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과 영남 신공항 백지화 결정
각 지역 번호판을 단 관광버스에서 내리신 분들은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었다. 아마도 마을 야유회로 이곳에 온 것인가 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그) 묘소에 가서 ‘잘 계셨나요? 그곳은 행복한가요? 그곳에서 이 곳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네요.’라는 말로 인사를 건넸다.
봉하마을, 드디어 내가 왔노라
국토종단 중 연기군 양화감리교회에서 묵을 때 그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봉하마을에서 서울까지 상경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어떻게 언론이 한 사람을 생매장시키는 지를 여실히 볼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는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그와 같은 실시간 생방송은 그를 이미 범죄자로 몰았고, 그 방송을 보는 모든 사람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 장면을 본 이후 국토종단이었기에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는지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국토종단이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끝나던 때에 그의 서거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나에게 가장 의미 깊던 날에, 평생 잊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기에 국토종단엔 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와 함께 한 첫 여행의 섭섭함을 이제야 그의 홈그라운드인 이곳에 와서 갚게 된 것이다. 오고 싶은 맘은 간절했지만, 이렇게 겸사겸사 찾게 되어 정말로 다행이다.
그의 사진만 덩그러니 남은 장소는 더욱 비감이 어리는 듯했다. 그곳에 온 많은 사람들은 그냥 한 번 삥 둘러보고 가는 게 전부였다. 과연 이분들은 이곳에서 어떤 것을 느끼고 돌아가시는 걸까.
이상하게도 대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 대원에게 관심이 가더라. 군복무를 여기서 하는 것이려나. 친근하게 다가가 궁금한 걸 물으니, 성실하게 대답해주기보단 기계적으로 대답해준다. 하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런 걸 테다. 솔직히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고 그를 보좌한다는 뿌듯함도 있을 것 같아 그곳에서 군복무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새벽에도 근무를 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GOP는 여기보다 긴장감이 높은 곳이긴 해도 그나마 두 명씩 근무를 서는 데 반해, 여긴 한 명씩 근무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영읍의 교회에서 묵게 되다
해가 서서히 질 때쯤이면, 잠자리를 구하는 문제가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진영읍은 읍이라고 하기엔 높은 건물도 많았고 아파트도 많았다. 읍내 규모가 김제시 규모와 엇비슷해 보였다고 하면 오버이려나.
도로 우측편의 신도시보단 좌측편의 구도심이 맘에 들어 그쪽으로 갔다. 다행히 바로 십자가가 보였고 그곳에 들어가니 어떤 분이 바닥을 닦고 계신다. 목사님을 뵐 수 있냐고 물으니 조금 기다려야 한단다. 그분이 날 대하는 태도가 정중하고 친근했기에 목사님이 오셔도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목사님이 오셨고 사정을 이야기하자마자 바로 승낙해주시더라.
그래서 묵게 된 교회는 ‘진영 중앙 교회’다. 교회 건물 크기에 비해 내부는 엄청 잘 꾸며져 있고 성도님들도 많았다. 수요예배를 드리고 나니 저녁으로 뼈다귀 해장국까지 사주셨다. 이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신공항, 거기엔 ‘새만금’ 같은 인간의 욕망이 숨어 있다
해장국 집 아주머니와 식사 후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뉴스에선 오늘 공항 발표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결국 이미 공표되었다시피 백지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아주머니도 같이 보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현실이 아주머니에게는 어떤 느낌이고, 어느 곳에 유치되는 게 좋은 지 물었다.
그랬더니 TV에서 나오는 영남이 모두 들썩거린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아주머니는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 마디가 아주 날카롭고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땅이나 있고 이득이나 있는 사람에게나 들썩거릴 일이지.”
방송의 악의성은 이런 데서 드러난다. 그저 별일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방송에선 모두가 그렇다는 듯 편집하고 여론을 조성한다. 아마도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부산ㆍ밀양 할 것 없이 그 인접 지역까지 난리가 난 줄 알 것이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당장 이득 볼 자산이 있거나, 잠정적으로 자신에게도 이득이 돌아올 거라고 바라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오늘 이런 결정을 보고 부산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다. 모두 격분에 차 있을까, 몇몇의 사람만 그러고 있을까.
이로써 이번 정권의 ‘표 얻기’식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더불어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도 깎일 것이다. 그의 절대적 지지 기반인 서울ㆍ경기 보수층을 염두에 둔 것이건, 혈세 낭비를 막자는 대승적 차원의 선택이건 이번 논란을 이렇게라도 마침표를 찍은 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지금부터 중요한 건, 이 상황에 분개한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하여 이 취지를 잘 살리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MB정부의 소통 능력으로 봤을 때, 뒷일이 더 걱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돼지국밥 |
5.000원 |
빵 |
1.000원 |
일일 총합 |
6.000원 |
총 지출 |
52.5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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