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으로 돌아가는 이원을 보내며 쓰다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
한퇴지(韓退之)
解說. 이원은 은거한 사람이 아닌 사치한 사람?
迂齋云: “一節, 是形容得意人; 一節, 是形容閑居人; 一節, 是形容奔走伺候人. 終篇, 全擧李愿說話; 自說, 只數語, 其實, 非李愿言, 此又別是一格.”
○ 東坡云: “唐三百年, 無文章, 惟韓公送李愿序一篇.”
愚謂, 此好事者, 因歐陽公論「歸去來」之語而爲是說, 託之坡公耳, 此恐非坡公之言也. 韓公有送李愿序, 又有送李愿歸盤谷一詩, 亦甚佳.
學者只讀韓文, 夫必不以李愿爲一隱士也. 殊不知愿乃西平王李晟之子, 愬之兄, 起家於太子賓客上柱國, 三爲節度使. 邇聲色, 尙侈靡, 激李臣則之變, 家死於兵, 卒以荒侈敗, 未嘗能踐韓公之言也.
李洪『芸庵類藁』, 言愿博徒之雄. 然則愿初非隱士, 不足以當此序也. 觀韓公終篇, 只述愿所自言, 亦可見矣.
此序, 作於貞元十七年, 公時年三十四.
해석
迂齋云: “一節, 是形容得意人;
우재가 말했다. “한 문단은 득의한 사람을 묘사했고,
一節, 是形容閑居人;
한 문단은 한가하게 은거하는 사람을 묘사했으며
一節, 是形容奔走伺候人.
한 문단은 분주하게 시중드는 사람을 묘사했다.
終篇, 全擧李愿說話;
마지막엔 온전히 이원의 말만을 열거했고
自說, 只數語,
자신의 말은 다만 몇 마디뿐이지만,
其實, 非李愿言,
실제론 이원의 말이 아니니
此又別是一格.”
이 또한 특이한 하나의 격식인 것이다.”
○ 東坡云: “唐三百年,
소식이 말했다. “당나라 300년 동안 문장이 없었는데
無文章, 惟韓公送李愿序一篇.”
오직 한유가 이원을 전송한 글 한 편만이 있을 뿐이다.”
愚謂, 此好事者,
내가 생각하기로 이것은 일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因歐陽公論「歸去來」之語而爲是說,
구양수가 「귀거래사」를 논한 말(兩晉, 無文章, 幸獨有此篇耳)로 이 말을 지어
託之坡公耳,
소식에게 붙인 것뿐으로
此恐非坡公之言也.
이것은 아마도 소식의 말이 아닌 듯하다.
韓公有送李愿序,
한유가 이곡을 전송한 글이 있고
又有送李愿歸盤谷一詩, 亦甚佳.
또한 반곡으로 돌아가는 이곡을 전송한 시가 있으니 또한 매우 아름답다.
學者只讀韓文,
배우는 사람이 다만 한유의 글만을 읽는다면
夫必不以李愿爲一隱士也.
반드시 이원이 은거한 선비라 여기지 않을 수 없으리라.
殊不知愿乃西平王李晟之子, 愬之兄,
그러나 특히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원은 서평왕 이성의 아들이자 이소의 형으로,
起家於太子賓客上柱國,
태자빈객관 상주국이란 관직으로 시작하여
三爲節度使.
세 번 절도사가 되었다.
邇聲色, 尙侈靡,
그러나 명성과 여색을 가까이 했고 사치와 화려한 걸 숭상하였으며
激李臣則之變, 家死於兵,
이신칙의 변란을 일으키도록 하였다가 집에서 병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卒以荒侈敗, 未嘗能踐韓公之言也.
그래서 끝내 황망함과 사치로 패하게 됨으로 일찍이 한유의 말을 실천하질 못했었다.
李洪『芸庵類藁』, 言愿博徒之雄.
이홍은 『운암류고』에서 “이원은 도박꾼 중 걸출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然則愿初非隱士,
그렇다면 이원은 애초부터 은사가 아니었으니
不足以當此序也.
이 글에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觀韓公終篇, 只述愿所自言,
한유가 끝부분에서 다만 이원이 스스로 말한 것으로 기술한 걸 보면
亦可見矣.
또한 알 수 있다.
此序, 作於貞元十七年,
이 글은 정원 17년에 지어진 것으로
公時年三十四.
한유의 나이는 34살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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