆍ담시(譚詩, 이야기시) 혹은 단형서사시로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나는 그 명칭에 대해 천착하고 싶지 않다. 서사시란 말뜻이 내용에 어긋나지 않거니와, 이왕이면 친숙한 말을 채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 한자로 씌어진 것이기에 구분하자면 서사한시라 이를 것이다.

 

한시는 정감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의식되었던 만큼 서정시가 주류적 성격을 형성해왔다. 원래 중국의 시가 그랬거니와 우리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정지상(鄭知常)대동강(大同江)을 들어본다. 이 시를 거론하는 이유는 국어교과서에까지 실려서 누구나 아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강둑에는 풀빛이 파릇파릇
送君南浦動悲歌 남포서 임 떠나시매 슬픈 노래 퍼지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강물이여 어느 때나 마를거나?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 연년이 푸른 물결에 더하는걸.

 

대동강가에서 석별(惜別)의 아쉬움에 눈물을 짓는 정경이 시적 상황이다. 임을 작별하는 사람은 서술 주체이며 임과 더불어 시적 주인공인 셈이다. 지금 헤어져야 하는 그네들 앞에는 아마도 무한한 사연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시는 그것을 이야기로 엮어 진술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다만 남포서 임 떠나시매 슬픈 노래 퍼지네라고 자신의 심경 안으로 끌어안았다. 이어서 대동강 강물이여 어느 때나 마를거나? / 이별의 눈물 연년이 푸른 물결에 더하는 걸[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로 시상을 반전시켜, 이별의 눈물을 사적인 감상의 차원으로 개별화시키지 않고 있다. 이별의 눈물이 대동강의 수위에 영향을 준다고 할 만큼, 인생의 고해(苦海), 사회의 파란(波瀾)을 질량으로 느끼게 한다.

 

이 시에 담긴 서정성은 자못 심각하면서 보편적ㆍ사회적 의미를 띤 것이다. 같은 대동강의 이별시이지만 서경별곡대동강 넓은 줄 몰라서 배 내어놓느냐? 사공아라는 몸부림보다 정감이 의미심장하게 형상화되고 있다고 보겠다. 요컨대, 사연이 얽힌 정황은 시인의 정서 속에 흡입되어, 고도의 정제된 언어로 농축된 것이다. 이것이 서정시의 특색이다.

 

다음에 김창협(金昌協, 1651~1708)착빙행(鑿氷行)이란 작품을 들어본다.

 

季冬江漢氷始壯 늦겨울 한강 흐르는 물 얼음이 꽁꽁 얼어붙는데
千人萬人出江上 사람들 천이야 만이야 강가로 몰려나온다.
丁丁斧斤亂相斲 땅땅 망치질 도끼질 얼음 짜개는 소리
隱隱下侵馮夷國 저 아래 물귀신 나라까지 우릉우릉 울려서 들리겠구나.
斲出層氷似雪山 짜개어 포개놓은 얼음 설산을 방불케 하나니
積陰凜凜逼人寒 쌓여진 한기 오싹오싹 사람의 뼛골에 시리네
朝朝背負入凌陰 아침마다 얼음짐 등에 지고 빙고 속으로
夜夜椎鑿集江心 저녁마다 두드리고 짜개고 강 가운데 모여들 있다네.
晝短夜長夜未休 해는 짧고 밤은 긴지라 밤에도 일손을 못 놓으니
勞歌相應在中洲 노동요 주고받는 소리 모래톱을 떠나질 않네.
(중략)
滿堂歡樂不知暑 대청마루 넘치는 환락에 더위도 잊을 지경인데
誰言鑿氷此勞苦 얼음 저장하는 괴로움 누가 생각해서 말하랴?
君不見 당신들 보지 못했소?
道傍暍死民 길가에 더위먹어 죽어가는 백성들
多是江中鑿氷人 강에서 얼음 짜개던 사람들 바로 그네들 아닐런가. 農巖集卷之一

 

이 시는 추운 겨울에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고역(苦役)을 테마로 다룬 것이다. 지금 서울의 동빙고동과 서빙고동이란 지명은 그때 채취한 얼음의 저장고가 있던 데서 유래하였다. 위의 시적 화폭에는 수많은 인부들이 나와서 노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시의 후반에서 더운 여름날 시원한 전각에 앉아 얼음의 감각을 즐기는 정경을 제시한다. 노동하는 사람 따로, 노동의 결과를 향유하는 사람 따로의 사회 모순이 두 화폭으로 대조되고 있다. “길가에 더위 먹어 죽어가는 백성들 / 강에서 얼음 짜개던 사람들 바로 그네들 아닐런가[道傍暍死民 多是江中鑿氷人]”라는 끝맺음으로, 부조리의 예리한 각인을 찍고 있다.

 

착빙행(鑿氷行)은 앞의 대동강(大同江)과는 달리 인간의 삶의 정황을 드러내면서 사회 모순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 사회 모순은 비록 현실적이긴 하지만 현실 자체로, 객관적으로 제시된 것이라기보다 시인의 비판적 의식 속에서 도출된 것이다. 그리고 위의 시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인간들을 비록 등장은 시켰지만 하나의 개별화된 인간으로, 구체적으로 포착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꽁꽁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판 위에서 고역하는 모습이 화면에 펼쳐지긴 하는데 누구를 만나서 그 누구의 남다른 사연을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시는 사회시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서정시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에는 신광수(申光洙, 1712~1775)채신행(採薪行)을 보기로 한다. 특별한 작품이라기보다 짧기 때문에 편의상 인용하는 것이다.

 

貧家女奴兩脚赤 가난한 집의 계집종 맨발의 두 다리로
上山採薪多白石 산에 가서 나무를 하려니 차돌멩이 뽀족뽀족
白石傷脚脚見血 차돌에 부딪혀 다리에 피가 흐르는데
木根入地鎌子折 나무뿌리 땅에 박혀 낫이 뎅겅 부러졌다네.
脚傷見血不足苦 다리 다쳐 흐르는 피 괴로워할 겨를이나 있나요.
但恐鎌折主人怒 오직 두려운 건 부러진 낫 주인에게 야단맞을 일이로다.
日暮戴新一束歸 나무 한 단 머리에 이고 해 저물어 돌아오니
三合粟飯不䭜飢 한 덩이 조밥이야 허기진 뱃속 기별도 안 가는데
但見主人怒 주인의 야단 잔뜩 맞고
出門潛啼悲 문밖에 나와서 남몰래 훌쩍인다.
男子怒一時 남자의 성냄은 한때지만
女子怒多端 여자의 성냄은 열 두 때라네.
男子猶可女子難 샌님의 꾸중은 들을 만해도 마님의 노여움 견디기 어려워라.

 

이 시는 가난한 양반댁에서 종노릇을 하는 한 소녀의 삶을 그린 내용이다. 앞의 두 시편에서 살펴본 바와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여기에 있다.

 

첫째는 개별화된 인물의 등장이다. 계집종 그리고 샌님과 마님, 이렇게 세 사람이 시폭(詩幅)에 출연하고 있다. 우리는 주인공 소녀의, 하필 가난한 댁에서 종노릇을 하기 때문에 어린 여자 몸으로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야 하는 특수한 사정을 보며, 또 그녀의 남몰래 훌쩍이는 소리까지 듣는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상전이라도 한번 야단을 치고 마는 샌님과 야단이 끝이 없는 마님의 성격 차이까지 드러난다. 인물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둘째는 사건의 진행이다. 주인공 소녀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다리를 다치고 낫을 부러뜨린다. 작중에서 사건의 발단인데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소녀는 자기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돌볼 새도 없이 부러진 낫을 걱정한다. 과연 허기진 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 앞에 떨어진 것은 주인 내외의 호된 야단이었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문밖에 나와서 훌쩍이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이 되고 있다. 비록 짧은 편폭(篇幅)이지만 거기에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진 것이다.

 

채신행(採薪行)은 이처럼 객관적 배경 속에 특정한 인물이 등장하며, 또 그로 인해 사건이 일어나서 마무리되는 서사구조로 짜여 있다. 시인은 무슨 뜻으로 이 시를 썼을까? 문면(文面)에 표명된 바는 없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누구나 주인공 소녀의 고달픈 처지에 애련의 감정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바로 시인이 의도한 주체사상이다. 이처럼 주체사상이 주관화=서정화되지 않고 현실을 제시하는 가운데 암시되어 있다.

 

채신행(採薪行)에 견주어 앞의 착빙행(鑿氷行)은 현실 비판의 강도가 오히려 높고 사회성의 표출이 두드러진 편이다. 다만, 채신행(採薪行)에서는 구체적 형상을 그려 보여 느낄 수 있게 된다. 채신행(採薪行)의 특징적 성격은 지금 서사시로 파악하고 있는 그것이다.

 

이학규(李學逵, 1770~1835)영남악부(嶺南樂府)서문에서 그 본사를 서술해서 그 진정을 드러낸다[叙其本事 達其眞情]”고 밝힌 바 있다. 어떤 사건을 서술함으로써 거기 담긴 진실을 표출한다는 뜻이다. 서사시의 특징을 요약한 말이다.

 

여기서 서사시란 희랍적 서사시(Epic)는 아니다. 영웅 서사시라기보다 차라리 민중 서사시에 속할 것이요, 표현 수법 또한 낭만주의적이라기보다는 현실주의적이다(물론 낭만적 색채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고대적 문학의 전형은 조선왕조 시대에서 형성될 단계도 아니겠는데, 이 서사한시는 요컨대 조선적인 것이다.

 

대동강(大同江) 착빙행(鑿氷行) 채신행(採薪行)
서정성을 드러냄 삶의 정황 드러냄 개별화된 인물의 등장
고도의 정제된 언어로 표현 구체적인 사연은 등장하지 않음 사건의 진행
  현실의 비판 강도 높음, 사회성 표출이 두드러짐 구체적 형상을 그려 보여 느낄 수 있음

 

작자 미상, 관서명구첩(關西名區帖)중 평양 연관정 부분, 18세기, 41.7X59.3cm, 개인 소장

뒤쪽에 보이는 것이 부벽루와 모란봉이다. 모란봉 꼭대기에 보이는 것은 최승대(最勝臺) 

 

 

 

인용

목차 / 논문

1.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

2.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

3. 서사시의 표현형식

4. 그 현실주의적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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