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람을 보려거든 그가 어울리는 사람을 보라
萬章問曰: “或謂孔子於衛, 主癰疽, 於齊, 主侍人瘠環, 有諸乎?”
癰, 於容反. 疽, 七余反. 好, 去聲.
○ 主, 謂舍於其家, 以之爲主人也. 癰疽, 瘍醫也. 侍人, 奄人也. 瘠, 姓. 環, 名. 皆時君所近狎之人也.
孟子曰: “否, 不然也. 好事者爲之也.
好事, 謂喜造言生事之人也.
於衛, 主顔讎由. 彌子之妻與子路之妻, 兄弟也. 彌子謂子路曰: ‘孔子主我, 衛卿可得也.’ 子路以告. 孔子曰: ‘有命.’ 孔子進以禮, 退以義, 得之不得曰 有命 . 而主癰疽與侍人瘠環, 是無義無命也.
讎, 如字, 又音犨.
○ 顔讎由, 衛之賢大夫也, 『史記』作顔濁鄒. 彌子, 衛靈公幸臣彌子瑕也.
徐氏曰: “禮主於辭遜, 故進以禮; 義主於制斷, 故退以義. 難進而易退者也, 在我者有禮義而已, 得之不得則有命存焉.”
孔子不悅於魯ㆍ衛, 遭宋桓司馬, 將要而殺之, 微服而過宋. 是時孔子當阨, 主司城貞子, 爲陳侯周臣.
要, 平聲.
○ 不悅, 不樂居其國也. 桓司馬, 宋大夫向魋也. 司城貞子, 亦宋大夫之賢者也. 陳侯, 名周.
按『史記』: “孔子爲魯司寇, 齊人饋女樂以閒之, 孔子遂行. 適衛月餘, 去衛適宋. 司馬魋欲殺孔子, 孔子去至陳, 主於司城貞子.”
孟子言孔子雖當阨難, 當猶擇所主, 況在齊ㆍ衛無事之時, 豈有主癰疽侍人之事乎?
吾聞觀近臣, 以其所爲主; 觀遠臣, 以其所主. 若孔子主癰疽與侍人瘠環, 何以爲孔子?”
近臣, 在朝之臣. 遠臣, 遠方來仕者. 君子小人, 各從其類, 故觀其所爲主, 與其所主者, 而其人可知.
해석
萬章問曰: “或謂孔子於衛, 主癰疽, 於齊, 主侍人瘠環, 有諸乎?”
만장이 “어떤 사람들이 말하길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옹저(癰疽)를 주인으로 모셨고 제나라에서 내시인 척환(瘠環)을 주인으로 모셨다’라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여쭈었다.
癰, 於容反. 疽, 七余反. 好, 去聲.
○ 主, 謂舍於其家, 以之爲主人也.
주(主)는 그 집에서 머물러 그로써 주인을 삼는 것이다【‘옛날에는 외지에 가게 되면 누구 집에 머무느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공자와 같은 선비가 환관이나 종기의사 집에 머물러 그 커넥션으로 위나라 군주에게 접근하려 했다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맹자, 사람의 길』, 하, 550쪽】.
癰疽, 瘍醫也. 侍人, 奄人也.
옹저는 종양을 치료하는 의사다. 시인(侍人)이란 환관이다.
瘠, 姓. 環, 名.
척(瘠)은 성이고 환(環)은 이름이다.
皆時君所近狎之人也.
모두 당시 임금이 가까이 둔 사람들이다.
孟子曰: “否, 不然也. 好事者爲之也.
맹자께서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일 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것이다.
好事, 謂喜造言生事之人也.
호사(好事)는 말을 만들어내고 일을 내길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於衛, 主顔讎由. 彌子之妻與子路之妻, 兄弟也. 彌子謂子路曰: ‘孔子主我, 衛卿可得也.’ 子路以告. 孔子曰: ‘有命.’ 孔子進以禮, 退以義, 得之不得曰 有命 . 而主癰疽與侍人瘠環, 是無義無命也.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안수유(顔讎由)를 주인으로 모셨는데 미자하(彌子瑕)의 아내와 자로의 아내는 자매지간이었다. 미자하가 자로에게 ‘공자께서 나를 주인으로 삼으면 위나라의 경(卿)을 얻을 수 있네.’라고 하니, 자로는 이 이야기를 공자께 알려드렸다. 그러자 공자께서 ‘천명(天命)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 공자께서는 나아가길 예(禮)로써 하고 물러나길 의(義)로써 하여 벼슬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천명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옹저와 환관인 척환을 주인으로 모셨다고 한다면 이것은 의(義)도 없는 것이고 천명(天命)도 없는 것이다.
讎, 如字, 又音犨.
○ 顔讎由, 衛之賢大夫也,
안수유(顔讎由)는 위나라의 어진 대부이니,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는 ‘안탁추’로 나와 있다.
彌子, 衛靈公幸臣彌子瑕也.
미자는 위령공이 총애하는 신하인 미자하다.
徐氏曰: “禮主於辭遜, 故進以禮;
서씨가 말했다. “예(禮)는 사양하고 공손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예(禮)로 나가고,
義主於制斷,
의(義)는 결단과 제어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故退以義. 難進而易退者也,
의(義)로 물러나니 나가기는 어렵고 물러나긴 쉬운 것이다.
在我者有禮義而已,
나에게 있는 것은 예의(禮義)일 뿐이고,
得之不得則有命存焉.”
얻고 얻지 못함은 천명(天命)이 있음에 있는 것이다.”
孔子不悅於魯ㆍ衛, 遭宋桓司馬, 將要而殺之, 微服而過宋. 是時孔子當阨, 主司城貞子, 爲陳侯周臣.
공자께서 노나라와 위나라에 머물기를 즐거워하지 않으셔서 송나라로 갔는데 송나라 환사마(桓司馬)가 장차 길을 막고 공자를 죽이려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 수수한 옷차림으로 송나라를 지나가셨다. 이때에 공자께서 곤액을 당하셔서 진나라 제후인 주(周) 나라의 신하인 사성정자(司城貞子)를 주인으로 모셨다.
要, 平聲.
○ 不悅, 不樂居其國也.
불열(不悅)은 그 나라에 머물기를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다.
桓司馬, 宋大夫向魋也.
환사마(桓司馬)는 송나라 대부인 상퇴다.
司城貞子, 亦宋大夫之賢者也.
사성정자(司城貞子)는 또한 송나라 대부로 어진 사람이다.
陳侯, 名周.
진후(陳侯)의 이름은 주(周)다.
按『史記』: “孔子爲魯司寇,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를 살펴보면 ‘공자가 대사구가 되니
齊人饋女樂以閒之, 孔子遂行.
제나라 사람이 여인과 음악을 보내 이간질하자 공자는 마침내 떠났다.
適衛月餘, 去衛適宋.
위나라로 가서 한 달여쯤 있었고 위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갔다.
司馬魋欲殺孔子,
사마환퇴가 공자를 죽이려 하였기에
孔子去至陳, 主於司城貞子.”
공자는 떠나 진나라에 도착하여 사성정자를 모셨다.’라고 쓰여 있다.
孟子言孔子雖當阨難, 當猶擇所主,
맹자는 공자께서 비록 환란을 당하였으나 주인 삼는 것엔 가리시었는데
況在齊ㆍ衛無事之時,
하물며 제나라와 위나라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豈有主癰疽侍人之事乎?
어찌 옹저와 내시를 주인으로 모시는 일이 있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吾聞觀近臣, 以其所爲主; 觀遠臣, 以其所主. 若孔子主癰疽與侍人瘠環, 何以爲孔子?”
내가 들으니 ‘가까운 신하를 평가하되 그가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떤가로 하고, 먼 신하를 평가하되 그가 머무는 집의 주인이 어떤가’로 하니, 만약 공자께서 옹저와 환관인 척환을 주인으로 모셨다면, 어찌 공자라 할 수 있겠는가?”
近臣, 在朝之臣.
근신(近臣)은 조정에 있는 신하이다.
遠臣, 遠方來仕者.
원신(遠臣)은 먼 지방에서 와서 벼슬하는 사람이다.
君子小人, 各從其類,
군자와 소인이 각각 그 부류를 따르기 때문에
故觀其所爲主, 與其所主者,
주인이 되는 것과 주인을 삼는 것을 보면
而其人可知.
그 사람을 알 만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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