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군은 지금 공사판
지방도 691번을 지나 대전과 연기가 나눠지는 길엔 금강이 흐르고 있더라. 그 절경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답답함과 짜증이 일시에 걷힌 듯한 행복이 느껴지더라.
연기군 남면은 광기의 언덕
자연이 주는 아늑함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게 없다. 더욱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더 큰 위로가 된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니 말이다. 그곳에서 금강을 보며 걸으니 시원하고 좋더라. 하지만 그런 기쁨은 아주 잠시였다. 연기군 남면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연기에 정부의 제2종합청사가 들어선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주변부까지 공사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중심부만 공사하는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전주도 지금 대대적으로 서부신시가지를 개발 중이다. 2000년에 대학에 입학할 땐 한적한 시골길 마냥 이차선 도로에 드넓은 농지들만 가득한 곳이, 지금은 대대적인 공사로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고 하나하나씩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그때 ‘개발한다는 건 넓은 지역을 아예 뒤집어엎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의 공사현장을 보니, 서부신시가지 개발은 어린이 장난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 지역 전체를 완전히 밀어버리고, 자연히 형성된 마을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도시 하나를 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기초 공사 중이어서 여기저기 파헤쳐 놓은 것 투성이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오로쿠 할멈이 말한 “광기의 언덕”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싶더라. 그 황량함과 무섭도록 인공적인 모습, 그리고 여기저기 흙먼지 풀풀 날리는 이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쉬고 싶었지만 무작정 걸었던 것이다. 그곳에 오래 있다가는 내 정신이 휙 돌아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행정도시 건설로 한 마을이 초토화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교회가 눈에 띈다. 저기까지만 가면 드디어 쉴 수 있겠거니 하는 마음에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근처에 가보니, 이게 웬 걸?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 것이 아닌가? 겉만 멀쩡할 뿐 속은 다 뜯겨진 상태였다. 전쟁을 겪은 마을을 보는 듯한 씁쓸한 광경이다. 국가기관의 이전으로 한 마을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이곳을 기반으로 살던 원주민들은 졸지에 실향민이 되어 버렸다.
마을엔 마을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곳은 생활기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상들의 얼이 어린 곳이고 마을 공동체의 따스함이 깃든 곳이다. 그건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본은 그런 감성적인 것을 다 무시하고 토지가격이란 표준적인 잣대로 모든 걸 매수했을 것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이다. 하긴 사람의 가치마저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수도권으로만 몰린 행정기관들을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생각엔 찬성한다. 그리고 그게 이곳으로 와야 한다는 것에도 찬성한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마을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더라. 폐허의 황량함 때문인가, 아니면 내 마음의 어떤 측면이 이곳에 이입되었기 때문인가. 어찌 되었든 이곳에 있다간 더 힘들어질 것만 같다. 그러니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여기서 얼마를 더 가야 사람이 사는 동네에 닿을 수 있을까?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머지않아 최신식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로 완벽히 탈바꿈되어 있겠지. 그때가 되면 새로운 소비도시로 변모해 있겠지. 그리고 예전 연기군의 모습은 사진으로나 볼 수 있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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