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장독을 지켜낸 노인과 나라도 지켜내지 못한 지배층
이 시는 장독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의 애국적 형상을 제시한 것이다.
시인 신광하는 1783년(정조 7년)에 함경도 지방을 유람하여 백두산까지 등반을 한다. 이 여행의 도중에 조술창이라는 곳에서 한 노인을 만나는데, 그 노인으로부터 그의 6대조 할아버지가 병자호란 당시 장독을 때려 부수려고 덤비는 되놈을 활을 쏘아 격퇴시킨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 노인은 작중의 화자이며 서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용감한 6대조 할아버지다.
작품은 노인의 이야기가 끝나면서 문제의 장독을 직접 보여준다. 옛이야기를 실제 사실로 확인시킨 셈이다. 우리 민족의 생활에서 독은 거기 담는 장이 그렇듯 별것 아니지만 한때도 없어서 안 되는 긴요하고 친숙한 물건이다. 작중의 서사의 초점인 장독은 “묵은 간장 그 속에 어려 무늬가 은은히 생기는[醬汁瀜結隱波浪]” 일상적 생활용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저 장독 검푸른 용의 변화된 모습 아닐까[无乃變化蒼精龍]”라고 일종의 신기(神器)처럼 느낀다. 이 물건은 시에서 상징성을 띤 것이다. 작중의 주인공은 함관령을 짓밟고 철령을 넘어 쳐들어온 침략자를 대담하게 활을 쏘아 물리쳐 우리의 삶에 긴요한 이 물건을 수호하였다. 결구 부분에서 서울 도성이 적군에 여지없이 도륙ㆍ능욕을 당한 참상을 대조적으로 비쳐준다. 일개 무명 노인의 행동이 돋보이는 반면 지배층의 무기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민중의 애국 역량에 대한 근원적 신뢰감을 갖도록 한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13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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