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Persona
누구나 자기에 관해서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자신의 신체, 성격, 취향, 버릇은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지나치게 고집하면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기 쉽다. 세상을 혼자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독불장군(獨不將軍)이 아니라면 그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위험한 견해다.
영어의 person, 프랑스어의 personne, 독일어의 Person, ‘사람’을 뜻하는 이 말들은 형태에서 보듯이 같은 어원을 가진다. 모두 페르소나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페르소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참 모습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의 모습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나의 ‘사람됨(personality)’은 남들이 판단하는 걸까?
페르소나는 원래 연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이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연극의 등장인물과 성격까지 아우르게 되었고 나중에는 인격이나 사람까지 뜻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교리인 삼위일체론에서 삼위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가지 위격을 가리키는데, 이 위격이 바로 페르소나다.
가면이라는 뜻에서 나왔으니 페르소나는 자칫 가짜 인격을 말하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페르소나는 남에게 내보이기 위한 자신의 면모이므로 주로 직업이나 신분, 사회적 관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예를 들어 보험 설계사라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을 테고, 경호 업체의 직원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면 보험 설계사도 식구들에게 짜증을 내고, 경호원도 자기 어머니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린다. 그렇다면 페르소나는 순전히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말 그대로 가면에 불과한 걸까?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정립한 무의식의 개념은 인간의 정신이 언제나 단일하고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의식적 소망과는 별도로 얼마든지 다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는 짝꿍을 좋아하는데도 겉으로는 냉담한 척할 수도 있으며, 담임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데도 무심코 ‘담탱’이라고 비하해 부르게 될 수도 있다. 전자가 의식적인 분열이라면 후자는 무의식적인 분열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확대 발전시킨 심리학자 융(Carl Jung, 1875~1961)은 우리의 정신이 분열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성격, 진정한 인격이란 무엇일까? 정상적인 사람에게서도 성격 분열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융, 『심리적 유형』”
그래서 융은 페르소나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 역할을 부여한다. 융에 따르면 페르소나는 허위적인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무의식이 그렇듯이 페르소나도 지킬(Jekyll)의 내면에 웅크린 하이드(Hyde)가 아니다.
하지만 폐르소나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면 하이드가 될 수 있다. 군대의 장교에게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지만 그렇다고 그 페르소나를 가정이나 사회에까지 끌고 갈 경우에는 왕따가 되거나 마초로 보이기 십상이다. 페르소나와 자아가 완전히 동일시되면 나머지 인격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아의 숨겨진 측면【융은 이것을 ‘그림자’라고 부른다】이 되어 자아가 발전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남에게 내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서로 다를 수 있고, 또 다른 게 정상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고 억지로 규정하기보다 양자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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