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
Post modernism
모더니즘은 이성과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으나 전통과의 확고한 결별을 이루지는 못했다. 혁신적이면서도 보수성을 크게 탈피하지 못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모더니즘이 주로 문학과 예술 분야에 국한된 탓이 크다. 수백 년에 걸쳐 이력이 쌓이면서 튼튼해진 합리주의의 벽을 뚫으려면 그에 못지않은 강력한 논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역시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 되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말뜻처럼 ‘모더니즘 이후’에 그치지 않고 근대 이성에 대한 체계적인 공략을 의미한다.
이 개념을 처음 제기한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는 원래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모던’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했다【모던은 현대를 뜻하므로 포스트모던은 보통 ‘탈현대’라고 번역된다】. 그 용어가 현대의 새로운 사조를 대표하게 되면서 1960년대부터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명사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데리다, 라캉(Jacques Lacan, 1901~1981), 들뢰즈 등 구조주의 계열의 현대 철학자들도 이 흐름에 동참했으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체로 포스트구조주의와 상통하게 되었다.
이성을 거부하고 비합리주의를 앞세우는 조류는 모더니즘에서부터 나타났으며, 의식보다 무의식을 강조하고 주체 대신 구조를 중심으로 하는 사유 양식은 이미 구조주의에서 보여준 바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흐름을 수용하면서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계몽과 도덕을 거부하고 합리주의로 위장된 억압의 본질을 폭로하는 데 주력한다.
모더니즘과 구조주의에서 제시된 기본 관점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극단화되었다. 무의식의 활동은 합리적이 아니라 충동적이므로 무의식이 강조되면 이성보다 감정과 욕망이 중시된다. 이성은 예측 가능하고 확실하지만 감정과 욕망은 늘 예측 불허이고 불확실하다. 이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의식을 기본으로 하는 사유는 일관성이 없고 모순에 가득 찬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불확실성과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 체계가 필요하다. 필연성을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 사유는 이제 우연성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무책임하게 설정된 것도 아니고 철학이나 예술 같은 특정한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물리학의 양자역학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는 우연을 단순한 우연으로 간주하지 말고 그 자체로 물리학 법칙의 일부로서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억제하거나 차단하면 안 된다는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의 입장, 기계적 인과성과 필연성을 포기하고 예측 불가능성과 우연성의 관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는 시대에 걸맞게 포스트모더니즘은 1970년대까지 사회 체제의 통치 이데올로기나 반체제운동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거대 이념을 거부한다.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국가나 민족으로 포장하는 허구적 국가주의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에 맞서 민족적ㆍ계급적 해방을 내거는 거창한 이념도 마찬가지로 배척의 대상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인 리오타르는 ‘전체’를 내세우는 일체의 이념을 믿지 않는다. 전체를 구호로 삼은 데서 빚어진 시행착오는 역사적으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전체성과 보편성을 추구한 정치와 종교, 예술은 모두 실패했다. 리오타르는 그것이 모두 거대 담론의 오류에 빠진 결과라고 말한다. 계몽, 인권, 도덕 등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형이상학적 이념도 거대 담론이며, 그 점에서는 혁명, 평등, 착취의 근절을 부르짖는 마르크스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거대 담론은 항상 통합과 합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목적론의 덫을 피할 수 없고 기껏해야 유토피아에 그칠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며 동질성이 아니라 차이다.
이성, 의식, 확실성, 일관성, 연속성, 동질성 등 근대적 사유의 틀을 버리고 언어, 무의식, 불확실성, 모순, 단절, 차이에 초점을 맞추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분명히 새로운 사조지만 아직 특정한 구체적 형태를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까지는 각각의 철학자, 예술가마다 ‘시안’을 개진하는 느낌을 주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어떤 식이든 모종의 형태를 취하고 체계성을 보이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과의 확고한 분리를 선언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오히려 모더니즘보다도 전통적 사유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억압과 권력의 지배를 거부하고 자유와 해방 같은 전통적 이념을 계승하는 측면이다. 과거처럼 이데올로기나 거대 담론의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지만 그런 이념들을 여전히 존중한다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도 아직 보편적인 가치의 생명력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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