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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원도(原道) - 解說 1. 한유는 본 게 있었기에 이 글을 지을 수 있었다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원도(原道) - 解說 1. 한유는 본 게 있었기에 이 글을 지을 수 있었다

건방진방랑자 2020. 8. 23.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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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캐다

원도(原道)

 

한유(韓愈)

 

 

解說 1. 한유는 본 게 있었기에 이 글을 지을 수 있었다

 

程子: “韓愈亦近世豪傑之士. 原道之言, 雖不能無病, 然自孟子以來, 能知此者, 而已. 其曰: ‘氏醇乎醇.’ 又曰: ‘,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 若無所見, 安能由千載之後, 判其得失, 若是之明也?”

又曰: “退之晩年之文, 所見甚高, 不可易而讀也. 古之學者, 修德而已, 有德則言可不學而能. 退之, 乃以學文之故, 日求所未至, 故其所見及此, 其爲學之序, 雖若有戾, 然其言曰: ‘之死, 不得其傳.’ 此非襲前人語, 又非鑿空率然而言, 是必有所見矣. 若無所見, 則所謂以是傳之者, 果何事耶?”

朱子: “諸賢之論, 唯此二段, 能極其深處. 然臨川王氏安石之詩, 有曰: ‘紛紛易盡百年身, 擧世何人識道眞. 力去陳言誇末俗, 可憐無補費精神.’ 其爲予奪, 乃有大不同者.

嘗折其衷而論之, 竊謂程子之言, 固爲得其大端, 氏之言, 亦自不爲無理. 公於道, 知其用之周於萬事, 而不知其體具於吾之一心; 知其可行於天下, 而不知其本當先於吾之一身也. 是以, 其言, 常詳於外而略於內, 其志常極於遠大而其行未必謹於細微. 雖知文與道有內外淺深之殊, 而終未能審其緩急重輕之序, 以決取舍, 雖汲汲以行道濟時抑邪與正爲事, 而未免雜乎貪位慕祿之私, 此其見於文字之中, 信有如氏所譏者.

氏雖能爲此言, 而其所謂道眞者, 實乃佛之餘派, 公所深詆, 是楚雖失而齊亦未爲得也. 以是而論, 公之學, 所以爲得失者, 庶幾其有分乎.”

又曰: “達摩未入中國時, 支遁法師之徒, 只是談, 後來人亦多以助禪. 愚按, 老子, 孔子同時, 佛則後漢明帝時, 始入中國, 然後之譎誕者, 往往攘老子之說, 以佐佛學, 其本雖異, 而末流一也. 公此篇, 爲闢佛而作. 始單擧老氏, 中搭上佛氏, 闢老, 卽闢佛也, 竟不復分別.”.

 

 

 

 

 

 

해석

程子: “韓愈亦近世豪傑之士.

정자가 말했다. “한유는 또한 그대의 호걸한 선비다.

 

原道之言, 雖不能無病,

원도의 말 같은 경우는 비록 문제점이 없진 않지만

 

然自孟子以來, 能知此者,

맹자 이래로부터 이것을 아는 사람은

 

而已.

유독 한유일 뿐이다.

 

其曰: ‘氏醇乎醇.’

맹자는 순정하고도 순정하다.’라고 말했고,

 

又曰: ‘, 擇焉而不精,

또한 말했다. ‘순자와 양웅(揚雄)은 선택하지만 정밀하진 못하고

 

語焉而不詳.’

말은 하지만 상세하지 않다.’

 

若無所見, 安能由千載之後,

만약 본 게 없다면 어찌 천년 뒤에

 

判其得失, 若是之明也?”

득실을 판단하길 이와 같이 분명히 하겠는가?”

 

又曰: “退之晩年之文, 所見甚高,

또한 말했다. “퇴지의 만년 문장은 본 게 매우 고상해서

 

不可易而讀也.

쉽게 읽을 수 없다.

 

古之學者, 修德而已,

옛날 학자들은 덕을 닦을 뿐이지만

 

有德則言可不學而能.

덕이 있으면 말을 배우지 않아도 잘 한다.

 

退之, 乃以學文之故, 日求所未至,

퇴지는 곧 문학을 배운 이유로 날마다 이르지 못한 것을 구했다.

 

故其所見及此, 其爲學之序,

그러므로 본 것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배운 순서가

 

雖若有戾, 然其言曰: ‘之死, 不得其傳.’

비록 어긋난 것 같지만 맹가가 죽자 전해질 수 없었다.’라고 말했으니

 

此非襲前人語, 又非鑿空率然而言,

이것은 앞선 사람들을 답습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근거 없이착공(鑿空): 착공 구멍을 뚫음 도로를 개통함 근거 없는 이야기경솔하게 지어낸 말도 아니니

 

是必有所見矣.

이것은 반드시 본 것이 있는 것이다.

 

若無所見, 則所謂以是傳之者,

만약 본 게 없다면 말했던 이것으로 전한다는 것이

 

果何事耶?”

과연 어떤 일이었겠는가?”

 

朱子: “諸賢之論, 唯此二段,

주자가 말했다. “여러 현인들의 의론 중 오직 이 두 단락이

 

能極其深處.

깊은 곳을 다했다.

 

然臨川王氏安石之詩, 有曰: ‘紛紛易盡百年身, 擧世何人識道眞. 力去陳言誇末俗, 可憐無補費精神.’

그러나 임천 왕씨 안석의 시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紛紛易盡百年身

어지러이 백년의 몸뚱이 다 바뀌는데

擧世何人識道眞

온 세상 어떤 사람이 도의 참됨을 알리오?

力去陳言誇末俗

힘껏 진부한 말을 제거하고 말세의 풍속을 과시하니

可憐無補費精神

가련하구나. 보탬도 없이 정신만 소비하니.

 

其爲予奪, 乃有大不同者.

칭찬하고 비판한 것이 곧 크게 같지 않음이 있다.

 

嘗折其衷而論之,

일찍이 절충하여 논하자면

 

竊謂程子之言, 固爲得其大端,

생각하건대 정자의 말은 큰 단서를 얻었고

 

氏之言, 亦自不爲無理.

왕씨의 말도 또한 스스로 무리한 것은 아니다.

 

公於道, 知其用之周於萬事,

대체로 한공은 도에 있어서 용()은 뭇 일에 두루 있다는 건 알았지만

 

而不知其體具於吾之一心;

()가 내 하나의 마음에 구비된다는 걸 알지 못했고

 

知其可行於天下, 而不知其本當先於吾之一身也.

천하에 행해질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근본은 마땅히 나의 한 몸에 먼저해야 함은 알지 못했다.

 

是以, 其言, 常詳於外而略於內,

이런 까닭으로 그 말이 항상 외면엔 상세했지만 내면엔 대충했고

 

其志常極於遠大而其行未必謹於細微.

그 뜻이 항상 원대함엔 극진했지만 행동은 반드시 세세하고 작은 데에 삼가지 못했다.

 

雖知文與道有內外淺深之殊,

비록 문()과 도()가 안과 밖에 얕고 깊음의 다름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而終未能審其緩急重輕之序, 以決取舍,

끝내 더디고 빠르며 무겁고 가벼운 차례를 살펴 취사를 결정할 수 없었으니

 

雖汲汲以行道濟時抑邪與正爲事,

비록 급급하게 도를 행하고 당시를 구제하며 사악함을 억누르고 바름에 참여하는 것을 일로 삼았지만

 

而未免雜乎貪位慕祿之私,

지위를 탐하고 녹봉을 사모하는 사사로움에 섞임을 면치 못했으니

 

此其見於文字之中, 信有如氏所譏者.

이것은 그의 글 가운데 보이는 것이 진실로 왕씨가 기롱한 것과 같은 것이 있다.

 

氏雖能爲此言, 而其所謂道眞者,

다만 왕씨가 비록 이 말을 할 수 있었지만 말한 도의 참됨이란 것은

 

實乃佛之餘派, 公所深詆,

실제론 노자와 불교의 여파이고 바로 한공이 깊이 나무란 것이니,

 

是楚雖失而齊亦未爲得也.

이것은 초나라도 비록 잘못했지만 제나라도 또한 잘 하지 못했다 라는 것이다.

 

以是而論, 公之學,

이것으로 논하면 한공 학문의

 

所以爲得失者, 庶幾其有分乎.”

득실이 되는 까닭을 거의 분별할 수 있으리라.”

 

又曰: “達摩未入中國時,

또한 말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을 적에

 

支遁法師之徒, 只是談,

지둔법사와 같은 무리들은 다만 장자노자를 말했지만

 

後來人亦多以助禪.

후대 사람들 또한 많이들 장자노자로 불교를 돕는다.

 

愚按, 老子, 孔子同時,

어리석은 내가 살펴보자면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고

 

佛則後漢明帝時, 始入中國,

불교는 후한의 명제 때에 중국에 들어온 후에

 

然後之譎誕者, 往往攘老子之說,

헛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노자장자열자의 말을 훔쳐서

 

以佐佛學, 其本雖異, 而末流一也.

불교를 도우니 근본은 비록 다르더라도 말류는 하나인 것이다.

 

公此篇, 爲闢佛而作.

그러므로 한공의 이 글은 노자와 불교를 배척하려 지은 것이다.

 

始單擧老氏, 中搭上佛氏,

처음엔 홀로 노씨를 열거하고 중간에 불씨에 타고 올라감으로,

 

闢老, 卽闢佛也,

노씨를 배척하는 것이 곧 불교를 배척하는 것이니

 

竟不復分別.”.

마침내 다시 분별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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