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에 갔다 왔다는 것만으로 오랑캐 복장을 입는다는 비난에 대해
답이종존서(答李仲存書)
중존은 이재성(李在誠 : 1751~1809)의 자이다. 이재성은 계양군(桂陽君 : 세종世宗의 둘째 아들)의 후손으로 호를 지계(芝溪)라고 하였다. 연암의 처남이자 평생지기였으며, 이서구ㆍ이덕무ㆍ박제가 등과도 절친하여 북학파(北學派)의 일원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 형제에게 글을 가르쳤다. 노년에 진사(進士) 급제 후 능참봉을 지냈을 뿐이고, 문집으로 『지계집(芝溪集)』 7권이 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박지원(朴趾源)
錄示人言, 可發一笑. 鄙言有之, 夢僧成癩, 何謂也? 僧居寺, 寺在山, 山有漆, 漆能癩人, 所以相因於夢也.
吾昔入中州, 中州者, 胡之所據也. 吾嘗與之遊處飮食焉, 不啻若夢中之見僧, 無恠乎世人之謂我癩也.
葱篠舊交之至老相狎者, 戱寢冠爲毳帽, 笑弊褐以氈裘, 是豈眞弁紅絲而褏馬蹄耶? 盖以胡嗤之則童稚之所羞也, 故比物連類, 所以相謔. 同浴譏裸, 誰其爲怒? 悠悠數十年來, 舊日朋遊凋謝殆盡, 雖欲爲一夜笑諧, 不可得矣, 寧不悲哉.
今有平生所不知何人, 忽以胡服等語, 直加諸人, 則不可也, 况其作爲文字, 醜辱狼藉乎? 人非病風而喪性, 奈何一朝, 自爲左袵, 以受人嗤罵耶? 究之常情, 殆不近理? 僮僕且羞見之, 又况靦顔於吏民之上乎? 其所爲說, 大是鹵莽, 雖街童市卒, 誰復信之? 付之一笑足矣.
幸爲戒家兒輩, 切勿對人辨說, 如何? 設有問烏有先生姓名者, 將以答白晳踈眉目乎. 『燕巖集』 卷之二
해석
錄示人言, 可發一笑.
편지에 기록하여 어떤 사람의 말을 보여줬는데 한 번 웃을 만합니다.
鄙言有之, 夢僧成癩, 何謂也?
속담에 ‘스님 꿈을 꾸면 나병이 난다’는 말이 있으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僧居寺, 寺在山, 山有漆,
스님은 절에 살고 절은 산에 있으며 산엔 옻나무가 있고
漆能癩人, 所以相因於夢也.
옻은 사람에게 나병이 나게 할 수 있으니 서로 꿈에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吾昔入中州, 中州者, 胡之所據也.
내가 옛날 중국에 들어갔었는데【정조 4년(1780) 진하 별사(進賀別使)의 일원으로 중국에 다녀온 사실을 가리킨다. 당시 연암은 열하(熱河)에서는 윤가전(尹嘉銓)ㆍ왕민호(王民皥) 등과, 북경에서는 초팽령(初彭齡)ㆍ유세기(兪世琦) 등 청 나라 문사들과 두루 사귀었다.】 중국은 오랑캐의 근거지입니다.
吾嘗與之遊處飮食焉,
나는 일찍이 그들과 놀고 살고 마시고 먹었으니
不啻若夢中之見僧,
꿈속에서 스님을 본 것만 같을 뿐만이 아님으로
無恠乎世人之謂我癩也.
세상사람들이 나를 ‘나병 걸렸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괴이할 게 없습니다.
葱篠舊交之至老相狎者,
파로 만든 피리를 불고 대나무 말을 타던 옛 친구들【葱篠舊交: 총소(葱篠)는 총적(葱笛)과 소참(篠驂), 즉 파의 잎으로 만든 피리와 대나무로 만든 말〔竹馬〕을 가리킨다.】로 늙어서도 서로 친한 사람은
戱寢冠爲毳帽, 笑弊褐以氈裘,
침관【寢冠 : 잠잘 때에 쓰는 모자를 말한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옛날에는 잠잘 때에 이미 침의(寢衣)가 있었으니 응당 침관(寢冠)이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지금은 두풍(頭風)을 앓는 사람에게만 침관이 있다.”고 하였다. 『靑莊館全書 卷53 耳目口心書6』】을 희롱하며 털모자【毳帽: 당시에 털모자를 청 나라에서 대량 수입해다 썼다. 『연암집』 권2 ‘김 우상에게 축하하는 편지〔賀金右相書〕’의 별지(別紙) 참조.】라 하고 해진 갈옷을 비웃으며 털로 짠 갖옷【氈裘: 북방 오랑캐들이 입던, 털과 가죽으로 된 옷을 말한다】이라 하니
是豈眞弁紅絲而褏馬蹄耶?
이것이 어찌 참으로 청나라 사람이 쓰는 붉은 실의 고깔【청 나라 때 남자의 예모(禮帽)는 모정(帽頂)의 중간 부분을 붉은 실로 짠 모위(帽緯)로 장식하였다.】을 쓰고 청나라 예복인 마제【청 나라 때 남자 예복의 말굽형 소매인 마제수(馬蹄袖)를 가리킨다.】를 입어서겠습니까?
盖以胡嗤之則童稚之所羞也,
대체로 오랑캐라 하여 비웃는다면 아이들도 부끄러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故比物連類, 所以相謔.
사물을 견주고 유사한 걸 연이어 서로 장난치는 것입니다.
同浴譏裸, 誰其爲怒?
함께 목욕하면서 나체임을 비난한다면 누가 화를 내겠습니까?
悠悠數十年來, 舊日朋遊凋謝殆盡,
유유하게 몇 십 년이 지나자 옛날의 놀던 친구들이 시들어 사라진 게 거의 다이니
雖欲爲一夜笑諧, 不可得矣, 寧不悲哉.
비록 하룻밤 웃으며 해학하려 해도 할 수 없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今有平生所不知何人, 忽以胡服等語,
지금 평소에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오랑캐의 복장’ 등의 말로
直加諸人, 則不可也,
곧장 남에게 비판을 가한다면 옳지 않을 텐데
하물며 글로 써서 추하게 욕하며 평판을 어지럽히는 경우【안의 현감 시절에 연암이 고을을 잘 다스린다는 명성이 자자해지자 이를 시기한 함양 군수 윤광석(尹光碩)이, 연암이 가끔 옛 의복인 학창의(鶴氅衣)를 입어 보곤 한 사실을 과장ㆍ왜곡하여 ‘되놈의 의복을 입고 백성들을 대한다[胡服臨民].’는 설을 지어내어 서울에 전파하였다고 한다. 『過庭錄 卷2』】는 오죽하겠습니까.
人非病風而喪性, 奈何一朝,
사람이 풍속이 병들거나 성품을 잃지 않고서야 어찌 하루 아침에
自爲左袵, 以受人嗤罵耶?
스스로 오랑캐처럼 왼쪽으로 옷깃을 여미며 사람들의 비웃음과 욕지거리를 받겠습니까?
究之常情, 殆不近理?
인지상정으로 궁구해보아도 거의 이치에 가깝지 않은 게 아니겠습니까?
僮僕且羞見之, 又况靦顔於吏民之上乎?
하인들도 또한 부끄러워하는데 또한 하물며 아전과 백성 위에서 얼굴을 부끄러워하고 있겠습니까?
其所爲說, 大是鹵莽,
그 사람이 말한 것이 매우 거칠고 허술하니
雖街童市卒, 誰復信之?
비록 길거리의 아이와 저자의 심부름꾼【가동시졸(街童市卒): 시졸(市卒)은 원래 시문(市門)의 문지기를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식견이 가장 부족한 사람을 뜻하는 아동주졸(兒童走卒), 가동주졸(街童走卒)이란 성어와 같은 뜻으로 쓴 것으로 보았다.】이라도 누가 다시 믿어주겠습니까?
付之一笑足矣.
한 번 웃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幸爲戒家兒輩, 切勿對人辨說,
바라길 집의 아이들을 훈계하여 절대로 남을 대하며 변론하지 말도록 하는 게
如何?
어떻겠습니까?
設有問烏有先生姓名者,
가령 오유선생【오유선생(烏有先生):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에 나오는 허구적인 인물을 말한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되놈의 의복’을 입었다는 사람을 가리킨다.】에게 성명을 묻는 사람이 있다면,
將以答白晳踈眉目乎. 『燕巖集』 卷之二
장차 명백하고 명석하며 문장에 트인 사람【한 나라 대장군 곽광(霍光)은 훤칠한 키에 얼굴이 해맑고 눈썹이 또렷하며 멋진 수염을 지녔다고 한다. 『연암집』 권5 ‘대호에게 답함〔答大瓠〕’ 참조. 여기서는 ‘되놈의 의복’을 입은 것으로 의심받은 연암 자신의 용모를 농담으로 곽광에 비겨 말한 것이다.】이라 대답할 것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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