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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총론 - 3. 서사시의 표현형식 본문

한시놀이터/서사한시

이조시대 서사시, 총론 - 3. 서사시의 표현형식

건방진방랑자 2021. 8. 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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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사시의 표현형식

 

 

견문의 구성 표출의 방식

 

한시 중에는 서사시적 부류로 영사시(詠史詩) 및 우언시(寓言詩)가 또 따로 있다. 민족의 역사에서 취재한 영사악부가 이조 후기 문학의 특이한 현상의 하나로 발전하였으며, 우화시는 시인에 따라 선호하는 형식으로 심심찮게 창작되었다. 서술 내용이 영사시의 경우는 당대의 일이 아니고 옛날 옛적이요, 우언시의 경우는 실제 사실이 아니고 가공가탁(架空假托)이라는 점에서 여기서 취급하는 서사시와 각기 성격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사실적 서사시는 당대의 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어떤 사건을 운문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것이 그 제일의 특성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작품들을 보자.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를 비롯하여 애절양(哀絶陽), 삼리(三吏: 용산리龍山吏, 파지리波池吏, 해남리海南吏) 연작 등 시편들은 모두 자신이 강진 유배지에서 직접 목도이문(目睹耳聞)한 사건을 소재로 잡아서 쓴 것이다. 전간기사(田間紀事)의 서에서, 흉년이 든 해에 때때로 눈에 뜨인 바들을 기록하여 엮어서 시가를 만드니[時記所見, 綴爲詩歌]”라고 창작 경위를 밝힌 대로다.

 

서사시에는 비록 드물기는 하지만 과거사를 내용으로 다룬 작품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살펴보면 현재와 어떤 관련의 고리가 있어 창작된 것이다. 예컨대 송대장군가(宋大將軍歌)는 고려 때의 사적이지만 시인이 현재에서 채취한 이야기며, 숭정궁인굴씨비파가(崇禎宮人屈氏琵琶歌)는 지나간 일화지만 문제의 비파를 당시 발굴한 사건이 창작의 계기가 되었고, 운암파왜도가(雲巖破倭圖歌)는 또한 운암파왜도(雲巖破倭圖)라는 그림을 현재 보고서 그 시를 쓴 것이다. 어디까지나 실사에 의거해서 명제한다[因事命題]”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요컨대, 여기 서사시들은 목도이문(目睹耳聞)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그 표현 형식상의 문제는 견문을 여하히 구성ㆍ표출해내느냐는 데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사와 시인을 매개하는 저마다의 과정은 인간 현실이 복잡다단한 만큼 그 사이도 간단할 수 없다. 또한 시인의 분방한 필치는 개성을 찾고 변화를 부리게 마련이다. 각 편의 정치한 분석과 전체의 이론적 정리를 요하는, 실로 만만찮지만 흥미로운 과제가 앞에 제기되어 있다. 우선 서술의 시점과 구성법 및 형상화의 문제에 견해의 일단이나마 언급하고자 한다.

 

 

(1) 시점과 서술 방식

 

시점 문제는 대상을 주관적 정감 속에 용해(溶解)한 형식, 서정시에 있어서는 별로 고려할 까닭이 없다. 당초 소설에서 도출된 이론이다. 그런데 서사시에서 또한 인물과 사건을 조직하다 보면 저절로 시점의 문제가 개입이 된다. 물론 소설의 시점 이론을 이쪽에 비추어볼 수 있겠는데 소설에서보다 따지기 어렵고 모호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서사시에 있어서 시점이란 서술 주체를 누구로 잡느냐는 문제다. 위에서 거론했던 송순의 문개가(聞丐歌)김시습기농부어(記農夫語)그리고 이희보(李希輔, 1473~1548)전옹가(田翁歌)를 사례로 들어 비교해보자.

 

문개가(聞丐歌)는 작중에 가 문면에 출현해서 주인공 노인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엮어가고 있다. 거지 노인이 주인공인데 이 노인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주체는 즉 시인이다. 반면에 기농부어(記農夫語)에서는 작중의 주인공 농부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직접 들려주는 방식이다. 주인공과 서술 주체가 일치하고 있다. 다른 한편 전옹가(田翁歌)에 있어서는 서쪽 동네 할아버지 밤중에 잠 못 이루고 / 기러기 소리에 일어나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구나[西隣老翁夜不寐, 聞雁起坐中夜泣]”라고 서쪽 동네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서술 주체는 이 할아버지가 아니다. 객관적 시점인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시인이 문맥의 이면에 내재되어 있다. 서사시의 서술 시점은 결국 이 세 가지 형태로 구별되는 것 같다.

 

1: 시인과 주인공의 대화적 서술 방식

 

시인이 서술 주체로 표출되는 점이 특징이다. 김성일의 모별자(母別子)나 허균의 노객부원(老客婦怨), 권헌의 시노비(寺奴婢)등등 서사시 작품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취했던 방식이다. 모별자(母別子)를 보면 서사적 장면, 즉 모자가 이별하는 현장에 시인이 마침 임석하여 직접 목격하고 주인공과 말을 나누게 된다. 목도 이문의 과정이 작중에 재현된 셈이다. 이는 르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보겠다. 그리고 누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작품화하는 경우 이형보(李馨溥, 1782~?)조령박호행(鳥嶺搏虎行)금리가(擒螭歌)처럼 시인은 서술자로 남아 있고 시적 화자로 이야기꾼을 내세우기도 한다.

 

2: 주인공의 고백적 서술의 방법

 

작중 주인공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점이 제1형과 다르다. 주인공 스스로 술회하는 방식이므로, 억울하고 애달픈 사연을 표현하는 데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권헌의 여소미행(女掃米行)이나 백광훈용강사(龍江詞), 신국빈의 오뇌곡(懊惱曲)등의 작품에서 보는 바다. 이 수법을 말하자면 대리 진술이므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주인공의 소리로 내는 경우도 허다히 있다.

 

3: 객관적 서술의 방식

 

시인이 서술자로 문면 상에 나서지 않으므로 객관적 서술의 방식을 띠게 된다. 그러나 시인이 서술의 주체로 내재해 있으니 객관과 주관의 사이를 어렵잖게 넘나들 수 있다. 한 작품 내에서도 객관적 시점을 유지하다가 주관적 정감에 견인될 수 있다. 그리고 제재에 따라서도 취하는 방향이 달라지니 신광수의 채신행(採薪行)보다 객관적인 반면, 최경창의 이소부사(李少婦詞)에서는 애정 갈등을 다루어 주정적 색채가 강화되었다. 조석윤의 고객행(賈客行)이나 김만중의 단천절부시(端川節婦詩)에서처럼 제재에 대한 체험이 간접적일 경우는 대개 이 수법을 구사하게 되는 것 같다.

 

이상의 시점에 따른 서술의 세 가지 정식은 그야말로 도식적 파악에 지나지 못한 것이다. 작품의 각각에 들어가면 그대로 들어맞지 않는 면도 간혹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변이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을 들어둔다.

 

하나는 서술의 주체를 파악하기 모호한 경우다. 가령 성간의 노인행(老人行)은 주인공의 고백적 서술 형태를 취한 작품인데 대화와 지문의 구분이 불분명한 대목이 있다. 그리고 정약용이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의 결말 부분을 보면 그 말이 서사적 무대에 둘러섰던 청중들의 소리인 듯싶은데 시인의 진술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이때 모호성은 청중의 소리이자 시인의 생각으로 들리도록 하려는 계산된 의도로 여겨진다.

 

다른 하나는 서술 시점이 이동 전환되는 경우다. 다시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를 보자. 이 작품은 처음에는 시인이 시적 화자로 내재된 객관적 서술의 방식으로 시작된다. 서사적 무대 위에서 나이 지금 몇인고? 무슨 일에 잡혀가게 되었는가?”라고 말을 물은 것은 시인이 아닌가 심증은 가지만 또한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이 다음부터 슬그머니 서술 주체는 작중 주인공의 어머니로 바뀐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 앞에 언급했듯 청중의 소리를 끌어들여 끝맺음을 한다. 그리고 애절양(哀絶陽)이나 승발송행(僧拔松行)같은 비교적 단형의 작품에서도 또한 객관적 서술로 진행하다가 후반에 가서 시인이 개입하거나 등장인물과 시인이 대화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2) 서사 구성의 방식

 

서사시라면 아무래도 서사가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인물의 사건을 어떻게 조직해내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서사 구성의 방식은 시점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음이 물론이다.

 

앞에서 우리는 시점과 관련하여 시인과 주인공의 대화적 서술 방식을 이조시대 서사시가 취했던 일반적 형태로 파악하였다. 그것은 이조시대 서사시에서 정립된 특이한 방식이다. 시인이 혹은 어디에 있다가 혹은 어디를 가다가 어떤 상황에 접해서 보고 들은 바 사실을 작품화하게 된다. 서사시가 씌어지는 전형적 정황, 다시 말하면 서사시의 창작과정의 정식인 셈이다.

 

이 경우 시인이 서사적 현장에 접근하는 부분은 작품의 서두를 이루게 되며, 시인이 현장의 인물로부터 전후의 사연을 듣는 내용은 작품의 본장을 구성한다. 그리고 기막히고 딱하고 애절한 사연의 인생을 보고 들을 때 생각과 느낌이 없을 수 없겠는데, 시인의 정회로 자연스럽게 끝맺음을 하게 된다. 이러한 3부 구성법이 서사시의 전형적 형태로 두루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가령 모별자(母別子)처럼 서사적 화폭이 먼저 극적으로 제시된 다음, 시인이 그 현장에서 말을 건네고 작중 인물의 답변이 나와서 전체가 4부로 구성되든가 혹은 5부로 확장되는 수도 더러 있다. 반대로 애절양(哀絶陽)처럼 전반부의 사건 구조와 후반부의 정회(情懷) 구조로 양분되는 수도 있다. 이들 또한 정형인 3부 구성의 변형태로 간주해도 좋을 듯싶다.

 

서사 구성에서 시간ㆍ공간의 처리 문제는 응당 함께 검토해보아야 할 안건이다. 사건의 순차적 진행에 시공이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이 순리이니 서사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서사시에서는 그런 순차적 구성을 쓴 작품은 오히려 찾아보기 드문 편이다. 하나의 서사적 화폭 속에 시공이 모아지는 구성법을 으레 채택하고 있다. 과거의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한 화면 속으로 축약되는 방식이다. 단막극과도 같은 것이다. 시공을 축약한 극화의 수법은 서사의 내용을 보다 밀도 높게 선명하게 제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수법은 원래 서사시가 목도이문(目睹耳聞)의 결과물이라는 사실과도 관련이 깊다. 즉 전형적인 3부 구성법을 취한 경우 서사는 하나의 장면에서 시작하여 결말이 나기 마련이다. 3부 구성법은 하나의 서사 무대에 시공을 집약하는 방식으로 귀착된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서 개발된 수법이 여러 작품에 두루 전용이 되었다고 본다.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라든지 이건창전가추석(田家秋夕)숙광성진 기선중새신어(宿廣城津 記船中賽神語)같은 작품에서 특히 극적 장면 구성으로 빼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서사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로만 일관되는 것은 아니다. 서사를 위주로 하면서 거기에 서정이 스며 있을 뿐 아니라, 간혹 논설이 끼어들기도 한다. 서사적 완결을 보인 작품으로부터 서정적 색채가 농후한 작품까지 적잖은 편자를 드러낸다. 앞서 언급했던바 시인이 서술주체로 출현한 상태건 내재적 상태건 진행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으로부터 주관으로 쉽게 왔다 갈 수 있다. 서사 조직에 정회(情懷) 조직이 자연스럽게 접합될 수 있다. 서사적 진행에 어떻게 정회의 요소를 배합하느냐? 이는 작품의 예술적 성취에 하나의 관건이 되는 부분이다.

 

 

(3) 형상화의 특징

 

새삼스런 물음 같지만 하필 서사시를 쓴 이유는 어디 있었을까? 그것은 당대의 실사를 포착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사실에 대한 인지, 전달의 기능을 중시한다면 굳이 시 장르를 선택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인식의 기능으로 치면 산문 쪽이 훨씬 적합한 형식이다. 그리고 서사의 디테일을 따진다면 서사시는 소설 장르에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서사시 중에 같은 내용이 산문 형식으로 씌어진 사례가 더러 있다. 홍성민의 매어옹행(賣魚翁行)을 짓고 또 산문으로 매어옹행답(賣魚翁行答)을 썼으며, 정약용 또한 천용자가(天慵子歌)와 함께 장천용전(張天慵傳)을 남겼다. 한 작가가 동일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와 산문의 상이한 형식으로 표출한 경우다. 이건창한구편(韓狗篇)은 자기 동생이 지은 한구문(韓狗文)을 보고서 지은 것이다. 그리고 이광정의 향랑요(薌娘謠)와 최성대의 산유화녀가(山有花女歌)는 유명한 향랑고사에서 같이 취재한 작품이다. 이광정 자신이 따로 전 장르로 임열부향랑전(林烈婦薌娘傳)을 짓기도 했거니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또 거듭해서 그 이야기를 시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허격(許格, 1607~1690)일환가(一環歌)는 바로 앞에 붙인 서문에서 이미 사실의 전말을 기록해두고 있다. 시는 사실 인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은 여기서 단적으로 증명된다. 이건창은 한구편(韓狗篇)에서 이르기를 사가는 기술을 중시하는데 / 새기고 기리는 일 시인에게 달렸노라[史家重紀述, 銘頌在詩人]”고 역사가와 시인의 임무를 변별하고 있다. 사실의 전달, 산문적 기술은 원래 역사가(산문가로 보아도 좋다)의 영역이다. 반면 시인의 고유한 임무는 운문적 명송(銘頌)’, 새기고 기리는 일로 규정한다.

 

季弟從西來 示我韓狗文 막내 아우 서도(西道)에서 돌아와 나에게 한구문을 보여준다.
讀過再三歎 此事誠罕聞 읽어가다 두 번 세 번 감탄하니 참으로 듣기 희한한 일이로세.

 

이처럼 한씨집 개의 이야기를 희한하고 기특하게 여긴 나머지, 시인의 임무인 새기고 기리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어 이 한구편(韓狗篇)을 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예찬해서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사실의 구체적 서술이 있어야 실감도 주고 감명도 주게 될 터이다. 한구편(韓狗篇은 바로 이 점을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작품의 제23부는 서사 조직의 부분인바, 한씨집 개의 이야기를 자상한 곡절까지 곁들여 들려주어 인정에 깊이 와 닿고 호소력이 크다.

 

정약용은 황해도의 곡산부사로 있을 시절에 장천용이란 기인형의 인물을 만나보고 비상히 매력을 느껴 쓴 것이 문제의 천용자가(天慵子歌)장천용전(張天慵傳)이다. 이 두 작품을 읽어보면 동일한 대상을 그려냈음에도 내용 특색이 같지 않음을 느낀다. 장천용전(張天慵傳)에서는 그를 처음 대면하는 경위가 상세히 언급된 반면 그의 첫 인상은 간단히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천용자가(天慵子歌)의 그 장면을 보면 이러하다.

 

天慵子來叩闑 천용자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
大聲叫我與官逢 싸도 좀 만나자고 큰소리로 외쳐댄다.
直躡曾階入重閤 돌계단 뛰어올라 중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赤脚不襪如野農 맨발에 붉은 정강이 들에서 일하다 온 농부 꼴이더라.
不拜不揖箕踞笑 읍도 절도 하지 않고 두 다리 뻗고 앉아
但道乞酒語重重 거듭거듭 하는 말이란 술 달라는 소리뿐

 

이처럼 그를 대면하게 된 사연은 일체 생략해버리고 대뜸 천용자 찾아와서 문 두드려로부터 그가 등장하는 모습과 행동을 묘사해서 인상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작품의 전반부에서도 주인공의 성격이나 그가 추구하는 예술 세계를 드러내는데 역시 음조와 색채를 강렬하게 때로 과장적 필치까지 구사한다. 그 인물의 형상을 각인하는 데 가장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시 본연의 새기고 기리는 일에 충실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명송(銘頌)’이란 개념에 포괄될 작품은 실상 그다지 많지 않다. 서사시의 내용은 오히려 분노하고 슬퍼하거나 지탄하고 징험을 삼아야 할 그런 것들이 다수로 생각된다. 이에는 풍자의 개념이 적용되는 것 같다. 원래 시는 미자(美刺)’의 기능으로 존재 의미를 가졌었다. 이 고전적 미자의 개념에 비추어 명송()’의 범주에 속한다면 풍자는 곧 ()’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서사시를 쓴 동기는 명송과 풍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풍자와 명송은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시적 기능의 양면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명송이건 풍자건 각기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형상의 각인에 치력(致力)하는 것은 서사시 본연의 특성이다. 허격이 쓴 일환가(一環歌)는 권력의 주변에서 자행된 농간을 고발한 내용이다. 양민의 여자를 강탈하고 이 범행을 무마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부려 법도를 문란케 하는 사건의 경과는 앞에 붙인 산문적 기술로 다 밝혀져 있다. 운문적 서술에서는 서사를 기조로 삼고 있으나 그 서사 문맥 속에 풍자적 기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남의 귀여운 딸을 빼앗는 것이 사건의 핵심인데, 대감께 바치기 위한 내막이었음이 운문적 서술에서 비로소 폭로된다. 산문의 정태적 기록보다 운문의 율동적인 어조에 의해서보다 충격적이 되고 경종이 울려지게 됨은 물론이다.

 

형상화는 서사시에서 고유한 수법은 아니다. 다만 모순이 심화하고 어려움이 가중되고 변전하는 현실 속에서 고통을 겪는 민중의 삶과 고상한 기품을 세운 실천의 모습, 이런 현상들을 보고도 못 본 체한다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거니와, 인지하는 것만으로 그만두어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사태를 구체적으로 이해시키자면 서사가 필요하며 나아가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데는 형상의 각인이 효과적이다. 때문에 서사시는 형상화에 특색이 있게 되는 것이다.

 

  풍자(諷刺) 명송(銘頌)
공통점 효과를 높이기 위해 형상의 각인에 치력함.
차이점

 

 

 

 

인용

목차 / 논문

1.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

2.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

3. 서사시의 표현형식

4. 그 현실주의적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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