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때에 울지 못하는 닭에게
아계부(啞鷄賦)
김부식(金富軾)
歲崢嶸而向暯 苦晝短而夜長
豈無燈以讀書 病不能以自強
但展轉以不寐 百慮縈于寸膓
想鷄塒之在邇 早晚鼓翼以一鳴
擁寢衣而幽坐 見牎隙之微明
遽出戶以迎望 參昴澹其西傾
呼童子而令起 乃問雞之死生
旣不羞於俎豆 恐見害於貍猩
何低頭而瞑目 竟緘口而無聲
國風思其君子 嘆風雨而不已
今可鳴而反嘿 豈不違其天理
與夫狗知盜而不吠 猫見鼠而不追
校不才之一揆 雖屠之而亦宜
惟聖人之敎誡 以不殺而爲仁
倘有心而知感 可悔過而自新 『東文選』 卷之一
해석
歲崢嶸而向暯 세쟁영이향막 | 세월이 흘러【쟁영(崢嶸): 세월이 흘러감을 형용한 것[形容歲月逝去].】 세밑을 향하니 |
苦晝短而夜長 고주단이야장 | 낮은 짧고 밤은 긴 것이 괴롭네. |
豈無燈以讀書 기무등이독서 | 어찌 등을 켜고 책 읽지 못하겠는가. |
病不能以自強 병불능이자강 | 그러나 병들어 자강불식할 수 없다네. |
但展轉以不寐 단전전이불매 | 다만 엎치락뒤치락 잠들지 못하니 |
百慮縈于寸膓 백려영우촌장 | 온갖 우려가 속에서 엉기는 구나. |
想鷄塒之在邇 상계시지재이 | 생각해보면 닭의 홰가 가까이에 있어 |
早晚鼓翼以一鳴 조만고익이일명 | 조만간 날개를 푸득거리며 한바탕 울어재끼리. |
擁寢衣而幽坐 옹침의이유좌 | 잠옷을 끌어안고 조용히 앉아 |
見牎隙之微明 견창극지미명 | 창틈의 여릿하게 밝아오는 햇살을 보다가 |
遽出戶以迎望 거출호이영망 | 갑자기 문을 나가 바라보니, |
參昴澹其西傾 참묘담기서경 | 참묘【참묘(參昴): 서방(西方)의 두 별자리의 이름.】가 가득 차 서쪽으로 기울어졌구나. |
呼童子而令起 호동자이령기 | 아이를 불러 일어나게 하고 |
乃問雞之死生 내문계지사생 | 곧 닭의 생사를 물었다. |
旣不羞於俎豆 기불수어조두 | 이미 제사에 올리지 않았는데 |
恐見害於貍猩 공견해어리성 | 아마도 승냥이와 삵에게 해라도 당했는가. |
何低頭而瞑目 하저두이명목 | 어찌 머리를 숙이고 눈은 감은 채로 |
竟緘口而無聲 경함구이무성 | 끝내 입을 닫고서 소리조차 없는가. |
國風思其君子 국풍사기군자 | 국풍에선 닭의 울음소리가 낭군을 생각게 하여 |
탄풍우이불이 | 비바람에도 그치지 않음【풍우불이(風雨不已): 『시경(詩經)』 정풍(鄭風) 「풍우(風雨)」에, “비바람은 그믐같이 캄캄하온데 닭은 울어 그치지 않네. 아아, 그대를 만나뵈오니 그립던 이 마음이 안 기쁘리까.” 하였다.】을 탄식했었지. |
今可鳴而反嘿 금가명이반묵 | 이제라도 울 만한데도 도리어 침묵하고 있으니, |
豈不違其天理 기불위기천리 | 어찌 천리를 거스르는 게 아니겠는가. |
與夫狗知盜而不吠 여부구지도이불폐 | 개가 도둑을 알고서도 짖지 않고 |
猫見鼠而不追 묘견서이불추 | 고양이가 쥐를 보고서 쫓지 않는 것과 함께 |
校不才之一揆 교부재지일규 | 헤아려보면 재주 없음은 한 가지이니 |
雖屠之而亦宜 수도지이역의 | 비록 제 구실 못하는 닭을 죽여도 또한 당연하도다. |
惟聖人之敎誡 유성인지교계 | 오직 성인이 가르침과 훈계로 |
以不殺而爲仁 이불살이위인 | 죽이지 않는 걸 어질다 하셨으니 |
倘有心而知感 당유심이지감 | 혹시 마음이 있고 느낄 줄 안다면, |
可悔過而自新 가회과이자신 |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워져야 하리라. 『東文選』 卷之一 |
해설
이 작품은 최치원(崔致遠)의 부(賦)가 지어진 뒤 고려(高麗)에 들어와 처음으로 지어진 「중니봉부(仲尼鳳賦)」와 함께 김부식(金富軾)의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로, 새벽에 울어야 할 닭이 울지 않음을 빌려서 자기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물을 풍자한 글이다.
여기서의 닭은 유가(儒家)의 도(道)를 실천하지 않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한 인물로, 세상의 불의(不義)한 일을 보고도 발분(發憤)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개와 고양이 같은 인물들이다. 이들로 인해서 성인(聖人)의 도가 쇠퇴해지고 있는 것이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92~9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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