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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118. 재편집기① 나와 공명한 흐름이 글로 담기다(15.06.09.화)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118. 재편집기① 나와 공명한 흐름이 글로 담기다(15.06.09.화)

건방진방랑자 2021. 2. 1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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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집기나와 공명한 흐름이 글로 담기다

 

 

국토종단은 2009419일에 시작되어 523일까지 거의 한 달간 떠났던 여행이다. 그 당시에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돌아와 국토종단기로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었다.

그렇게 과거의 추억으로 묻혀가고 있는 이때, 그것도 무려 6년이나 지난 지금 국토종단기를 재편집하게 되었다. 왜 갑자기 과거의 아련한 추억을 현재의 기억으로 덧칠하려는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됐는지 지금부터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 한 달에 걸쳐 목포에서 부터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걸어갔던 2009년의 여행을 2015년에 다시 꺼내 든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당신은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어떤 정의를 내리는가?

나에게 글이란 인연과의 마주침, 천지자연과의 뒤섞임이 발산(發散)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이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의식이 있기 이전에 사람과의 마주침이 있고, 천지자연이란 기의 흐름이 있다. 그게 내 속으로 들어와 공명(共鳴)하여 또 다른 의식의 장을 만들어낸다. 그런 마주침의 결과물이 글로 표현될 수도, 그림으로 표현될 수도, 음악으로 표현될 수도, 춤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글이란 어떤 흐름과 마주친 결과물이며 어떤 인연이 스쳐 지나간 흔적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뭔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절대 그런 얘긴 아니다. 글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왔느냐가 중요하다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시대의 환경 속에 살았는지, 어떤 사람들과 마주쳤는지, 어떤 의식과 통하였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볼 때 저자의 위대성에 천착(穿鑿)할 것이 아니라, 그를 훑고 간 흐름에 집중해야한다. 결국 글이란 내가 아닌 것과 마주쳐 나의 의식이 붕괴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 연암의 글은 생동감이 있다. 그런 생동감이 있는 글이 불협화음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작문유발자(作文誘發者)

 

이와 같은 결론에 대해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정의와 무엇이 다르냐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경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의지대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의지를 그대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성경 구절을 보자.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34:16

 

 

분명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쓰였기 때문에 신의 기록이 아닌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인간의 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 할지라도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이상, 신적 권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성경에선 여러 군데서 반론을 편다. 반론의 여지는 인간의 언어로 쓰였다 할지라도, 저자들은 하느님의 대리인으로 글을 쓴 것이기에 신적 권위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와 글은 어떠한 흐름이 나를 통해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는 말만 다를 뿐 같은 얘기처럼 들린다. 저자는 글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 본질은 저자 너머에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글에 대한 정의와 성경의 글에 대한 정의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건 성경의 저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적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글은 일점일획(一點一劃)도 고쳐져서는 안 되고, 비판해서도 안 되는 절대진리라 생각하는 데에 있다. 쓰인 순간부터 그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지니게 된다. 이에 반해 나의 글은 그 당시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충실하게 공명한 것이기에 오류나 말도 안 되는 부분도 있는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후에 예전과는 180˚ 다른 글을 쓰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성경의 저자들은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설파하기 위해 글을 쓴 반면, 난 그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어떤 흐름과 마주쳤는지 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다. 그렇기에 내 글을 볼 때는 옳으냐, 그르냐의 판단 기준으로 읽기보다, 그저 그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어떤 것과 공명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읽으면 된다.

 

 

▲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 성경 저자들에게 작문유발자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의 임재함을 글로 표현했던 것이다. 나에게 작문유발자는 천지자연, 그리고 인연의 마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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