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것 같았다’와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공통점
봉하마을은 진영읍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 구경을 마친 후엔 다시 나와야만 한다. 봉하마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봉하마을 주변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어 잠자리를 구하기 쉬울 것만 같았다.
봉하마을엔 잘 곳이 있겠지
그래서 그곳에 도착하여 잠자리부터 구하고 봉하마을도 천천히 구경하고 부엉이 바위에도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더욱이 봉하마을이라는 이름답게 마을 주변도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가 날 것만’ 같았다. 즉, 그곳에 이르기만 하면 오늘의 힘듦은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한낱 이상일 뿐이었다. 봉하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한적한 시골길이 아닌 철강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가득한 길이었다. 한적한 길은커녕, 그렇게 피하고 싶던 공장길을 다시 걷게 된 것이다. 이쯤 되니 ‘뭐 이런 기 다 있노.’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짜증이 밀려온다.
그나마 왼쪽으로 꺾어 봉하마을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그곳부터는 한적한 시골길이라 조금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관광버스들이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 아직도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봉하마을에 가까이 다가서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대통령 생가와 경호용 부속 건물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곳엔 잠자리를 부탁할 수 있는 교회나 마을회관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실망감이 밀려왔다. 난 어디서 잔단 말인가. 역시 머릿속으로 생각한 기대는 현실에서 깨지게 마련인가 보다.
해결책①: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키려는 노력
봉하마을로 오면서 세 가지의 ‘그럴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쭉 걸으면 김해의 시내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 ‘봉하마을로 향하는 14번 국도는 읍으로 향하는 길이니만치 걷기에 편할 것 같다’는 생각, ‘봉하마을엔 잘 만한 곳을 구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럴 것 같았다’는 생각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대이고 그건 이상적인 생각이기에 현실에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젠가 아는 동생이 담양 소쇄원(瀟灑園)을 잔뜩 기대하고 갔었는데 엄청 실망했고 오히려 엉겁결에 간 고창 선운사가 더 좋았다고 말했었다. 소쇄원엔 여러 환상이 가득했던 것인데, 현실적인 모습(빨래가 널려 있다거나, 규모가 작다거나)을 보자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실망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고창은 아무 기대도 없이 간 곳이기에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건 사람을 만나건, 기대는 하되 그게 이상적인 생각이 되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몸으로 부딪치며 괴리를 메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상에서만 살아 자폐아가 되지도 말고 현실에서만 살아 뻔한 사람이 되지도 말자. 이 둘을 조화시키려는 노력 속에, 자신다움이 있을 테니.
해결책②: 섣불리 일반화하지 않으려는 노력
‘그럴 것 같았다’라는 표현은 이상이 현실을, 생각이 실제를 앞설 때 나오는 말이었다. 그래서 막상 현실에 닥치거나 실제가 되면 생각은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오늘은 무려 세 번이나 와르르 무너지는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그건 아직도 내가 세상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게 많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모르는 것 투성이기에 세상은 몸을 던져 경험하며 살 만한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뭣 뭣 해봤으니 내가 다 안다’는 식의 화법을 잘 구사한다. 그런 화법을 구사하여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헛소리하는 사람쯤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식의 짧은 경험들과 확신이 얼마나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되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내 생각과 늘 다를 수밖에 없는 타인을 알량한 자신의 경험의 틀에 가두거나, 이상과 괴리가 있는 현실에 무작정 대입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름을 인정하려는 자세야말로 큰일을 하는 사람이 품어야 할 기본 자질이 아닐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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