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엔 허경(虛景)과 한사(閒事)가 담긴다
여조성경(與趙成卿)
김창협(金昌協)
再昨日黑, 病昏走筆作報書, 不省其爲何等語. 伏想高明讀之, 必以爲夢囈語矣, 愧悚愧悚.
高明之論家弟詩曰: “擬議未化而思偏於闡幽” 此數言者, 大槩得之. 獨其以虛閒之意太多爲病, 則僕所未喩.
蓋僕所見, 則家弟之詩, 用意太刻深, 造語太新警, 轉換太多, 而調或近於迫促; 情緖太密, 而辭或傷於繁絮. 却少古詩人優游平淡雍容閒暇之意. 故平日譚藝, 每以此相告, 渠亦自知其然矣.
再昨, 乍見來書, 誤認太多爲太少, 以爲深契於鄙心矣, 後看却未然. 豈高明所指, 特病其多道虛景閒事而說道理少耶? 若然則非僕之所敢知也
詩歌之道, 與文章異者, 正以其多道虛景, 多道閒事. 而古人之妙, 却多在此. 蓋雖曰: “虛景閒事.” 而天機活潑之妙, 吾人性情之眞, 實寓於其間, 使人讀之, 足以謳歌吟諷, 感發興起, 而得之於言意之表, 此其妙. 豈敷陳事理, 排比故實, 以爲詩者之所能及耶?
然則今之論爲詩者, 病不得古人虛閒之妙而已, 不當槩以虛閒爲病也.
至於韓子之云, 尤非所憂於家弟者, 高明徒見其遺外榮利脫略事物意, 以爲恬安淡泊, 而胸中無一物, 故有是語耳.
實不知其氣有結轖, 而崖岸猶未平, 思實深細, 而錙銖或不遺, 雖無利慾之炎, 得喪之鬪, 而胸中之勃然者, 尙有未釋也. 是以其爲詩也, 亦象之而有向之病焉.
高明但當憂其鬱滯沈晦, 未易融化, 而不當以頺靡潰敗, 不可收拾爲憂也. 如何如何?
前書, 意有未究, 輒此更申. 病昏猶前, 終未說盡. 伏惟照察. 『農巖集』 卷之十二
해석
再昨日黑, 病昏走筆作報書,
그제 날이 흐렸고 병들어 혼미한 중에 붓을 달려 편지를 썼지만
不省其爲何等語.
지은 것이 어떤 말인지 살피지 못했습니다.
伏想高明讀之, 必以爲夢囈語矣,
엎드려 생각하건대 그대께서 읽어보고선 반드시 잠꼬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니,
愧悚愧悚.
그지없이 부끄럽고 그지없이 죄송합니다.
高明之論家弟詩曰: “擬議未化而思偏於闡幽”
그대께서 동생의 시를 “따라하여 변화를 주진 못했고 생각이 숨겨진 이치【천유(闡幽): 숨겨진 이치를 밝힘】에만 치우쳐 있습니다.”라고 논했는데,
此數言者, 大槩得之.
이 몇 마디 말이 대체로 핵심을 얻었습니다.
獨其以虛閒之意太多爲病,
유독 허탄하고 한가로운 뜻이 매우 많은 것을 문제점으로 여긴 것은
則僕所未喩.
제가 이해하질 못한 것입니다.
蓋僕所見, 則家弟之詩,
대개 제가 본 동생의 시는
用意太刻深, 造語太新警,
뜻을 쓰는 것이 매우 심각하며 조어가 매우 새롭고 놀랄 만하며
轉換太多, 而調或近於迫促;
전환한 것이 매우 많아 구성은 혹 촉박한 데에 가깝고
情緖太密, 而辭或傷於繁絮.
정서는 매우 치밀하지만 말은 번거로움에서 손상되었습니다.
却少古詩人優游平淡雍容閒暇之意.
그래서 도리어 옛 시인의 넉넉하고 평이하며 평화롭고 한가로운 뜻이 적답니다.
故平日譚藝, 每以此相告,
그러므로 평일에 문예를 말할 적엔 매번 이것으로 서로 알려줬는데
渠亦自知其然矣.
동생 또한 스스로 그렇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再昨, 乍見來書, 誤認太多爲太少,
그저께 잠깐 온 편지를 보고 ‘매우 많다’는 것을 ‘매우 적다’는 것으로 오인하고
以爲深契於鄙心矣, 後看却未然.
저의 마음과 깊이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훗날에 보니 도리어 그렇지 않았습니다.
豈高明所指,
혹시 그대가 지적한 것이
特病其多道虛景閒事而說道理少耶?
다만 많이 헛된 경치와 한가로운 일을 말한 건 많고 도리를 말한 건 적은 걸 문제로 여긴 것입니까?
若然則非僕之所敢知也
만약 그렇다면 제가 감히 알 만한 것이 아닙니다.
詩歌之道, 與文章異者,
시가의 도가 문장의 도와 다른 것은
正以其多道虛景, 多道閒事.
바로 많이 헛된 경치를 말하고 많이 한가로운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而古人之妙, 却多在此.
그래서 옛 사람의 오묘함은 도리어 대부분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蓋雖曰: “虛景閒事.”
대체로 비록 “헛된 경치와 한가로운 일”이라 말했지만
而天機活潑之妙, 吾人性情之眞,
천기의 활발한 오묘함과 사람 성정의 참됨이
實寓於其間, 使人讀之,
진실로 허경(虛景)과 한사(閒事)에 깃드니 사람에게 읽게 한다면
足以謳歌吟諷, 感發興起,
넉넉히 노래 부를 수 있고 감발하여 흥기할 수 있어
而得之於言意之表, 此其妙.
말과 뜻의 바깥에서 천기의 오묘함과 성정의 참됨을 얻게 되니 이것이 오묘함입니다.
豈敷陳事理, 排比故實,
어찌 일의 이치를 펼쳐놓고 전고(典故)를 안배하는 것이
以爲詩者之所能及耶?
시라는 것이 미쳐야 할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然則今之論爲詩者,
그러니 지금 시 짓기를 논하는 사람들은
病不得古人虛閒之妙而已,
옛 사람의 허경(虛景)과 한사(閒事)의 오묘함을 얻지 못하는 걸 문제점으로 여길 뿐이지
不當槩以虛閒爲病也.
대체로 허경(虛景)과 한사(閒事) 자체를 문제로 여기는 건 합당치 않습니다.
至於韓子之云, 尤非所憂於家弟者,
심지어 한유의 말도 더욱이 동생에게 근심할 것이 아닌데
高明徒見其遺外榮利脫略事物意,
그대께서는 다만 영리에서 벗어나고 사물에 구속되지 않은 뜻만 보고선
以爲恬安淡泊, 而胸中無一物,
편안하고 담박하여 가슴 속에 하나의 사물도 없기 때문에
故有是語耳.
이러한 말을 썼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實不知其氣有結轖, 而崖岸猶未平,
그러나 실제로는 모르는 것입니다. 기개가 맺혀 있어 우뚝하여 오히려 평탄하지 않고
思實深細, 而錙銖或不遺,
생각이 실제로 깊고도 세심하여 조그마한 것이라도 혹 버리지 않아
雖無利慾之炎, 得喪之鬪,
비록 이익을 탐하는 마음과 득실을 다투는 마음이 없지만
而胸中之勃然者, 尙有未釋也.
가슴 속에 발끈한 것은 오히려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是以其爲詩也, 亦象之而有向之病焉.
이런 까닭으로 시를 지을 적에 또한 그것을 형상화하니 앞에서 말한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高明但當憂其鬱滯沈晦, 未易融化,
그대께선 다만 막히고 침울하며 어두워 융화됨으로 바뀌지 못함을 걱정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而不當以頺靡潰敗, 不可收拾爲憂也.
무너지고 스러지며 패하여 근심하는 걸 수습할 수 없는 걸 걱정하는 건 타당치 않습니다.
如何如何?
이러한 저의 생각이 어떠한가요?
前書, 意有未究, 輒此更申.
앞선 편지의 뜻이 궁구하지 못한 게 있어 문득 이에 거듭 아룁니다.
病昏猶前, 終未說盡.
병들어 혼미함이 전과 같아 마침내 말을 다하지 못하겠습니다.
伏惟照察. 『農巖集』 卷之十二
엎드려 생각건대 밝히 살펴주옵소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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